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1차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2)

同黎 2015. 9. 5. 20:11



황극전 사방의 회랑은 진보관으로 쓰이고 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주로 금은옥기 등 귀중품으로 만든 화려한 중궁 주보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맨 먼저 보이는 것은 진주로 된 조주(朝珠)라는 것으로 108염주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일종의 목걸이이다.

당시 황제를 비롯한 모든 황족과 관료들은 관복이나 예복에 조주를 걸어야 했는데 계급에 따라 조주의 재료가 달랐다. 이렇게 화려한 조주는 황제나 황후, 비빈들만 걸 수 있었는데 순치제의 것이라고 한다.

 

청금석으로 된 조주

강희제 시대의 것이다.


이것은 조대(朝帶), 즉 예복에 걸치는 허리띠이다.

허리에 향낭 등의 장식품들을 달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영약(領約)이라고 하는 황후나 비빈들의 목걸이


비취로 만든 팔찌


금과 칠보로 만든 팔찌


수정 염주


비취와 금, 진주로 만든 귀걸이


옥과 수정으로 만든 옥패


비취로 만든 패


진주로 장식한 향낭. 안에 향이 나는 물건들을 넣고 다녔다.


진주와 산호 등으로 만든 머리 장식


편방(扁方)이라고 하는 머리 장식의 일종


청나라 황후, 비빈과 궁녀들은 머리를 크게 똬서 장식해야 했는데 편방은 그 모양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황후의 봉황관



명나라 만력제 시기에 만들어진 황후의 정식 예관이다.


봉황관의 정면


혹시 만력제의 무덤인 정릉에서 발견된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모르겠다.

정릉에서 발견된 것은 명십삼릉박물관에 있으니...


황제가 쓰던 조관(朝冠)

만주족 특유의 관에 진주와 금으로 된 봉황 장식을 올렸다.

새가 만주족의 토템이기 때문에 이렇게 봉황을 장식해 놓은 것 같다.

용이 없다는 점에서 만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조관 측면


청나라 황후가 쓰던 머리장식인 세자(細子)


명의 봉관과는 다른 형태가 확연하다.


청금석과 진주로 장식을 했고 정면엔 금으로 만든 봉황 장식을 올렸다.


세자의 측면


세화(細花)라고 하는 머리 장식


여러가지 비녀들


역시 머리 장식


황제의 조관(朝冠)의 정상을 장식하는 관정(冠頂)

가장 희귀한 보석으로 많이 만들었다.


비취로 만든 담뱃대 끝부분 장식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사파이어 덩어리와 반지


에메랄드 장식품들


비취와 수정으로 만든 남성용 반지

남성용 반지는 원래 활을 쏠 때 손가락에 끼는 손깍지에서 나온 것이다.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진주 장식물들


거대한 진주


루비


보석들로 만든 비연호(鼻煙壺)


비연호는 코담배 가루를 넣어 놓는 병이다.

비연호는 16세기 담배가 만주지역에 들어갔을 때 기마민족의 특성상 담뱃대를 사용할 수 없어 코담배를 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청의 입관 이후 코담배는 중국에 크게 퍼졌는데 곧 고가의 장식품 중 하나가 되어 수정, 옥, 유리, 산호 등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비연호는 중요한 골동 수집품 중의 하나이다.


옥으로 만든 각종 옥기


옥배추

대만 고궁박물관에 비취로 만든 유명한 배추가 있다.


여기도 비슷한 걸 전시해 놓았다.


옥으로 만든 소


수정으로 만든 장식품들



옥과 금으로 만든 화장품 합


옥으로 만든 불수화(佛手花) 장식


불수화는 부처의 손을 닮은 꽃을 말하는 것으로 청나라 때 크게 선호하는 꽃이었다.


금으로 만든 합



산호로 만든 사자


원래의 산호 모양을 꼬리로 살렸다.


금과 비취로 만든 합

안에는 사파이어가 들어있다.


옥으로 만든 향로



비취로 만든 벽


산수화를 새겨 놓았다.


마노로 만든 새 장식



전황석을 조각한 인장

전황석(田黃石)은 중국 인재(印材) 4대 명석 중 하나인 수산석(壽山石) 중 누런 색을 띄는 최상의 돌로 보통 밭을 가는 도중에 나오는 누런 돌이기 때문에 전황석이라고 한다. 인재석 중에 가장 좋은 최고급의 돌이다.

현재의 거의 채취가 되지 않아 돌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인재로 삼는 경우가 많다.

1그램당 가격이 황금보다 비싸고 더 이상 채취가 잘 되지 않으니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 인장은 그 귀한 전황석 한 덩이를 깎아 3개의 인장과 이 인장을 연결하는 사슬모양의 고리까지 조각한 것으로 사치의 끝을 보여준다.


건륭제 때 이런 전황석 인장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대만 고궁박물원에도 비슷한 것이 소장되어 있다.


옥으로 만든 합

주변에 같은 옥으로 만든 12지신이 앉아 있다.


옥합을 보관하는 나무 합에도 글자가 빼곡하다.


마노를 깎아 만든 잔


속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수정을 아 만든 잔


옥을 고 금으로 무늬를 새긴 잔



옥과 마노로 만든 차주전자와 찻잔


마노를 은 잔



금과 마노로 만든 수저 세트


마노를 아 만든 잔



옥으로 만든 찻잔


황금으로 만든 촛대


칠보 장식이 들어갔다.


법랑으로 만든 잔과 주전자

도자기에 서양풍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칠보로 만든 주전자


금동 편병

편병은 말 옆구리에 매다는 물병에서 유래한 것이다.


금잔


금잔


옥을 고 금으로 뚜껑을 만든 잔


금과 진주로 만든 잔과 잔대


금으로 만든 주전자


원래 진보관에 연결된 곳에는 석고관(石鼓館)이 있다.

이것은 서주~춘주시대에 만든 10개의 북 모양의 돌에 글자를 새긴 것으로 당나라 초기에 발견된 것이다.

 학자에 따라 서주의 선왕(宣王) 때 만든 것이라는 주장과 춘추시대 진문공이나 진양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하여튼 현존하는 중국의 석각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오랫동안 수많은 탁본을 당했기 때문에 보이듯이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본래 섬서성 보계시에서 출토된 것인데 금석문에 열광하던 당태종에 의해 수집되고 이후 청대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여기에 새겨진 석고문은 중국 전서의 모범 중 하나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필사되었다. 꼭 보고 싶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문이 닫혀 있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