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구성된 역사
1. 들어가며 : 낮선 역사, 미술사.
역사학(특히 문헌사학)을 공부하는 이에게 미술사는 어떤 의미일까? 어느 문화권이나 사회든지 미술 역시 사회의 상황을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며, 또한 의미 있는 사료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역사학 전공자들에게 미술사는 낯선 영역일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체계를 가진 학문이다. 문헌역사학과 고고학, 미술사학은 해방 후 학문의 체계가 잡히고 있을 때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학 전공자는 미술사를 편협한 학문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사는 분명 역사의 한 갈래이며, 역사학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 역시 미술사에 그대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역사학에서 오랫동안 서구중심주의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아왔다. 미술사 또한 다르지 않아서 서양미술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이 오랫동안 남아, 미술사=서양미술사라는 공식이 언젠가부터 우리의 머리속에 남아있으며, 서양미술사와 동양미술사, 그리고 제3세계의 미술사는 완전히 분리되어진 체로 연구되고 있다. 그리고 현대 미술과 현대 이전의 미술(고대부터 근대까지)은 또한 연구체계가 거의 분리되어 있으며 서양미술의 전통만을 잇고 있다. 그리고 몇몇 “도전적인” 서양의 예술가들은 동양을 비롯한 제3세계의 “민속예술”에서 “생명력”과 “야성”, “깊은 인상”을 받으며, 이를 자신들의 표현수단에 접목시키고, 찬양한다.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전혀 다른 고민을 가진 예술가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로 회화와 서예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 전통 미술의 후예들은 자신들이 이어오던 전통의 소멸을 걱정하면 어떻게 하면 서양의 방식과 재료를 이용하여 전통예술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고래(古來)의 전통 미술품들을 전범(典範)으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서양미술사를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기존의 미술사는 동양과 서양과의 관계가 전혀 고려되어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불가능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는 미술사의 구조를 비판하고 있는 제임스 엘킨스의 <과연 그것이 미술사일까?>와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살펴보고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에 대한 재평가를 예술을 통해 시도한 존 맥켄지의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를 바탕으로 어느새 낯설어져 버린 전문가들만의 학문인 미술사의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구조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문화(즉 이데올로기 형성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의 하나인 미술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2. 비(非) 서양미술사에 대한 인식
제임스 엘킨스는 대학에서 미술사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미술의 역사(즉 여러 시대의 경향이나 운동)을 풍경화 내지 지도로 표현해보라고 하였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한 중국인 여학생의 것과 미국인 남학생의 것이었다. 중국인 여학생의 지도에서 미술은 고대 중국과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 실크로드, 그리고 유럽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내”가 서있는 곳에서 모이고, “나”의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으며 그 건너에는 현대미술이 위치해 있다. 미국인 학생의 그림에는 로마와 그리스 미술이 산으로 우뚝 솟아 있고, 그 산으로부터 길을 따라 서양미술의 여러 사조들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길을 내려오고 있는 미술학도들을 현대미술이 가로막고 있다. 중국미술과 아프리카 미술은 외계인이 타고 있는 UFO 표현하였다. (참고로 중국와 아프리카의 미술을 외계인으로 묘사한 점에 대하여 이 미국인 학생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으나, 외계인으로 표현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제임스 엘킨스, )
위에서 묘사한 그림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미술사에 대한 인식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두 그림 모두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중국인 학생의 그림에서 우리는 세계 미술사의 전통의 동양(중국)의 전통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인 학생의 그림에서는 서양미술사의 굳건한 전통인 로마와 그리스 문명에서 시작된 서양미술사가 시대를 따라 (비록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현대 미술에 이르고 있으며 중국과 아프리카의 미술은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미술사의 전통에서 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나타나고 있다.
서양미술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살펴보자.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의 원제는 “The Story of Art" 이다. 즉 원제로부터 우리는 이 책이 원래 미술사 전반을 다루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을 미술사 전체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서양미술사라는 제목을 붙였다. 서양미술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곰브리치는 원시 유럽,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와 헬레니즘 미술, 로마, 비잔티움, 중세 유럽, 그리고 르네상스를 거쳐 모더니즘에 이르는 서양미술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서구권의 미술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확인해보자. 알타미라 동굴 벽화 같은 원시 유럽의 미술을 다루고 있는 제1장에는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그리고 콜럼버스 이전의 남북아메리카의 ”민속품“들이 함께 실려있다. 그렇다면 이 유물들의 시대는 언제인가? 알티미라 동굴 벽화와 라스코 동굴 벽화는 기원전 15000~10000년의 유적이다. 그러나 함께 지면을 장식하는 마오리족의 건축 장식은 19세기 초반의 것이고, 나이지리아의 청동 두상은 12~14세기의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이 기원후 10세기 이전의 것이고 가장 오래된 유물은 기원후 3~6세기 경에 만들어진 잉카제국의 토기이다. 이것들은 모두 합쳐자 ”원시미술“ 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비록 곰브리치가 ”원시“라는 단어가 이 미술가들의 재능이 미개하다는 뜻이 아니며, 이들의 착상이 중요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결국 그는 제3세계의 미술이 ”원시“의 상태에서 진보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혐의를 벗을 수 없다. 더욱이 원시 미술이라고 뭉뚱그려졌지만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미술이 같을 리는 없다! 미술의 발전사를 일관된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하라는 그의 의도가 제3세계의 미술은 원시 안에 가둬둔 것이다. 결국 이들이 제대로 된 미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문명의 발달 정도가 아니라, 단지 문헌상의 기록이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사를 서양 중심으로 현대까지 일관되게 연결하려는 그의 의도 때문에 <The Story of Art>에서는 전체미술사에 있어 인도 미술의 경우 헬레니즘과 연결되는 간다라 미술만을 소개하였고, 이슬람과 중국 고대 미술을 시대와 성격이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잔티움의 앞 장에 짤막하게 뭉뚱그려 소개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이다.
3. 미술에서의 오리엔탈리즘
위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미술사를 대표하고 또한 미술사를 표준화했던 곰브리치의 업적은 불행하게도 모든 문화권의 미술을 유럽의 언어로 표준화시켰다. 예를 들어 한나라시대에 만들어진 녹유(綠釉) 박산(博山) 향로를 보고 “바로크”스럽다고 한 어느 서양미술사가의 이야기는 미술사가 어떻게 표준화되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비서양 문화권의 미술사는 평가절하 당하고 있는가? 그 근원은 애초에 서양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본래 오리엔탈리즘은 미술사적 용어이다. 많은 유럽의 화가들은 동양(이집트 등 중근동을 포함한)을 주제로 한 회화를 그려왔다. 린다 노클린은 특히 제국주의 시대 유럽에서 그려진 아시아, 중근동의 회화들을 분석해본 결과 이들에서 동양은 서양과 반대되는 독재, 잔인함, 게으름, 욕정, 무기력한 퇴보, 운명론, 문화적 타락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것이 제국주의적 통치와 개혁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존 맥켄지는 린다 노클린의 주장에 일부 동의하지만, 당시의 화가들이 오리엔트 대하여 그린 그림들은 동양을 비난하고 제국주의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명이 잃어버린 고대의 다양성을 동양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며 화가들은 동양의 색과 빛, 무늬에서 새로운 미술 운동을 시도할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 자신들의 문명이 잃어버린 고대의 다양성을” 찾고 있다는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마치 곰브리치가 1만 7천년전 유럽의 동굴벽화가 19세기의 오세아니아 민속품을 비교하며 “원시 미술의 건강성”을 거기서 찾고 있듯이, 동양 혹은 중근동에서 서구와는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이다. 환상이라는 환상이고 착각이라면 착각인 이러한 유럽인의 감수성은 역시 오리엔탈리즘으로 귀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이 단순한 형식이나 기교를 참고로 했을 뿐이라는 존 맥켄지의 주장은 실제로 유럽회화에서 나타나는 오리엔트에 대한 편견 - 가령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왕의 죽음> 같은 그림에서 나타나는 폭력, 관능적 묘사 - 을 애써 외면하는 것에 불과하다.
들라크루아 - <사르다나팔라싀 왕의 죽음>
4. 결론 : 한국의 근대성과 미술
이 글에서 모두 다룰 수 없는 이야기지만 끝으로 오리엔탈리즘이 한국의 미술에 미친 영향을 살피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구한말 서양화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한국의 화원들은 거기에 경도되고 만다. 화원 출신으로 한국화단을 주도하게 되는 이당 김은호의 <흥영공 이우 초상> 같은 그림을 보면 동양화와 서양화 어색한 만남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운보 김기창의 그림에도 이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일본화 교육기관인 동경미술학교에서 수학하기도 한 이들은 “근대적”인 서양화 기법을 억지로 한국의 전통 회화에 끼워맞추려고 하였다.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답을 일본의 경우, 즉 일본의 채색화에서 찾으려고 하였고, 곳 그들의 그림은 왜색(倭色)을 띄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조선에는 근대가 없으며, 전통 회화를 근대화 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한 강박에 시달렸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후예는 종이가 아니라 캔버스에 붓질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해방 이후에는 전통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 생산자가 아니라 국가와 전문가(엘리트)들에게 장악당했기 때문에 한국 전통미술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김은호 - <흥영군 이우 초상>
현재 미술사 연구는 서방과 동방의 교류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접근이 거의 전무하다. 실크로드 미술이 보여주듯이 서로의 연관성이 분명 있을 것이고, 억지로 서로를 끼워 맞추지 않더라도 동양미술과 제3세계 미술에 대한 복권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특히 기존에 민속학과 인류학의 범위로 분류되었던 제3세계 미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전통 미술이 경험한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고, 각 문화권의 진정한 “전통” 문화가 건강한 민중문화로 남을 수 있는 바탕은 미술사 연구 구조의 재편을 통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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