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태화전으로 다가가본다.
압박감이 꽤 크다. 조선 사신들이 여기에 와서 태화전(太和殿)을 바라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중앙의 어도를 통해 태화전으로 간다.
월대의 모습
월대 아래서 본 태화전
태화전 월대는 3단으로 1488개의 난간석과 1142개의 배수구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태화전 월대에도 긴 답도가 있다.
자금성의 중심인 건물만큼 답도도 거대하다.
3단으로 짜여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태화전 답도
중간에 구름 사이에서 여의주를 가운데 놓고 놀고 있는 용이 보인다.
멀리 태화전이 보인다.
이 위를 황제가 탄 가마가 지나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조선의 예를 보아도 가마가 이 위로 지나간 적은 없다.
아마 호사가들의 말인 듯하다.
가운데에 있는 용
답도 하나 당 이렇게 9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답도(단지) 하단의 오악 부분
역시 부서진 부분을 때운 흔적이 보인다.
큰 돌덩어리에 새긴 것이니 좀 부서져도 새로 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계단 사이마다 정이 보인다.
태화전 월대에는 총 18개의 정이 있다고 한다.
태화전으로 올라왔다.
태화전 정면
아쉽게 내부는 볼 수 없도록 잠겨 있었다.
태화전 현판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만주어 병기가 되어있지 않다.
아마 중화민국 시절에 현판을 갈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청의 멸망 후 자금성 내조에 한하여 청나라 소조정이 운영되었고(내무부 등 황실 운영에 한한 기구만 존재)
외조는 박물원이 되었기 때문에 만주어 현판들이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태화전 위에서 바라본 태화문 전경
태화문
원래 태화전 앞에는 이렇게 청동으로 된 품계석이 서 있었다.
지금은 따로 보관하고 있다.
좌측 방향
내려다 본 답도
태화전 모습
총 11칸으로 가장 큰 건물이다.
보통 아무리 큰 건물도 9칸인데 11칸을 선택한 건 특이한 일이다.
태화전 정면
태화전 내부
옥좌 주변의 기둥은 금박으로 도금하였다.
바닥에는 금전을 깔았는데 소주에서 4718개를 공수해왔다고 한다.
옥좌 주변은 법랑기로 장식하였다.
태화전 천정
중국 황실 건축은 이렇듯 특이하게 여의주를 매달아 놓았다.
지붕 위에는 10개의 잡상이 있다.
대부분 사자, 기린, 용 등 길한 동물들이다.
단청은 가장 화려한 금단청이다.
태화전 양 옆에는 이렇게 청동으로 만든 길상물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학과 거북이이다.
학과 거북이는 장수를 의미한다.
이것이 일본으로도 건너가 지금 대표적인 일본의 정원에는 거의 학과 거북이를 형상화해 놓았다.
학 옆의 동제 거북이
거북이는 하나라 때부터 길한 동물이었다.
주역의 기본이 되는 하도낙서 중 낙서가 바로 거북이 등껍질에 그려져서 나온 것이다.
머리는 용 머리이다.
생동감있는 조각 모습을 하고 있다.
좌우에는 가량대와 일대가 있다.
그 중 가량대는 곡식의 부피를 재는 말, 되와 같은 것의 규범이 되는 표준을 의미한다.
즉 가량대는 땅과 경제의 권위가 황제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설명문이다.
한백옥으로 된 대 안에 청동으로 된 가량이 있는데 가량은 수미산 모양을 하고 있고 卍자가 새겨져 있다.
불교의 영향이 뚜렷하다. 조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
설명문
반대편에는 해시계인 일대가 있다.
한백옥으로 된 일대
일대는 하늘과 시간의 표준이 천자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시간 관측은 관상대에서 했으니 여기의 일대는 상징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반대편의 동학
동귀(청동 거북이)도 있다.
뒤편으로는 막혀있다.
두 개의 동항이 보인다.
동항은 순 우리말로는 드므라고 한다.
물을 담아 두는데 실제 소방의 목적보다는 불귀신이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도망하게 한다는 벽사의 의미가 강하다.
원래 금도금이 되어 있었는데, 2차 아편전쟁의 과정에서 침입한 서구 군대가 긁어갔다고 한다.
배수구의 구멍
태화전에서 바라본 태화문(太和門) 방향
이제 중좌문(中左門)을 통해 뒤편으로 나간다.
뒤편으로 보이는 거대한 월대와 우측의 회랑
삼단의 월대 위에 올라가 있는 중화전(中和殿)과 보화전(保和殿)이 보인다.
정방형의 중화전과 2층의 보화전 지붕
보화전
역시 사람이 많다.
회랑마다 있는 각루
숙직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창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긴 회랑은 창고나 군사 대기소의 역할을 했다.
중화전
자금성 중앙 부분은 오문-태화문-태화전-중화전-보화전-건청문-건청궁-교태전-곤녕궁-신무문의 구성인데,
이는 주례 고공기에 나오는 주나라 궁실의 오문삼조(五門三朝)를 나름대로 구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경복궁의 경우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신무문의 구성으로
제후의 궁실인 삼문삼조(三門三朝)을 재현한 것이다.
하지만 참 이해할 수 없는 곳이 중화전이다.
이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건물은 원래의 상징적 용도가 뭐였을까?
중화전은 명대 화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가정제 때 불타자
다시 지으면서 중극전이라 개칭했고, 순치제 때 다시 중화전으로 바뀌었다.
태화전에 조회나 각종 의례가 있을 시 황제가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대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용으로만 썼을 리는 없고 나름 활용을 하였는데 천단, 지단, 태묘, 사직단, 선농단 등의
제사를 지낼 때 황제가 축문과 제문을 살피고 보관하는 곳이었으며,
상소를 보거나 관원을 접견하는 편전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청대에는 황실 족보를 7년마다 개수하는데 여기서 감수를 했다고도 한다.
뒤편의 보화전
정면 9칸의 2층 건물이다.
태화전 뒷면
저 뒷면으로 보이는 문으로 황제가 드나들었다.
그러니까 태화전 앞으로의 어도는 평상시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월대 올라가니 난장판이다. 뭐 워낙 크다보니 여기서 쉬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돗자리 깔고 누워있을 것까지야...
비위가 상해 사진을 올리진 않았지만 어떤 애는 중화전 계단에 오줌까지 쌌다.
시민의식 면에서 중국은 아직 먼 것 같다고 탓할 수도 있지만 여기 관광객 대부분이 중국
각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구경하는 사람들일텐데...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한 곳에 온 것인데
교양을 지킬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교양을 요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월대 위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북해공원의 백탑이 보인다.
중화전 정면
정사각형의 건물로 맨 위에는 보주 모양의 기와가 얹어져 있다.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애가 오줌싸는 건 왜 제지하지 않은 걸까...
중화전 현판
중화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따온 것이다.
중화전 답도
중화전 기단의 조각
중화전 내부
안에는 반질반질한 금전을 깔았다.
가운데에는 윤집기중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역시 예기의 유명한 인심도심 구절에 있는 말이다.
내부 모습
주련도 걸려 있다.
옥좌 주변을 장식하는 법랑기들
태화전 뒷면
가운데 조그만 문이 황제의 출입문이다.
보화전
명대에는 근신전이었다가 가정제 때 건극전으로 바뀌었고, 청대 들어서 보화전이 되었다.
본래 편전의 기능을 하거나 중화전으로 가기 전 의복을 제개하는 곳이었는데
청 초기 후삼궁이 복구되기 전까지 순치제와 강희제의 침전으로도 쓰였다.
또 매년 제석과 정월 대보름 때에는 2품 이상의 대신과 왕공, 팔기의 패륵과 종실을 모아 연회를 베풀었고, 건륭제 이후에는 전시를 치루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보화전 정면
보화전 현판
보화전 답도(단지)
용이 두 마리만 있는 간략한 모습이다.
산의 개수도 3개로 간략한 편이다.
보화전 내부
역시 금전이 깔려 있다.
현판에는 황건유극이라 하여 천자를 강조하는 말이 있는데 건륭제의 친필이다.
황위가 세워지면 극, 즉 표준와 규범이 생긴다는 뜻이다.
앞에는 카페트가 깔려있다.
해가 들어오는 보화전 내부
잘 안 보이지만 옥자 위로는 금으로 용을 그려 놓았다.
안에는 역시 금으로 장식된 옥좌와 여러 법랑기가 장식되어 있다.
중화전 뒷면
역시 가운데 있는 문이 황제의 출입문이다.
월대 너머로 보이는 여러 건물들
무영전인 것 같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쉬고 있다.
월대 모습
멀리 보이는 누각과 북해공원의 백탑
저 누각은 비공개 구역인 우화각이다.
건륭제가 어렸을 때 자란 중화궁 구역에 있는 3층 누각으로 티벳 불교 사원이다.
안에는 수십 개의 불상과 탕카가 있다고 하는데 비공개 구역이다. 나도 도록만 가지고 있다.
이제 옆으로 간다.
금을 긁어간 자국이 뚜렷한 동항
월대에서 보는 풍경
멀리 건청문과 건청전이 보인다.
보화전 뒤로 유명한 운룡대석조도 있고 후삼궁도 있지만 먼저 서육궁 구역부터 가기로 한다.
끝이 안 보이는 건물들
뒤로 경산공원의 만춘정이 보인다.
이제 월대를 내려간다.
한 켠에 있는 기념품점 겸 까페
이런 거라도 있어야 살지
작은 우물도 보인다.
뭘까
월대를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
일단 자금성 외조를 둘러봤다. 벌써 지치지만 볼 게 엄청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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