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부타이 고분 3

폭설의 간사이 - 5일 아스카5 (이시부타이고분石舞台古墳)

갈 때는 차도를 넘어간다.위험하긴 한데 이게 더 빠르다. 가다가 길이 막힌 곳도 보인다. 이렇게 10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이시부타이고분 앞의 상점가가 나온다. 특별사적 이시부타이(석무대) 고분 입장250엔 백제 목씨의 후손으로 추정되기도 하는(정확하진 않다) 아스카시대의 실력자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으로전해지는 초대형 상원하방 고분이다. 다이카 개신 이후에 소가노 우마코를 원망하던 백성들이 흙을다 파내어서 봉분 속의 석실이 드러났다고 전한다. 돌 한 개가 75톤이 넘고 총 합계 2300톤으로추정되는 거대한 고분이다. 소가노 우마코는 쇼토쿠태자의 심복으로 함께 배불파인 모노노베씨를물리치고 아스카데라를 지었다고 전한다. 고조할아버지인 소가노 마치가 백제의 목만치와 동일 인물로추정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소가씨..

관서구법순례기 - 8일 아스카3 (이시부타이고분石舞台古墳·이나부치궁전터飛鳥稲淵宮殿跡·카와라데라川原寺·카메이시亀石·텐무지토천황릉天武持統天皇陵·다카마쓰고분高松塚古墳)

이시부타이 고분 (석무대 고분) 근처에는 광활한 유적지가 정비되어 있다. 군데군데 초석이 보인다. 해자를 건너 이시부타이 고분으로 가는 길 이 거대한 바위들이 이시부타이 고분의 석곽이다.수십 톤에 달할 걸로 추정되어 주인공의 막강한 권력을 짐작하게 해준다.이시부타이 고분은 방형분 혹은 텐무·지토천황릉처럼 하단-방형, 상단-원형인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소가씨의 전성기를 이끈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며 바로 뒤에 소가씨의 궁전 유적으로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되어 상당히 유력한 설로 여겨지고 있다. 소가씨가 멸망하고 많은 이들이소가노 우마코에 대한 원한으로 흙을 퍼내어 지금처럼 석곽이 노출되었다고 전해진다.노출된 석곽 때문에 절이나 신사에서 신불에게 노래를 바치는 석무대에 비유되어 이름이 붙여졌다...

入倭求史記 - 2일 아스카2 (타치바나데라橘寺·이시부타이 고분石舞台古墳)

덴무-지토 천황릉을 지나 이시부타이 고분쪽으로 길을 잡는다.그러던 중에 타치바나데라(귤사)라는 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들리기로 했다.결과적으로는 매우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밥 먹을 곳이 없다는 것.너무 시골이라서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을 넘게 걸었을 때 겨우 세븐일레븐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서 급히 식사를 해결한다.첫 일본 편의점 도시락은 나쁘지 않았다. 반찬은 한국과 비슷한데 밥의 수준이 현격하게 달랐다.한국 편의점 도시락은 밥이 푸석푸석한데, 여긴 정말 탄력이 있었다. 내내 먹을 만했다. 타치바나데라로 가는 길에 카와라데라(천원사)라는 절터를 만났다. 절은 거의 사라지고 유적만 남아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가 없다.아스카시대의 유적 위에 현대 미술품 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