日/일본 여행기 16차

일본횡단기 - 2일 스이타1 (만박기념공원万博記念公園·태양의 탑太陽の塔)

同黎 2019. 10. 24. 18:39



둘째날 아침

아이린지구의 모습


오늘은 드디어 오사카 만박공원에 간다.


한카이선이 지나가는 중


아직도 다니는 노선 전차


통과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붐비는 사람을 피해 남쪽 텐가차야에서 미도스지선으로 환승


출근하는 사람들


잘생겼네


키타오사카 급행과 자동 환승되어 센리츄오역에서 환승


오사카 모노레일선으로 환승한다.


모노레일 야마다역과 환승이 된다.


야마다역


오사카 모노레일은 오사카 북부의 센리뉴타운을 노리고 만든 선

이타미공항을 이어주는 것도 이 노선이다.

 

야마다역부터 만박기념공원 안내판이 있다.


관광객에게는 역시 이 공원 때문에 가장 많이 탈 노선이다.


모노레일을 보기 힘든데 참 신기하게 생겼다.

한국에는 거의 없으니


승강장으로 이동


모노레일 탑승

신기하군


좁은 선로 위에 얹어있는 차량


반파쿠키넨코엔역(만박기념공원역) 도착


대합실에서 본 모습

거대한 관람차가 보인다.


역에 도착


밖으로 나간다


거대한 관람차는 엑스포 후 남았던 놀이공원인 엑스포 랜드의 흔적


건너편 태양의 탑이 보인다.


생각보다 엄청 크구나


모노레일 선로


모노레일이 들어오는 모습


역을 기준으로 하여 각종 전시시설이 있는 곳은 자연문화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이 되어 남아있다.

반면 역 남쪽에는 호텔과 유락시설들이 남아있다가 이후 한큐그룹의 관할로 엑스포랜드라는 놀이공원이

들어섰다. 그러나 2007년 풍신 뇌신2라는 롤러코스터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하면서 결국 방문객이 줄어

2009년 파산, 현재 놀이기구는 거의 다 철거되고 남은 건물은 엑스포 시티라는 레저, 쇼핑시설로 남아있다.


역 아래로 방향으로 이동

남쪽으로만 나갈 수 있다


엑스포 시티


대관람차는 85년 츠쿠바 과학엑스포에서 쿄세라가 만든 것으로 지름 85미터의 대형 관람차이다.


만박기념공원 표석

오사카 만박기념공원(万博記念公園)은 오사카부 스이타시에서 70년 열린 오사카 엑스포를 기념하는

공원이다. 당시로는 오사카 만국박람회라고 불렀지만 공식적으로는 일본 만국 박람회이다.

한국에서도 20세기 소년을 본 사람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행사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 전후 일본의 부흥을 선언했고, 이에 따라 서일본 지역에서도 이를 상징하는 엑스포가

추진되었다. 77개국이 참여하여 고도성장을 이룩한 일본의 위상을 세계에 얼렸는데 당시 총리 사토

에이사쿠가 주도하고, 황태자였던 아키히토 현 상황이 명예총재로 참여했던 대행사였다. 당시 7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하던 안보투쟁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반대운동도 있었으나 공산권 국가인

소련을 비롯하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쿠바 등도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은 캐나다에 이어 2번째로

참가 신청을 하였다. 이 외에 유엔, OECD, EC(EU의 전신)는 물론이고 심지어 몰몬교도 참여했다.

일본 내에서도 일본IBM, 미쓰이, 스미토모, 산토리, 도시바, 히타치, 후지, 미츠비시, 산와 등의

기업이 대거 기업관을 세워 참여했다. 미국의 경우 샌프란시스코, LA, 워싱턴주 등이

독자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동독과 서독은 공동 참여하여 화제가 되기도

엑스포 상징으로 엑스포 타워와 태양의 탑이 세워졌고, 이곳에 접근하기 위해 키타 오사카선이 개설되었다.

이후 키타센리 신도시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쇼와 천황 3회, 당시 황태자 5회 등 일본 정부도 관심을

기울였고, 6개월간 계속되었다. 입장료는 당시 성인 800엔으로 상당한 고가였다. 그럼에도 방문객이

목표였던 3000만명을 넘는 6400만명 이상에 달하였으니 당시 관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줄을 기다리다가 출산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엑스포에서는 비데,

에스컬레이터, 화상통화, 캔커피, 패밀리 레스토랑 등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초대형 엑스포의 종료 후 지어진 백여 곳의 건물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미 철거하기로 사전에

이야기되었다. 그리하여 태양의 탑 앞에 설치되었던 축제광장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었고

이 중 9곳의 건물은 이축되었으나 오래되어 4동을 제외하고는 철거되었다. 당시 송전탑과 전망대 겸용으로

사용되던 엑스포 타워는 127미터로 이후 상징으로 남았지만 2002년 노후화로 철거가 결정돼 해체되었다.

 당시 수집한 각종 미술품과 민속품 및 유물들은 오사카일본민예관, 국립국제미술관, 국립민족학박물관이

되었다. 당시 세워진 것으로 보존 결정된 국립국제미술관, 다목적 홀 등은 노후화로 철거되었다.

강철관은 엑스포를 기념하는 기념관이 되었다.

이렇게 자꾸 건물이 해체되자 2025년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보존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현재는 태양의 탑을 비롯하여 남은 흔적을 지키는 중이다.


일본박람회를 총지휘한 일본박람회협회 이사장 이시자카 타이조의 흉상

다이이치생명 출신의 경제인으로 경단련 회장을 하던 인물


자연문화원

입구라는 안내판


역과 공원 사이에는 고속도로인 추코쿠자동차도가 지나고 있다.


그 위를 가로지른 육교


멀리 보이는 태양의 탑


고속도로가 보인다


태양의 탑이 보인다.


입구 안내도


엄청나게 크다

주요시설만 볼 생각

250엔의 입장료가 있다.


드디어 보이는 태양의 탑


독특한 모습으로 이후 오사카 만박의 상징이 된 건물이다.

대전 엑스포로 치면 한빛탑 역할


높이 70미터로 꼭대기의 황금원반은 직경 10미터로 일몰 방향을 가리킨다.

3개의 얼굴이 있는데 정면 몸체에는 현재를 가리키는 태양의 얼굴, 뒷면에 과거를 나타내는

검은 태양의 얼굴, 상단의 황금색이 미래를 나타내는 황금 태양의 얼굴이다.


상단의 황금얼굴 눈의 직경만 2미터로 엑스포 기간에는 조명을 설치하여 눈에서 빔이 나왔다고.

일본의 대표적 미술가인 오카모토 타로가 설계해 만들었으며 처음에는 이렇게

혼자 있던 게 아니라 건축가 단게 겐조가 설치한 축제 광장의 시설이 있었다.

내부는 올라갈 수 있어 엘레베이터가 있고 높이 45미터의 생명의 나무라는 예술품이 전시되었는데,

이후 일부 분실되어 찾는 중이다. 본래 엑스포 이후 철거할 생각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어 1975년

보존이 결정되었고 이후 내부 공개가 금지되었으나 리뉴얼 후 공개가 되었다고. 아마 2025년 이전까지

문화재 지정이 될 듯. 등록유형문화재를 거쳐 중요문화재로 갈 수도 있다.


엑스포 당시의 모습


눈에서 빔


과거 축제 광장은 태양의 광장이라는 광장이 되었다.


전경


옆으로 돌아간다


양 옆으로 팔이 있다

이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