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루오 - 미제레레(Miserere) 연작

同黎 2013. 6. 18. 04:11

미제레레(Miserere) 시편 51편의 첫 마디. 주여 당신의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조르주-앙리 루오(Georges-Henri Rouault)는 20세기 초에 활동안 프랑스의 종교화가였다. 그의 동판화 연작인 미제레레(Miserere)는 예수의 수난을 주제로 하고 있다. 본래 미제레레는 단순한 종교화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루오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고, 판화집의 내용 또한 크게 변하게 되었다. 총 58번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1번에서 33번까지는 예수의 수난을 그린 종교화이다. 그런데 34번 이후에는 전쟁의 찬혹함을 그린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특히 <때로는 장님이 눈이 보이는 사람을 위로했다>라는 작품은 전쟁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제레레는 도저히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인간성의 실종인 전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티칸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미제레레(Miserere)  머리말


나는 이 작품을 스승이신 귀스타프 모로(Gustave Moreau) 선생과 나의 용감하고 사랑하는 어머니께 바친다. 어머니는 예술의 젊은 길손으로 갈림길을 빈손으로 헤매던 나의 첫 노력을 돕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두 분은 서로 달랐으나 이제는 우리 삶의 몫을 이루는 비통과 수모의 이 시대와는 달리 한결같은 미소 띤 어지심으로 용기를 주었다.

 

주제의 대부분은 1914-1918년에서 발단했다. 본래는 먹으로 그린 소묘의 형태로 처리되었던 것을 나중에 앙브루아스 볼라르의 요청에 의해 회화로 발전시켰다. 그는 우선 모든 주제를 동판에 옮기게 하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 필적을 동판에 남겨야 옳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당초의 율동과 그림을 살리느라고 무진 애썼다.

 

동판에 따라 잘 될 경우도 잘 안될 경우도 있었는데, 여러 가지 연장을 써가면서 끊임없이 작업을 거듭했다. 거기에는 아무런 비결도 없다. 만족을 얻지 못하는 나는 같은 주제를 무제한 다루면서 열두 번 내지 열다섯 번까지도 다시 해보곤 하였다. 모두 같은 수준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 일에 내가 애착했던 것은 사실이다. 어느 미국 대사가 동판 중 몇을 금판에 옮겨 대사관 벽에 붙였으면 하는 요구에 무심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 자신이 정성껏 감독한 인쇄가 1927년에 드디어 끝나자 앙브루아스 볼라르는 원판을 그어버리도록 하였다.

여러 사정으로 20년을 끈 작품 발간을 고대했던 끝에, 다행히도 1947년에 판화들을 되찾아 에투알 필랑트 사에 발행을 위탁할 수 있었다.

 

본래는 앙드레 쒸아레스가 그림에 글을 짓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그 일을 못하고 말았다.

앙브루아스의 죽음 - 전쟁 - 점령과 그 후환, 그리고 나 자신의 재판 등이 무기한 지연의 원인이 되었다. 본성으로는 낙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였건만 때로는 어두운 시간들을 겪었으며 벌써 언제부터 완성되어 있었고 나 자신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던 이 작품의 출판을 못보고 말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나마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목적에 도달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앙브루아스 볼라르에 대해 내가 공평치 못했다면, 아무튼 속도 기록과는 멀 망정 아름다운 책들을 만드는 취미도 있고 열정도 띤 그였으나 역시 우리네 세상의 한계를 돌보지 않고 그가 길손에게 맡기려던 허다한 작품과 그림을 모두 마치려면 삼백 년은 걸렸을 것이라고 해두자.

 

형상, 색채, 조화 -

눈, 마음, 정신에게는

오아시스 아니면 신기루

 

어둑한 수평선에 사라지기 전

그림의 부름인 울렁이는 바다 보고

'내일은 날이 좋겠지' 하고 난파자는 되뇌었다

 

그림자와 가면으로

괴로워진 이 세상에

평화가 깃든 것은 설마 아니리

 

십자가에 달린 예수 나보다 잘 말하리

재판받는 요안나의 짧고 높은 답변이며

이름없든 축성됐든 뭇 치명자 성인들도

 

1948년 파리에서

조르주 루오



1.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3)

Have mercy on me, God, according to Thy great mercy.



2. 멸시 받는 그리스도

Jesus reviled . . .

3. 지금도 채찍을 맞으며

eternally scourged . . .

4. 불쌍한 부랑자로 네 마음을 찾아드신다

seek refuge in your heart, poor wanderer . . .

5.외로이 모함과 악의로 가득한 이 삶에서

Alone in this life of snares and malice.


6. 우리 모두 죄인이 아닙니까?

Are we not convicts?

7. 임금인 줄로 알지만

we believe ourselves kings.

8. 그 누가 분장하지 않는가?

Who does not wear a mask?

9.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

It happens, sometimes, that the way is beautiful . . .

10. 긴 고통의 변두리 옛 동네에서도

in the old district of Long-Suffering.

11. 내일은 날이 좋겠지 하고 난파자는 되뇌었다

Tomorrow will be beautiful, said the shipwrecked man . . .


12. 삶이라는 힘겨운 직업(시편 51,3)

It is hard to live . . .

13. 사랑하면 그렇게도 포근할텐데

it would be so sweet to love.

14. 그 이름은 환락의 여인

They call her daughter of joy.

15. 싱그러웠던 입 안에, 이제는 쓴맛만이

On lips that were fresh, the taste of gall.

16. 부촌의 부인은 천국에도 특석을 예약할 셈이고

The well-bred lady thinks she has a reserved seat in Heaven.

17. 해방된 여인은 오후 2시를 열두 시라고 떠든다

Emancipated woman, at two o'clock, cries at noon.

18. 유죄선고를 받은 자는 떠나 버리고....

The condemned man went away . . .

19. 변호인은 통 모를 소리만 실없이 연설한다

his lawyer, in empty phrases, proclaims his total ignorance . . .

20. 십자가에 달린 채 잊혀진 예수 아래에서

under a Jesus forgotten on a cross.

21. 그는 학대당하고 멸시 받았으나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

"He has been maltreated and oppressed and he has not opened his mouth."

22.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직업은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는 것

In so many ways, the beautiful calling of sowing a hostile earth.

23. 고독한 자들의 거리

Lonely Street.

24. 겨울은 이 땅의 나병

"Winter, earth's leper."

25. 언제쯤 장 프랑수아는 할렐루야를 노래할까

Jean-François never sings alleluia . . .

26. 목마르고 두려운 이 땅에서

in the land of thirst and fear.

27. 애처롭도다...

"There are tears in things . . ."

28. 나를 믿는 자는 죽어서도 살 것이다(요한 11,26; 12,44)

"He who believes in Me, though he be dead, shall live."

29. 새벽에 노래하라. 하루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

Sing Matins, day is reborn.

30. 우리는......그의 죽음으로 세례 받았다(로마 6,3)

"We . . . it is in His death that we have been baptized."

31. 서로 서로를 사랑하시오(요한 15,17)

"Love one another."

32. 주여, 당신이군요. 저는 당신을 알아봅니다(요한 20,28)

Lord, it is You, I know You.

33. 그리고 부드러운 수건을 든 베로니카가 여전히 길을 지난다......

and Veronica, with her gentle cloth, still passes on the way . . .

34. 폐허조차도 사라져 버렸다

"Even the ruins have been destroyed."

35. 예수는 세상의 종말까지 고통을 받을 것이다

"Jesus will be in agony until the end of the world . . ."


36. 이번만이에요, 아빠!

This will be the last time, dear father!

37. 호모 호모니 로푸스(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이다)

"Man is wolf to man."

38. 흔히들 중국인이 대포 화약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었다고 말한다

The Chinese, they say, invented gunpowder, made us a gift of it.

39. 우리는 미쳤다

We are mad.

40. 얼굴을 맞대고

Face to face . . .

41. 운명의 여신들

Omens . . .

42. 어머니들은 전쟁을 증오한다

"War, hated by mothers."

43. 우리는 죽어야 한다. 우리와 우리의 모든 것도 다 함께

"We must die, we and all that is ours."


44. 나의 포근한 고향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My sweet country, where are you?

45. 죽음은 형극에서 겨우 벗어난 그를 앗아갔다

Death took him as he rose from his bed of nettles.

46. 의인은 향나무처럼 후려치는 도끼를 향기롭게 한다

"The just man, like sandalwood, perfumes the blade that cuts him down."

47. 깊은 수렁에서

"Out of the depths . . ."

48. 압착기에서 포도는 으깨졌다

In the wine-press, the grape was crushed.

49. 마음이 숭고할수록 목은 덜 뻣뻣하다

"The more noble the heart, the less stiff the neck."

50. 손톱과 주둥이

"With nails and beak . . ."

51. 랭스의 미소로부터 멀리 떨어져서(랭스 대성당 가브리엘 천사상의 유명한 미소) 

Far from the smile of Rheims.

52. 악법도 법이다

The law is hard, but it is the law.

53. 일곱 자루의 칼을 지닌 성모 마리아

Virgin of the Seven Swords.

54.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시오!(1916년 베로덩 전투에서 드리망 대위가 외친 소리)

"Arise, you dead!"

55. 때때로 장님이 눈이 보이는 자를 위로했다

Sometimes a blind man has consoled the seeing.

56. 허세와 불신의 이 암흑 시대에 깨어 있는 '땅 끝의 성모'

In these dark times of vanity and unbelief, Our Lady of Land's End keeps watch.

57. 죽음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죽음에까지 순종하는(필리 2,8)

"Obedient unto death and to death on the cross."

58. 그의 고통 덕분에 우리는 치유되었다(이사 53,5; 1베드 2,24) 

"It is by his wounds that we are healed."


시편 51편


1(50) [지휘자에게. 시편. 다윗.
2그가 밧 세바와 정을 통한 뒤 예언자 나탄이 그에게 왔을 때]
3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4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5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
6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에 악한 짓을 제가 하였기에
판결을 내리시더라도 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심판을 내리시더라도 당신께서는 결백하시리이다.
7정녕 저는 죄 중에 태어났고
허물 중에 제 어머니가 저를 배었습니다.
8그러나 당신께서는 가슴속의 진실을 기뻐하시고
남모르게 지혜를 제게 가르치십니다.
9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
10기쁨과 즐거움을 제가 맛보게 해 주소서.
당신께서 부수셨던 뼈들이 기뻐 뛰리이다.
11저의 허물에서 당신 얼굴을 가리시고
저의 모든 죄를 지워 주소서.
12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13당신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14당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15제가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16죽음의 형벌에서 저를 구하소서, 하느님, 제 구원의 하느님.
제 혀가 당신의 의로움에 환호하오리다.
17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의 찬양을 널리 전하오리다.
18당신께서는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시리이다.
19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20당신의 호의로 시온에 선을 베푸시어
예루살렘의 성을 쌓아 주소서.
21그때에 당신께서 의로운 희생 제물을, 번제와 전번제를 즐기시리이다.
그때에 사람들이 당신 제단 위에서 수소들을 봉헌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