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도와 신사
일본에서 신도(神道 신토)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신앙을 뛰어넘어 생활의 영역에 들어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아기가 태어날 때 신사를 찾아 신의 축복을 청하고, 사람이 죽을 때는 절을 찾아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지금도 매해의 끝나는 날과 시작하는 날 일본인들은 신사에 들려 신에게 인사를 하며 축복을 빕니다. 이처럼 신도는 별도의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세시풍속과 같지만 한국인들이 신도를 바라보는 눈은 곱지 않습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강요와 지금도 계속되는 야스쿠니신사의 문제 때문입니다. 제국주의시대의 잘못된 역사와 한·일 국민간의 시선 차이는 지역신앙에 불과했던 신도를 정치의 영역으로 올려 놓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신도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주의할 점은 신도와 불교가 원래 둘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고대와 중세를 거치면서 신사와 사찰은 거의 한 몸이 되었고 절 안에 신사가, 신사 안에 절이 존재하는 경우가 신했습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신불분리의 칙령이 내려져 신사와 사찰을 강제로 분리시키게 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후술할 신도에 관한 이야기는 앞서 말한 불교에 관한 부분과 겹치는 점이 많습니다.
이 점에 유의하면서 일본의 각 지역신앙이 어떻게 신도라는 하나의 종교로 정리되었고, 또 그것이 역사를 거치면서 권력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신사들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일본인에게 있어 신도와 신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4-1. 일본의 신화
●『고사기』와 『일본서기』
일본의 신화는 크게 두 번에 걸쳐 정리됩니다. 첫 번째는 나라시대에 편찬된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천조대신(天照大神)이라고 하는 아마테라스에서 천황가로 이어지는 계보를 정리하고,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전해지던 여러 전승들을 하나의 신화로 통합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국가가 완성됩니다.
두 번째 정리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군국주의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면서입니다. 천황을 살아있는 신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신화 내용을 실제 역사와 동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신 중 하나인 스사노오를 단군과 동일시하고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과 같은 이야기를 사실로 규정하며 일본과 조선의 뿌리가 하나라는 일선동조론을 펴기도 합니다.
이렇듯 일본 신화와 신도는 『고사기』와 『일본서기』라는 두 종류의 역사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고사기』는 다이카개신 이후 이전까지 구전되던 각종 신화를 천황의 명으로 오노 야스마로(太安万侶)라는 문관이 편찬한 것입니다. 원본이 남아있지 않아 한 때 위작설이 돌기도 했지만 오노 야스마로의 무덤이 확인되면서 진서(眞書)로 확인되어 위작설은 힘을 잃고 『고사기』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고사기』는 일본의 신화와 역사를 천지창조부터 제33대 스이코천황((推古天皇)까지 연대별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사기』의 상권에 해당하는 <신대기(神代記)>는 일본 신화 연구의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서기』는 역시 다이카개신 이후 편찬된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서인데, 『고사기』가 한 인물에 의해 만들어진 사찬(私撰) 역사서라면, 『일본서기』의 경우 국가에서 설치한 기관에서 만든 최초의 관찬(官撰) 역사서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사기』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창세신화부터 제41대 지토천황(持統天皇)까지 연대별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일본서기』의 경우 역사적 가치가 매우 애매한데, 일단 이 시기 일본이 본격적으로 천황제 국가로 거듭나면서 『일본서기』의 내용에 왜곡과 가필을 매우 많이 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백제본기(百濟本記)』 등의 백제계통 사료가 인용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내용을 보충해주는 사료로 유용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최근에는 엄격한 사료비판을 통해 『일본서기』를 사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신화 서술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에서 정설로 인정한 본서(本書)라고 표현된 부분 외에 다른 전승 내용들 역시 일서(一書)라고 하여 본서 아래에 병렬해 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일본서기』는 국가의 입장에서 신화의 정설(定設)을 확립하려고 하면서도 지역별, 가문별로 전승되어 오던 다른 내용들 역시 기술함으로써 신화 해석의 영역을 다소 열어 놓았습니다. 이후 군국주의시대 일본에서 이용한 일본의 신화도 『일본서기』의 본서 내용보다는 일서 부분에서 주로 인용한 것입니다.
이상의 두 사료는 일본신화 연구의 가장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존재입니다. 두 책을 만들며 개별적으로 전승되던 수많은 신화는 하나의 신화로 통합되었고, 지역별로 존재하던 많은 신도 몇 개의 신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후 살펴볼 가장 대중적인 신사에 모셔진 신들은 오히려 이 두 책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러한 점에 유의하면서 일본 신화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천지개벽(天地開闢)
일본신화에 따르면 최초의 세계는 하늘도 땅도 없는 흐물흐물한 달걀 같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 후 음과 양이 나뉘면서 가볍고 깨끗한 것은 하늘이 되고 무겁고 부정한 것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습니다. 이때 나타나는 하늘은 다카마노하라 혹은 다카마가하라(高天原) 등으로 불리며 신들이 사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에서 세상의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다섯 명의 신이 스스로 나타납니다. 이들은 성별도 없고 스스로 나타났다가 세상의 유지를 위해 스스로 모습을 감추어 버립니다. 이 때 등장하는 신들 중 하나인 타카노무스히(高皇産霊尊 혹은 高御産巣日神)는 본래 최고신이었으나 후에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의 신앙층에게 세력이 밀려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최초의 다섯 신 이후에 7대에 걸쳐 12명의 신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신들은 대를 거쳐 스스로 생겨나면서 점차 성별이 생겨나며 마지막 일곱 번째 대의 신의 남매신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남녀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남매신이 이자나기(伊邪那岐 혹은 伊弉諾)와 이자니미(伊邪那美 혹은 伊弉冉)입니다. 일본 신의 이름은 책이나 전승마다 한자가 다른데, 이것은 일본어 발음을 한자를 빌려 그대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국산신화(國産神話)와 신산신화(神産神話)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다른 신들의 명을 받고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위에 서서 국토를 만들러 내려옵니다. 이들은 긴 창을 들고 바다를 휘저어 거품처럼 떠 있던 땅을 굳게 만듭니다. 그리고 최초로 만들어진 땅 위에서 서로 교합하여 일본의 국토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여성인 이자나미는 순서대로 아와지시마를 비롯하여 일본의 혼슈, 시코쿠, 규슈, 쓰시마 등 여덟 개의 섬을 낳습니다. 이 때의 섬은 국토 그 자체인 동시에 신이며, 아직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홋카이도 등은 포함되지 않으며 쓰시마 등의 섬을 큰 섬으로 취급하는 등 당시의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처음 8개의 큰 섬을, 뒤이어 작은 6개의 섬을 출산한 신화를 국산신화(国産み)라고 합니다.
국토의 출산을 마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이어서 여러 신을 낳기 시작합니다. 이때 나았다고 전해지는 신은 정말 다양한데, 일본의 대다수 귀족가문의 조상신은 이 과정에서 일본신화에 편입됩니다. 그러나 불의 신인 카구츠치를 낳다가 불에 데어 그만 죽어 황천(黄泉)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자 이자나미를 그리워한 이자나기가 카구츠치를 죽여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 버리는데 이것이 일본의 각 화산의 신이 됩니다.
이자나기는 결국 황천의 나라로 이자나미를 찾으러 돌아갑니다. 마침내 두 신은 만나지만 황천의 신들과 의논할 테니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는 이자나미의 신신당부를 어긴 이자나기는 썩어들어가 구더기가 들끓는 이자나미의 시신을 보게 됩니다. 이 때 구더기와 시신에서 각종 악신(惡)과 공포를 상징하는 신들이 태어납니다. 분노한 이자나미는 하루에 1000명을 죽이겠다고 맹세하고, 이자나기는 하루에 1500명을 태어나게 하겠다고 응수하며 둘은 헤어집니다.
이자나기는 황천에서 돌아와 지상의 강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하는데 이때 다시 수많은 신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왼쪽 눈을 씻을 때 아마테라스(天照大神)가 오른쪽 눈을 씻을 때 츠쿠요미(月読命)가 코를 씻을 때 스사노오(須佐之男 혹은 素戔男尊)가 태어납니다. 이 세명의 신을 가장 귀한 신이라고 하여 삼귀자(三柱の貴い子)라고 하며 이나자기는 아마테라스에게는 하늘의 나라인 다카마가하라(혹은 다카아마하라)를 츠쿠요미에게는 밤의 나라를, 스사노오에게는 바다의 나라(혹은 땅의 나라)를 다스리게 합니다. 이렇게 여러 신이 태어나게 과는 과정을 신산신화(神産み)라고 합니다. 이렇게 국토와 신이 탄생하고 본격적으로 신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국토 창조
●스사노오(須佐之男)와 신라(新羅)
이제 이야기는 스사노오에게로 맞춰집니다. 보통 스사노오노미코토라는 존칭으로 불리는 이 신은 악한 면과 선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때로는 누나인 아마테라스에게 대항하고 때로는 복종하는 등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보통 스사노오를 섬기던 정치세력이 아마테라스를 섬기던 야마토 세력에 편입되면서 있었던 불협화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들의 세력이 무시할만한 크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자나기가 세 신에게 각자의 통치구역을 나누어 주었지만 스사노오만은 가지 않고 어머니 이자나미를 보고 싶다고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스사노오는 바다와 땅 등 지상을 다스리는 신이었기 때문에 땅이 메말라가고 생물들이 죽어가자 아자나기는 그를 지상에서 추방시키고 스사노오는 누나가 다스리는 천상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오가 자신을 공격하려 하는 줄 알고 이를 방어하다가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를 공격할 뜻이 없음을 증명하자 그를 받아줍니다.
그러나 천상에 올라온 스사노오는 계속해서 사고를 일으킵니다. 논두렁을 훼손하거나 신전에 똥을 뿌리는 등의 행패를 일삼다가 마침내 베틀에서 베를 짜던 여신을 놀라게 하여 죽게합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아마테라스는 동굴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게 되는데, 그녀는 태양의 여신이었기 때문에 천지가 모두 깜깜해졌습니다. 그러자 천상의 여러 신들은 동굴 밖에서 시끄러운 축제를 벌여 아마테라스를 유인해 밖으로 나오게 하는데, 이를 일본의 축제인 마츠리(祭り)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천상의 신들은 마침내 아마테라스를 되찾고 스사노오를 다시 지상으로 내쫓아 버립니다.
지상으로 쫓겨나 스사노오가 처음 내려간 곳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많습니다. 지금의 규슈 일대라는 설과, 시마네현의 이즈모 일대라는 설이 있지만 『일본서기』의 한 전승에는 그곳이 신라국(新羅 일본어로는 시라기)의 소시모리(曽尸茂梨)라는 땅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스사노오가 가라국(韓國)에는 금은이 많다는 말을 했다는 전승도 있어 스사노오가 신라에서 건너간 신이라는 말도 많습니다. 스사노오에 대한 신앙이 깊은 시마네현 일대에는 스사노오가 신라의 땅을 밧줄로 걸어 당겨온 것이 이즈모라는 전설도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스사노오와 신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학자들이 주목해왔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학계에서는 소시모리가 소머리를 나타낸다고 생각했고, 이에 한국에 있는 우두(牛頭)라는 지명에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일본은 이를 식민통치에 이용해 일본인은 아마테라스의 후손이고 조선인은 스사노오의 후손이니 양국민의 조상이 같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스사노오는 신라 계통의 신이며 신라 계통의 민족들이 이즈모로 이주했다는 증거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여튼 이즈모로 이동한 스사노오는 이곳에서 머리가 꼬리가 각각 여덟 개이며 사람을 잡아먹던 뱀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를 퇴치하고 이 지역 신의 딸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그 뱀의 몸 안에서 검을 하나 발견해 누나인 아마테라스에게 바치는데 이것이 천황의 삼종신기(三種神器) 중 하나인 천총운검(天叢雲剣,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 별칭 쿠사나기노츠루기)입니다. 아마테라스는 이 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후일 자신의 자손이 내려가 나라를 세울 것이니 국토를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때의 스사노오는 매우 충성스럽고 용맹한 신으로 묘사됩니다.
동굴에서 나오는 아마테라스
야마타노오로치를 물리치는 스사나오
●천손강림(天孫降臨)과 국토이양(國土移讓)
스사노오는 이후 어머니 이자나미가 있는 황천으로 가 그곳의 신이 되고 그 뒤는 스사노오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6대손이라고도 하는 오오쿠니누시(大国主)라는 신이 등장합니다. 이 신은 후손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별개 계통의 신이라고 생각됩니다. 오오쿠니누시는 형제들의 암살시도를 물리치고 황천에 가 있는 스사노오를 설득해 그의 딸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초를 찾아내고 질병을 다스리며 마침내 국토를 다스릴 수 있는 땅으로 만들게 됩니다.
오오쿠니누시가 국토를 다 개척하자 아마테라스는 신들을 그에게 보내 이 땅은 본래 자신의 자손들이 다스리기로 약속된 땅이니 국토를 자신의 자손에게 이양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 사이에 전승에 따라서는 알력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나 결국 오오쿠니누시는 아버지 스사노오가 있는 저승으로 떠나고 그 대신 이즈모에 자신을 모시는 신사를 지어 줄 것을 청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세신궁과 함께 일본의 양대 신사라고 하는 이즈모대사(出雲大社)입니다.
국토이양을 완료한 아마테라스는 자신의 손자인 니니기(瓊瓊杵尊 혹은 邇邇芸命)를 내려보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신이 함께 하늘인 다카마가하라에서 내려오는데 이들은 후일 여러 귀족가문들의 조상이 됩니다. 또한 아마테라스는 자신이 스사노오를 피해 동굴에 들어갔을 때 자신을 불러내기 위해 여러 신들이 사용한 곡옥(曲玉)과 거울, 그리고 스사노오가 자신에게 바친 검을 내려주는데 이것이 천황이 즉위할 때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삼종신기가 됩니다.
지상에 내려온 니니기는 지금의 규슈지방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산과 들의 신인 오오야마츠미(大山祇神)의 딸들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중 언니 이와나가히메(石長比売)는 추했고, 동생 코노하나사쿠야히메(木花咲耶姫)은 매우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니니기는 그 중 언니를 그 아버지에게 다시 돌려보냈는데, 각각 언니는 영생을, 동생은 번영을 의미했기 때문에 이후 니니기의 후손이 되는 천황가는 번영하지만 영생을 하지는 못하고 인간은 모두 한정된 수명을 가지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로써 일본이라는 국가의 기초가 마련되고 인간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상의 신화는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신들의 계보가 전승에 따라 엉망진창인 것은 물론이며, 국토를 양보한 오오쿠니누시가 다스리던 땅은 시마네현의 이즈모 지방인데, 정작 니니기가 내려온 땅은 규슈의 남부지방이라고 전해집니다. 즉 이상의 신화는 결국 규슈에서 시작되어 지금의 간사이지방으로 영역을 넓힌 야마토 정권이 이즈모의 강력한 세력을 흡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정치적인 신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테라스에게서 삼종신기를 받는 니니기
천손강림
●진무동정(神武東征)
니니기가 지상에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아직도 일본 신화에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성립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훨씬 이후의 일이지만 일본의 신화에서는 니니기의 증손자인 카무야마토이와레비코노미코토(神倭伊波禮毘古命)대에 이르러 드디어 일본이라는 국가가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카무야마토이와레비코노미코토라는 긴 이름 가운데 들어가 있는 야마토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람은 야마토정권을 상징하는 인물이며 일본에서 제1대 천황으로 여기는 진무천황(神武天皇)입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따르면 진무천황은 니니기가 지상에 내려온 이후 무려 180만 년 후의 인물이지만 니니기의 증손자입니다. 당시 지금의 나라현 남부의 미야자키현 일대에 살던 진무천황은 자신의 형 4명과 함께 동쪽을 정벌해 일본의 본토인 혼슈로 건너가 제대로 된 국가를 세울 것을 결심합니다. 이들은 지금의 후쿠오카, 히로시마, 오카야마지역을 거쳐 오사카의 나루터에 상륙했는데 이 지방의 호족인 나가스네히코(長髄彦)의 격렬한 공격을 받아 4명의 형이 모두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진무천황은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상륙하여 지금의 나라현 남부에서 다시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때 진무천황을 지원하기 위해 아마테라스와 타카노무스히가 검을 내려주게 되는데, 그 검을 신으로 모신 곳이 바로 칠지도(七支刀)로 유명한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입니다. 또한 아마테라스는 거대한 까마귀인 야타가라스(八咫烏)를 내려보내 진무천황의 길을 안내합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까마귀를 길조로 여기는 곳도 있습니다. 여러 신들의 지원으로 진무천황은 결국 지금의 긴키지방을 평정하고 현재의 나라현 가시하라시에 수도를 세우게 됩니다. 이것을 진무동정이라고 합니다.
수도를 정한 진무천황은 드디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이것을 약 2650년 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니니기에게 천양무궁의 신칙(天壤無窮の神勅)을 내리면서 이 땅은 그 후손들이 대대로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일본 황실이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왔다는 '만세일계(万世一系)의 황통'의 주장이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 진무천황이 있었다는 시대는 일본의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며 이후 그 자손에 해당하는 2~9대의 천황은 아예 통치 기록이 없고, 수명만 수 백 년에 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야마토정권은 아무리 빨라도 기원후 2세기, 좀 더 명확히는 4~5세기의 천황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야타가라스를 안내를 받아 적을 물리친 진무천황
●신공황후(神功皇后)와 삼한정벌(三韓征伐)
일본사에서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어디서부터 잡을 것인지는 늘 논쟁적입니다. 극우측에서는 당연히 1대 진무천황부터 실체로 보지만, 이른바 근대적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근대 일본의 역사학자들도 임나일본부를 주장하며 신공황후(神功皇后 진구황후)를 실존 인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신공황후라는 인물이 실존인물이 아닌, 신화적 존재라는 것은 분명히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신공황후는 신라와 가야를 정벌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한 것으로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초기 천황들의 기록의 경우 신을 직접 만나는 등 그 내용이 신화에 가깝습니다. 실제 일본에서도 신공황후와 그 아들인 오진천황(応神天皇)을 신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신공황후를 신화의 영역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신공황후는 제14대 천황인 주아이천황(仲哀天皇)의 부인이라고 전해지며 신에게서 신라를 정벌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복속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편인 주아이천황이 이를 믿지 않다가 신벌(神罰)로 죽게 되자 섭정이 되어 신라를 정벌했다고 합니다. 배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갈 때 이미 아들을 임신했다고 하는데 돌로 산도를 막아 출산을 늦추고 신라를 복속시켰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신공황후가 삼한을 정벌할 때 지나갔다는 곳에 세운 신사가 무수히 많으며 지금도 군사의 신으로 숭배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적으로 이 시기에는 일본에 신라를 정복할 만한 군사를 동원할 국가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를 정벌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일반적인 정설은 3~400년 후 신라와 당의 백제 정벌 당시 백제를 구원하러 규슈까지 직접 갔던 여자 천황인 사이메이천황(斉明天皇)을 모델로 삼아 만든 가공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전쟁의 기록들은 대부분 백제의 신라 정복 기록을 차용했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천지창조에서부터 역사시대에 가장 근접한 시대까지의 일본 신화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커다란 신화적 기둥 아래 일본의 민속신앙이 신도(神道) 종교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현재 접하는 신도는 기본적 신화와 관계없는 신들이 더 인기가 많으며 종교로써의 체제도 많은 변화를 거쳤습니다. 아래에서는 신도라는 종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공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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