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3

2013년 추계 예비답사 첫째날2 (화성, 오산, 안성)

화성 용주사 홍살문 앞 천보루 대웅보전 국보 용주사 동종 음통 세부신라종의 흔적이 보인다. 명분후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 비천상 용뉴 세부 장조(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를 모신 호성전 내부 오층석탑 독산성에서 바라본 동탄 신도시 독산성 안 사찰 독산석 석축 다른 곳에서 본 독산성 풍경 복원된 성곽 치 요건 죽주산성 죽주산성 남문터 인상 죽산리 사지 당간지주 오층석탑 칠장사 전경 삼층석탑 대웅전 대웅전 소맷돌 괘불지주 명문이 보인다 대웅전 특면 어느 건물이지?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누각에서 칠장사 찰당간 전국에 3개 밖에 안남은 철당간 석남사 도착 계단들 석탑들 영산전 대웅전 대웅전 측면 내려다본 전경

韓/국내 답사 2014.08.15

正祖의 龍珠寺 창건과 운영

正祖의 龍珠寺 창건과 운영한국사학과 석사수료박세연머리말 正祖는 아버지인 思悼世子를 伸寃하면서 동시에 永祐園을 수원으로 옮기고 園號를 顯隆園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현륭원에 필요한 祭需를 공급하고 무덤을 수직할 造泡寺를 건립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용주사이다.1) 조선왕조는 새로운 사찰의 창건을 금했기 때문에 정조는 현륭원 근처의 갈양사라는 절의 터를 찾아내어 이를 중건한다는 명목으로 용주사를 사실상 창건하였다. 이후 용주사는 왕실의 지극한 비호를 받으며 크게 성장하였고, 불교계 내부에서 큰 힘을 발휘하였다. 일제시대 불교계의 실력자로 30본산 연합사무소의 위원장을 지내고 불교중앙학림을 세움 姜大蓮(1875~1942)이 바로 용주사 주지였다는 사실은 용주사의 높은 위상이 20세기까지 이어졌음을 반증한다...

史/조선 2013.10.26

장용외영오읍군병절목(壯勇外營五邑軍兵節目)

壯勇外營五邑軍兵節目 華城之設外營, 爲拱護仙寢也, 掌以郡邑, 衛以士馬, 自昔伊然, 可按而知。 漢太上皇陵, 置邑曰萬年, 高祖長陵之邑戶過一萬, 武帝茂陵之邑爲一萬五千戶, 宣帝杜陵之邑爲五萬戶, 乃命三輔, 共衛五邑。 而兵衛之稱, 則如壽陵亭部、永陵亭部是也。 唐太宗昭陵, 分雲、咸二邑, 而爲醴泉之縣。 及至鳳陽基運之盛, 遂設皇陵衛、祖陵衛, 建官以總其權, 封地以表其尊, 于以壯軍容而鞏王基。 則今此因華爲城, 奉我珠邱, 聖心之所瞻慕, 民情之所依歸, 有非尋常關防之比。 旣置行宮, 又築崇墉, 不以元帥而鎭之, 列郡而衛之, 則節制只在於一境, 體貌反遜於三都, 烏在其屛翰輔車之義也哉? 於是陞爲留守, 仍管外營, 而四面五邑, 次第移屬, 如星之拱, 如輻之湊。 軍制則置親軍衛幾人, 入防軍幾哨, 合于內營之騎幾人步幾哨五千兵馬, 允叶于外都監之舊稱, 而仍以本..

史/사료 201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