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아침 숙소를 나온다
숙소인 시탄 게스트하우스
대체적으로 깨끗하고 좋은데 남녀 혼숙방은 역시 불편하다
아침의 돈대문
아침밥은 규동으로 든든하게
바쿠로초역이 숙소 바로 옆인 것이 좋다
오늘은 먼저 카와사키로 간다
지하철 탑승
도영 신주쿠선의 바쿠로요코야마역
신주쿠역에서 환승해서
오다큐선으로 환승해야 한다
번화한 신주쿠역을 지나
목적지인 무코가오카유엔역에 도착
남쪽 출구로 나가는 중
아침의 무코가오카유엔역
조용하다
관광객은 올 일이 없을 작은 역
여기서 택시를 타고 메이지대학으로 간다
골목길에서 하차
조금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작은 쪽문이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인 메이지대학 평화교육 노보리토연구소자료관
수목금토만 개관
학교 안으로 진입
이게 자료관의 뒷면
건물들 옆으로 딱 봐도 전전의 것으로 보이는 건조물이 나오는데
창고 같다
통칭 탄약고라고 한다
외부는 좀 지저분해서 관리가 안된다는 걸 보여주는데
그나마 펜스라도 쳐놓은 듯
정확한 용도는 불명이고 비슷한 창고 하나가 더 남아있다고
교내 전경
농학부와 공학부가 있어서 그런지 온실들이 눈에 많이 띈다
노보리토연구소(登戸研究所)는 1939년 설립된 일본제국 육군 소속의 특수 연구소이다. 정식명칭은 육군과학연구소 노보리토 출장소로 대령급이 소장으로 부임했다. 육군 내에서도 풍선폭탄,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등 비밀병기와 신병기 개발, 적국에 살포할 위조지폐와 위조여권 생산 등 주로 비밀과 모략에 해당하는 연구를 담당했다. 이곳에서 인체실험이 행해졌다는 의심도 있고, 이른바 제국은행 사건 당시 사용된 독극물이 이곳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패전이 가까워지자 모든 연구자료를 파기하고 대부분의 관계자가 침묵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정체가 가려져 있었으나 근무자들의 증언으로 점차 실체가 밝혀졌다. 일부 인원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공직복귀가 이루어져 요코스카 기지 내에서 각종 위조 공문서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연구소가 폐지된 후 부지와 건물은 게이오 대학에서 사용하다가 1949년 대부분 메이지대학에 양도되어 현재는 거의 모든 부지가 메이지대학의 농학부와 공학부를 이루고 있다. 당시 건물들도 거의 해체되었으나 당시 사용되던 건물 하나를 남겨 메이지대학 평화교육 노보리토연구소 자료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수목금토 오전 10시에서 오후 16시까지만 개관한다는 안내문
거의 유일하게 남은 36호동 건물
이곳이 자료관이다.
자료관 정면
뭐 건물 자체야 성냥갑 같이 지어져서 별 특징이 안보인다
이제 들어가 본다
전시실 내부 구조
설립취지문. 반인도적인 전쟁의 어두운 부분을 직시하기 위해서라는 말에 눈에 띤다.
로비에 걸린 그림
로비에는 건물을 해체할 당시 나온 부재들도 전시중이다
전시실 내부의 세수대
과거의 모습 대로이다
과거 연구소 모형
위에 보이는 하얀색 지도가 현재의 모습이다
연구소의 탄생
최고 지휘부에 천황이 분명히 보인다
연구소의 전모
1939년 연구소의 탄생
육군연구소의 조직도
연구소의 운영 체계
점차 확대되는 연구소
노보리토에 연구소가 들어선 이유
도쿄와 가까우면서도 타마 구릉 지대에 있어 비밀 유지에 최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구소 조직체계
중일전쟁에서 필요한 비밀 공작을 수행했다
근무원들의 신분증명서와 일장기
설명 패널들
만주국 설립 등까지 관동군의 폭거를 보여준다
육군의 비밀전 시작
전비경쟁에 있어서 돈의 필요성
거대한 군비의 조달 방법은?
이들이 개발한 대표적인 비밀병기 중 하나인 풍선폭탄
좀 많이 허접한데
나름 대륙간 횡단 무기로 개발한 것이다
이런 풍선 1만개를 준비해서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에게 병원균 등을 보내려고 계획했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9천개 정도 중 300개가 북미 대륙에 도착해 10명 미만의 피해를 주었다고
풍선의 재료가 되는 종이
원료
공로장
풍선폭탄을 만든 공로를 치하하는 것
표창장
연구소에서 개발 한 생물학 무기들
풍선의 원료 부분인 종이의 실물
열심히 대륙간 횡단 기술을 개발했다고
오레건주에 실제 희생자가 죽어 그 위로비가 서 있다.
풍선 폭탄의 경로
폭탄의 구조
바람을 넣은 모습
밖으로 나가니 당시 방첩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다음 전시실은 제2과에 대한 전시를 진행중이다
제1과가 비밀병기를 만들었다면 제2과는 비밀선전을 주로 하던 곳이다
각종 공작들
모략, 선전, 방첩, 첩보가 2과의 업무이다
연구소 한쪽에 남아있는 동물위령비
당시 사용했던 책상
2과에서 만든 각종 첩보 도구들
당시 근무자가 사용했던 도구들
한쪽에서는 화학실험들도 했다고 한다
화학실험 용구들
제2과에서 사용했던 시계와 열쇠 등
2과 직원에세 내려진 기념휘장과
공로상장
생물병기의 개발
화학병기의 개발
지나사변(중일전쟁) 국채를 사라는 포스터들
전쟁 공채다
당시 전쟁공채
다음 전시실은 위조지폐와 제3과에 대한 내용이다
중일전쟁 이후 중국에 대량의 위조지폐를 뿌린다
이러한 통화 책략을 담당하는 것이 제3과이다
제3과의 위치
당시 사용하던 건물에서 해체한 부재들
제3과 건물의 모형
현재는 철거되었다
이렇게 모형만 남았다
위조지폐의 인쇄 및 배포 과정
당시 만든 위조지폐가 40억 엔어치, 액면가는 660억 위안에 해당한다고
만들어진 위조지폐
대륙타통작전을 하면서 엄청난 위폐를 쏟아부어 국민당 전권의 자멸을 추구했다고
노보리토연구소에서 만든 위조지폐 용지
중국의 중앙은행권과 동일하게 손문의 초상 볼륨이 보인다
위조지폐
복도 전경
암실
당시 암실을 그대로 복원해놨다
입장
암실 외부
세면대
당시 사용하던 책상
실험 모습
세면대
꺽여 있는 암실로 들어가는 입구
총력전에 대한 패널
애국부인회
비밀전을 입안한 참모본부 모략과
당시의 여과통
당시 근무자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기증했다고
본토결전체제
여과기 안내문
당시 사용하던 궤
나가노 대본영으로의 천도 계획
이때 연구소도 잠시 나가노로 이전한다
노보리토연구소에서 제조한 많은 실험 도구들
근무자가 기증한 것
나가노 분실에서 채칩한 물건들
소학교 학생들이 채집했다고
98식 위생여수기
731부대에서 개발했다고
패전 후 전체 기록을 소각하는 연구소
전후 연구소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
인체실험, 생물학병기 등 비인도적인 내용에 대한 폭로도 같이 이어지는 중
관련 서적들
731부대도 인정하는 것을 보니 좀 놀랍다
뭐 일본에도 이런 양심적인 세력은 있어야지
노보리토연구소 관련 서적
다시 로비로 돌아왔다
일본에서는 전전 육군이나 해군 시설을 평화기념시설로 전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런 경우 평화는 애매한 중립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곳은 자신들의 입장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어서 좋았다
협력자와 단체들
건물 밖 방화수호가 보인다
자료관에서 보는 전경
테이블에 보니 경계석과 방화수조도 보고 가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경계석
육군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렇게 첫 답사지를 보고 이제 카와사키의 다른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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