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낙수당을 나온다.
확실히 낙수당 뒷마당부터는 나무가 많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이화헌(頤和軒)
이화헌은 별당 같은 느낌으로 건륭제 때 만들어졌고 역시 광서제 때 서태후에 의해 중수된 건물이다.
뒤로는 회랑이 있어 뒤의 경기각(景祺閣)과 연결되어 있다. 좌우로도 회랑이 있어 전체적으로
낙수당에서 이화헌, 경기각까지를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이화헌에서 경기각은 내부가
연결되어 있어 안에서는 건물이 바뀌는 것을 그리 느낄 수 없다.
앞에는 일대와 월대가 있다. 일대는 말 그대로 해시계고,
월대는 물을 담아 놓는 석대인데 밤에 달빛이 비추게 하는 것이다.
낙수당과 이화헌 사이에는 이렇게 향로와 괴석이 있다.
이 괴석은 수석 중에서도 가장 좋다는 관통석이다.
보통은 자연석으로 나오는 경우는 좀 드물고 저런 종류는
석회암질이 있는 돌을 화학물질에 담궈 석회질을 빼서 만든다.
이화헌 현판
건륭제의 친필이다.
여기에는 주로 티벳불교 관련 법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금과 옥으로 만든 공양구
보통 티벳식 우유차를 담아 불상 앞에 공양할 때 쓴다.
금으로 만들어 칠보와 보석을 입힌 공양구
금으로 만든 감실
청금석과 보석으로 장식하고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금으로 만든 경전함과 불경
티벳식 불경이다.
금으로 만든 불병(佛甁)
사미산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부처 앞에 공양물을 올리는 티벳식 금불병이다.
티벳식 불탑
전형적인 티벳식 불탑으로 안에 사리나 불경을 모시는 역할을 하고 그 자체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청대 황실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불탑이다.
기단은 사자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곳곳에 보석을 박아 넣었다.
금으로 만든 겔룩파(황모파)의 시조 쫑카빠의 상
앞에 금으로 만든 번(幡) 두 개까지 있다.
금으로 만든 여래상
금으로 만들어 보석을 박아 넣은 불상
금으로 만든 입체만다라
중국어로 한역할 때는 단성(壇城)이라고 한다.
역시 금으로 되어 화려함을 보여준다.
경기각으로 넘어가는 회랑에 전시된 불탑
다른 모습의 팔각 불탑
금으로 만든 칠보(七寶)와 팔보병(八寶甁)
부처 앞에 바치는 공양물을 의미한다.
음식과 향기, 소리, 색, 권세, 마음 등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경기각을 나와 왼편으로 몸을 틀면 부망각(符望閣)이 보인다. 건륭제 때 지은 건물로 3층이다.
여기서 정월 21일 밀교의식을 치루고 왕공대신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영수궁 화원이다. 보통 건륭화원(乾隆花園)이라고 많이 불린다.
자금성 중앙에 위치한 어화원보다 더 자유로우면서도 비교적 소박한 미로 유명하다.
사실 어화원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건륭화원이 훨씬 여유롭다.
부망각 모습
3층으로 화원 전체를 조망하는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진비정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부망각을 들어서면 커다란 괴석이 보인다.
이런 괴석은 태호석이라고 불린다.
이 정도 괴석은 구하기 어려웠을텐데
특히 괴석은 주로 소주 등 강남지역에서 나기 때문에 북경까지 옮겨올 때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부망각을 지나서 심연서옥(尋沿書屋)을 만난다.
심연서옥은 광서제 당시 도광제의 손자이자 선통제의 아버지인 순친왕이 머물던 곳이다.
순친왕(醇親王)은 마지막 황제 선통제 부의의 아버지이며 선통제 즉위 시 섭정감국왕을 지내기도 했다.
서태후 사후 실질적인 권력자이기도 했다.
심연서옥을 지나면 드디어 진비정(珍妃井)이 나온다. 비극적인 사건의 장소이다.
광서제의 애첩이었던 진비(珍妃)는 몽골인으로 광서제의 변법운동을 지지하면서 서태후의 미움을 받았다.
광서제는 그런 진비를 몹시 총애했는데 항상 서태후의 미움을 받는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의화단의 난 도중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함락시키기 직전 서태후는 그녀를 이 우물에 처넣어 죽여버린다.
시신은 1년 후에 수습되었다고 한다. 자기 여자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광서제가 유폐 이후 더욱 폐인이 되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무려 35년 동안 제위를 지켰지만 끝내 서태후에 의해 독살당하게 된다.
엄청 작은 것 같지만 지금은 뚜껑이 덮여있는 것이다. 진비의 죽음은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변법자강운동의 실패를 상징하기도 한다. 때문에 서태후를 싫어하고 망국의 안타까움을 지니는 꽤 많은 중국인들에게 진비정은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이다. 구룡벽과 함께 진보관에 입장하는 큰 목적이기도 하다.
그녀의 사후 자매였던 근비가 한쪽에 그녀의 명복을 비는 회원당(懷遠堂)이라는 작은 사당을 세워주었다.
회원당 내부
진비의 작은 신위가 모셔져 있다.
이제 진비정을 떠니 진보관을 나온다.
진비정 옆으로는 경복궁이라는 한국의 경복궁과 한자도 똑같은 궁이 하나 더 있고
그 안에 내가 관심있는 황실 불교사원인 범화루나 불일루도 있지만 지금은 비공개였다. 안타깝다.
왼쪽의 건물은 수초당(遂初堂)
수초당 뒤편의 연취루(延趣樓)
여러 개의 회랑으로 총 4개의 같은 소정원이 나뉘어져 있다.
곳곳에 이런 괴석이 놓여 있다.
수초당과 경기각, 이화헌을 이어주는 회랑에는 이런 석각판이 붙어 있다.
이것은 건륭제 때 만든 법첩 중 하나인 <경승재첩(敬胜齋帖)>의 석각이다.
삼희당법첩도 그렇고 건륭제는 서화에 관심이 많아 이런 석각도 많이 남겼다.
수초당
건륭제 때 만든 건축물로 건륭화원을 즐기기 위한 중심공간이다.
수초당 앞의 옥으로 만든 산자
여러 태호석을 모아서 만든 산
건륭화원의 정자 중 하나인 고화헌(古華軒)
넓게 트여있는 정자이다.
여러 태호석을 쌓아 만든 가산(假山) 위에는 돌로 만든 석대(石臺)도 보인다.
노대(奴臺)라고 하는 대로, 선대(仙臺)라고도 불린다.
노대로 올라가는 길. 막혀있다.
서로 찍어대는 정재현과
이종욱
녹대를 바라보는 정자인 계상정(禊賞亭)
凸자 모양으로 된 정자이다.
역시 건륭제 때의 건물이다.
누각과 태호석, 괴석들이 어우러진 풍경
영수궁화원(건륭화원) 안내문
이것도 무슨 산이다.
사실 우리는 진보관이 이렇게 클 줄 몰랐기 때문에
진비정 이후로는 이 곳을 빠져나가고 싶어 초고속으로 지나갔다.
진짜 힘들다. 소요시간은 2시간
드디어 자금성 진보관(영수궁 구역)을 다 봤다. 문을 나와 종표관 방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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