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신도의 개념과 역사
●고대신도
일본의 신도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에 정령이 서려있다는 애니미즘(Animism)과 특정한 자연물이나 상징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토테미즘(Totemism)에 기초한 민속신앙입니다. 앞선 일본 신화에서와 같이 일본의 야마토 정권은 태양신을 숭배하며 태양의 여신을 최고신으로 삼았지만, 실상은 각각의 지역신이나 자연물을 숭배하는 경향이 계속 되었습니다. 태양신인 아마테라스를 중심으로 하는 신격의 정리는 『고사기』나 『일본서기』의 성립을 즈음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대의 신도는 자연물, 특히 산이나 바위, 바다에 뜬 섬 등을 주요한 숭배의 대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신사인 오미와신사(大神神社)는 신사 본전 뒤에 위치하고 있는 미와산(三輪山) 자체를 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또한 규슈에 있는 오래된 신사인 무나카타대사(宗像大社)는 바다에 떠 있는 섬 자체를 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 밖에 교토나 나라에 있는 많은 오래된 신사들은 산이나 산에 있는 특정한 바위 신앙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산악신앙에 한반도와 중국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이 가져온 고유 신앙이 더해지면서 고대 신도가 성립이 되어갑니다.
다이카개신 이후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가면서 전국의 신사와 신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일본의 고대국가는 천황=신이라는 관념에서 시작한 제사장 국가였으므로 신사를 챙기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앙정부에서는 신기관(神祇官)이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천황가와 귀족들, 그리고 각 지역의 호족들이 섬기는 신사를 공인해 이들에 대한 제사를 지내주게 됩니다. 또한 불교가 유입되면서 신도는 자극을 받아 기존의 민속신앙 정도의 형태를 뛰어넘어 본격적인 종교의 형태를 지니게 됩니다.
한편 종교적 색채를 버리려고 했던 헤이안시대에는 모든 신사를 관리하는 것을 중단합니다. 중앙 정부에서는 전국의 신사 중 가장 중요한 22개의 신사의 제사만을 국가 재정에서 관리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 쿠니(国)마다 가장 중요한 신사를 정하고 이를 이치노미야(一の宮)라고 하며 해당 쿠니의 신사를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이후 점차 신도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귀족이나 호족, 그리고 불교세력과 결탁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인 오미와신사(大神神社)의 신인 미와산(三輪山)
동일본에서 오래도록 신앙의 대상이었던 후지산
신으로 모셔지는 나치 폭포
●신불습합(神仏習合)과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説)
신도에 있어 불교의 영향은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처음 불교가 일본에 전래되었을 때 신도는 불교와 대립했고, 이것은 정치적 투쟁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불교에 호의적인 천황가와 소가씨, 전통적으로 신앙된 고유의 신을 지키는 모노노베씨(物部氏)와 나카토리씨(中臣氏 후의 후지와라씨)의 투쟁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급 사상이었던 불교가 공인되면서 신도는 불교와의 투쟁보다는 협력과 모방을 꾀하게 됩니다.
신불습합은 신도와 불교의 공생관계를 의미합니다. 신불습합을 통해 신사의 신과 사찰의 부처는 서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불습합의 기원은 나라시대 국가적 사업이었던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大佛) 건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불과 대불전의 건립, 그리고 대불의 도금에 이르기까지, 도다이지 대불의 조성은 국가 재정을 위협할 정도로 큰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규슈의 지역신이었던 하치만신(八幡神)을 모시던 우사하치만궁(宇佐八幡宮)이라는 신사의 신관이 하치만신이 대불의 조성을 도우라는 신탁(神託)이 내려졌다고 상경(上京)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국가는 이를 통해 일본의 신들도 도다이지 건립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선전하였고, 결국 도다이지는 여러 귀족들의 후원까지 받아 무사히 건립됩니다.
하치만신의 신탁은 단순히 일본 고유의 신이 사찰 건립을 후원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본의 신이 불교에 귀의하며 성불하기를 원한다는 것으로, 마치 힌두교의 신들이 불교의 하위신인 천부로 편입된 것처럼 일본의 신도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하치만신은 다시 불교에 귀의한다는 신탁을 내렸고 조정으로부터 하치만대보살(八幡大菩)이라는 명칭을 수여받으며 출가한 승려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신도가 불교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면서 지역의 거대 신사들 역시 사찰의 세력으로 편입되었고, 신사 안에는 신궁사(神宮寺)라고 불리는 사찰들이 건립됩니다. 본격적으로 신사와 사찰이 구분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지금 신사 안에 절이 없는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 이를 모두 갈라놓았기 때문입니다.
신도의 신불습합은 밀교의 유포와 함께 크게 번성합니다. 특히 진언종이 각종 소원을 이루어주는 주술과 기도를 들여오면서 신도의 신앙과 가장 크게 결합합니다. 천태종 역시 이러한 흐름에 합류하면서 두 종파에 의한 신불습합의 체계화와 이론화가 급격하게 진행됩니다. 이러한 결과 완성된 이론이 바로 본지수적설입니다.
본지수적설이란 일본의 여러 신들이 불교의 부처, 보살 등의 화신이라는 이론입니다. 이러한 이론은 일본은 신국(神國)이라는 기존의 믿음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 즉 신국인 일본에서 왜 불교가 시작되지 못하고 외국에서 전래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신의 나라의 일본은 성스러우나 부처가 태어나지는 않은 땅이었기 때문에 부처와 보살들이 신의 모습으로 내려와 있다가, 불교가 전래되면서 비로소 본 모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각종 신들과 부처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예컨대 아마테라스는 신도의 근본신이자 태양의 신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대일여래와 동일시 되었습니다. 스사노오(素盞鳴)는 약사여래, 하치만신은 아미타여래, 이자나기는 석가여래, 이자나미는 천수관음 등 각각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부처와 보살의 속성을 부여받았습니다. 중복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밀교의 특징 상 부처의 화신(化身)이 여럿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각지의 산악신앙은 본지수적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불교 신도들의 순례를 촉진했습니다.
우리가 신도를 이해할 때 이 신불습합과 본지수적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불교의 현지화 능력과 신도의 체계화 노력이 합쳐지면서 일본 종교사에는 이러한 특이한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토와 나라를 여행할 때, 큰 사찰과 큰 신사가 가까이 있다면, 바로 이 신불습합에 따라 본래 하나였던 곳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나라의 고후쿠지(興福寺)와 가스가대사(春日大社)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편 진언종과 천태종은 각각의 신도 이론을 발전시킵니다. 그 복잡한 여러 이론을 우리가 모두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신도의 불교화는 더욱 강해졌고, 신사의 관리를 대부분 사찰에서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신사는 사찰의 토지를 넓히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여겨지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발이 점차 고개를 들게 되었습니다.
도다이지(東大寺)에 모셔진 승려 형상의 하치만신상
나라 가스가대사(春日大社)의 건물 위에 그려진 각종 부처와 보살들
●중세와 근세의 신도
중세에 불교와 신도의 결합은 더욱 공고해지고 이론도 완성도를 띄게 되지만 철학의 발달에 따라 이에 반발하는 신도 측의 이론가들도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반발의 움직임을 보인 곳은 일본 신사들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마테라스를 모신 이세신궁(伊勢神宮)입니다. 이세신궁은 천황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으로 자부심이 대단한 곳입니다. 그래서 이세신궁의 신관(神官)들은 아마테라스는 대일여래의 화신이라는 불교계의 논리를 거부하였고, 이세신궁은 전국의 신사 중 거의 유일하게 신궁사가 없는 신사가 되었습니다.
근세에는 신도 철학이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이시기 일본 사상계에는 세 가지 새로운 흐름이 들어옵니다. 조선 등을 통해 유입된 유학(성리학), 스페인 등을 통해 들어온 천주교와 화란(和蘭)이라고 불리던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과학기술인 난학(蘭學), 훈고학을 통해 일본 고유의 역사와 사상을 분명히하려는 국학(國學)이 바로 이 세 가지 조류입니다. 이 세 가지 조류는 모두 불교와 신도를 분리시키려는 시도를 하려 합니다.
먼저 유학자들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을 인격을 가진 신과 동시에 추상적인 성리학의 철학적 개념으로 설명하는 유학신도를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신도에 유학 특유의 도덕론을 부여하여 신과 인간의 관계를 천황과 백성의 군신관계로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국학자들은 신도에서 불교색을 철저히 지우고 『고사기』에서 원시적 신도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합니다. 이것을 복고신도라고 합니다.
한편 에도시대 말기에는 불교와 신도를 분리하려는 노력에 서양을 통해 들어온 유일신 사상과 민중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퍼진 메시아 사상이 결합해 유일신을 모시는 신도의 분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한국에 좀 알려진 편인 천리교(天理教 텐리교)와 흑주교(黒住教 쿠로즈미교), 금광교(金光教 곤고교) 등 신생의 종교들이 탄생합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도 불교와 신도의 관계는 강력했으며 이러한 상태에서 메이지유신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세신궁의 모습
●신불분리(神仏分離)와 국가신도(国家神道)
흔히 근대적 혁명으로만 평가되는 메이지유신은 실은 굉장한 반동(反動)적 성격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정치를 천황이 담당하는 왕정복고(王政復古)의 이상에는, 천황이 제사장의 역할도 지니고 있었던 제정일치(祭政一致)의 회복도 들어있었습니다. 다음 장에도 설명하겠지만 수 백 년 동안 한낱 상징에 불과했던 천황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살아있는 신(神)이 됩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제정된 일본제국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신도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정신 그 자체라는 선언이 실려 있습니다. 신도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근본적 도덕률이고 신사 참배는 국가 자체에 대한 충성이므로 어느 종교를 믿던 일본 국민인 이상 신사와 신도의 신에 대한 참배를 의무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후 기독교인 등 타종교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도는 이때 국가적 지원을 받아 종교로써의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국가에는 신기관(神祇官)이나 교부성(教部省)라는 신도와 신사 조직을 관리하는 기관이 생기고, 신도는 신도대교(神道大教)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때부터 신도는 민관(民官)이 합동으로 관리하는 반(半)국가 반(半)종교 조직의 성격을 띠게 됩니다. 또한 신사별로 등급을 나누고 높은 등급의 신사에는 천황이 직접 제물(祭物)을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신도를 국가 정체성으로 규정하며 특권적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을 국가신도라고 합니다.
국가신도 아래서 일본의 고대사는 다시 한번 국가의 입맛에 맞게 조작됩니다.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지역마다 모셔오던 신들이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천황의 조상신들로 교체됩니다. 한편으로는 메이지유신과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신격화시키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도쿄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를 비롯하여 전국에 호국신사(護國神社)를 지어 국가를 위해 죽은 이들을 신으로 모시고 죽으면 신이 된다며 국가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빈번해지는 것입니다. 원래 일본이라는 지역의 민족신앙에 불과했던 신도는 메이지유신을 거쳐 국가와 한 몸이 되면서 제국주의와 전쟁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신도가 국가 도덕의 기초로 선언되면서 기존까지 신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던 불교는 신도와 강제로 분리되게 됩니다. 메이지유신 직후 메이지천황은 신불분리의 칙령(神仏分離令)을 내리게 됩니다. 신불분리의 명을 통해 신사에 있던 모든 신궁사(神宮寺)는 제거되고 신사에서 모시던 불상과 탑 등 불교적 시설물도 대부분 철거되게 됩니다. 사찰 내에 있던 신사는 분리되어서 예전에는 하나로 붙어 있던 신사와 사찰의 구역이 나누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찰이나 사찰과 결탁이 심했던 신사의 토지는 몰수되어 국가의 소유가 됩니다.
또한 신불분리를 통해 신과 부처를 하나로 여기던 신불습합의 관습도 제거됩니다. 위대한 천황의 조상신이 외래신인 부처보다 낮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찰에 대한 공격이 진행되는데, 이 과정을 폐불훼석(廃仏毀釈)이라고 합니다. 사찰에 대한 공격은 지역에 따라 국학사상에 깊게 젖은 번의 무사들이 직접 하는 경우도 있었고, 농민이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는 사찰이 거대한 지주의 역할을 하여 농민들을 착취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폐불훼석을 통해 수 많은 사찰의 문화재가 파괴되거나 유출됩니다. 특히 나라의 경우 사찰의 횡포가 심했던만큼 민중에 의한 폐불훼석이 극심했습니다. 지금 나라현청이 위치한 나라시내와 사슴들이 여유롭게 지나다니는 나라공원의 넓은 땅은 모두 고후쿠지(興福寺)라는 사찰이었지만 모두 몰수된 것입니다. 신사에 따라서는 소중히 보관해오던 불상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밤에 몰래 불상을 다른 사찰로 옮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목조 불상들은 이때 땔감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폐불훼석을 보다 못한 서양학자는 일본 불교문화의 중요성을 정부에 알렸고, 이에 일본정부는 파괴행위를 금지하고 오래된 사찰과 신사에서 보관해오던 문화재에 대한 일제 조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후 지정된 법령이 바로 고사사보존법(古社寺保存法)으로 현(現) 문화재보호법의 전신이 되는 법률입니다. 그리고 시대를 지나오면서 내려온 일본의 문화재보호법 체계는 한국의 문화재보호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군인들
폐불훼석으로 인해 훼손당한 나라 고후쿠지(興福寺) 불상 조사 당시의 모습
훼손된 채 지금까지 보관중인 불상
●현재의 신도
2차 대전 패전 이후, 천황은 자신은 신이 아니라는 인간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GHQ에 의해 신도에 관한 내용은 헌법에서 삭제되고, 일본은 철저히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신헌법에 새겨 넣습니다. 때문에 2차 대전 이전과 같은 정부 내 신도 관리 기관은 모두 사라지게 되고, 국가와 신도는 공식적으로 분리됩니다. 국가신도가 종말을 고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신도가 종말을 고했어도, 기존세력이 한순간에 영향력을 잃게된 건 아니었습니다. 기존 세력들은 전국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이세신궁을 중심으로 신사본청(神社本庁)이라는 종교법인을 만들어 전국의 신사를 포괄하게 됩니다. 이 신사본청이 이제 신도라는 종교의 본부가 되었습니다. 신사본청은 자민당 등 우익계 정치인들과 교류하며 2차 대전 이후로 쇠퇴하고 있는 신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설립과정의 주요세력으로 참여했던 것이 바로 우익단체인 일본회의(日本會議)인데, 여기서 배출한 대표적인 정치인이 바로 현 총리인 아베 신조입니다.
그러나 신사본청에서 분리된 신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먼저 야스쿠니신사와 전국에 있는 호국신사는 전범(戰犯)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는 정치적 문제가 있어 공식적으로는 신사본청에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 신사에는 현재도 순직한 자위대나 경찰관, 소방관 등이 합사(合祀)되고 있기 때문에 자위대에 의해 지원받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밖에 신사본청의 독단적 행보에 불만을 지니고 있던 전통적 대형 신사들의 경우도 신사본청과 분리해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 제2위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는 이즈모대사(出雲大社)와 교토의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稲荷大社) 등이 이에 포함됩니다. 이외에 천황가의 조상과 큰 접점이 없는 다른 유서 깊은 신사들도 독자적인 종교법인을 만들어 독립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신사와 신도는 비교적 다시 메이지유신 이전의 민간신앙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신사를 찾는 것을 종교로써 인식한다기 보다는 세시풍속처럼 느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물론 천리교 등 신도에서 분리된 신생 종교들이 있기는 하지만 신사를 찾는 것을 특별한 종교로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신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화해하려면 신도에서 과거 국가주의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사본청과 현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관계를 나타내는 일본 신문기사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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