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4일 - 교토 후시미1 (히노탄조인日野誕生院)

同黎 2016. 6. 16. 02:11



넷째날 아침

애들은 좀 자라고 냅두고 나는 먼저 길을 나선다. 나중에 우지에서 만나기로 한다.

숙소에서 바로 길을 건너면 교토역 지하로 통하는 지하도가 있다.


비 올 때는 짱 편하겠다.


도중에 교토타워로 통하는 길도 보인다.


나는 교토 지하철을 타고 이동


가라스마오이케에서 환승하여


도자이선 로쿠지조행으로 환승


중간에 이시다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오랜만이다. 원래 다이고지에 가서 2킬로미터정도 산행을 하는 상다이고를 하려고 했는데

그 곳을 보려면 하루를 써야 한다고 해서 그냥 오랜만에 호카이지를 보고

덤으로 히노탄조인을 보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다.


2번 출구로 나와 코너를 돌면 히노탄조인이 종점인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그러나 보다시피 너무 버스가 뜸해 들어갈 땐 택시를 탄다.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

걸어가려면 시간도 힘도 너무 들고 해서 택시를 타고 들어와 나갈 때 버스시간에 맞춰 나간다.


뒤로 보이는 곳이 호카이지, 그 사이가 유치원

그 뒤로 히노탄조인이 있다.

재작년에 왔을 땐 시간에 쫓겨 히노탄조인에 못 갔는데 이번에 다시 와본다.


들어가면 바로 신란성인 탄생지지라는 비석이 보인다.

신란(親鸞, 친란)은 정토진종의 교조이다.

헤이안시대의 말기 말법사상의 영향으로 유행하던 정토신앙은 가마쿠라신불교로 정리되면서

호넨(법연)에 의해 한 번 정리되었다. 호넨의 제자 신란은 정토종의 신앙을 더욱 근본주의화시켜서

오직 아미타불에 의한 절대 타력 구원을 강조하고 염불신앙을 강조한다. 한편으로는 승려의 결혼과

육식을 긍정한다. 정토진종을 믿는 농민들이 일으킨 농민반란이 바로 잇코잇키이며 이들은

오다 노부나가에 맞서고 오사카라는 도시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일본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신란의 초상 

엄청 매섭게 생겼다.


신란은 히노(日野)씨이다.

히노씨는 후지와라씨 북가의 일파로 일본의 귀족가문인 당상가에 속하면서도 무사계급과의 연계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후지와라가의 한 사람이었던 후지와라노 스케나리(藤原資業)가 자신의 영지인

히노 땅에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하는 사찰(지금의 호카이지)를 세우고 그것이 이후 히노씨가 되었다.

히노씨는 무로마치시대에 쇼군가와 혼인을 하면서 호소카와씨와 양대 세력이 되었고 이후

오닌의 난에서도 한 축을 담당했다. 이들은 계속 귀족가문으로 남아 메이지유신 때는 백작가가 되었다.


히노탄조인(日野誕生院, 일야탄생원)은 그 신란이 탄생했던 곳이다.

어머니는 미나모토씨였으니 대단한 집안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23년 신란이 정토진종을 개종한지 70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생가 터에

히노탄조인을 짓기 시작했고 1931년 헤이안시대의 귀족 저택 풍으로 사찰을 완성했다.


여기가 이시다역으로 가는 버스의 출발지이다.

버스 시간 확인하고


유치원 언덕 위로 있는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히노탄조인 입구

헤이안시대 저택 풍의 회랑을 지나면


마당에 청동등롱 하나가 서 있고 본당이 보인다.

이 히노탄조인은 정확히 말하면 독립사원이 아니라 니시혼간지의 월경지이다.

정토진종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는 정토진종 본원사파(혼간지파)의 직접 관리에 있는 사찰이다.


얇은 창살이 새겨진 회랑으로 문과 본당이 연결되어 있다.


마당은 흰 모래만 깔아놓은 지극히 단순한 구성이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지만 나름 운치가 있다.


본당 쪽에서 바라본 사찰의 모습


엔랴쿠지 근본중당의 형식을 본땄다고도 한다.


히노탄조인 본당 내부의 불상

안에는 본존불인 아미타여래상이 있고 뒤로는 신란과 그의 조상들이 모셔져있다.


신란의 목상이 모셔진 부분과


그의 아버지의 영정이 보관된 모습

건물 내부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깔끔한 모습이다.


본당에서 찍은 정면 모습


좌우 회랑의 모습


아침이라서 아무도 없다.


회랑 건너편으로 보이는 신란의 동상


그가 여섯 살 때 출가하던 모습을 나타낸 상이라고 한다.


밖에서 본 본당의 풍경


아무도 없는데 아침부터 누군가 와서 열심히 사진을 찍으니 지나가던 할머니가 이상하게 쳐다본다.


동상 옆에 서 있는 탄생지 기념비


멀리 보이는 풍경

여기는 비교적 교토에서 서민들이 주거하는 구역인 듯하다.


탄조인 앞에 보이는 오래된 가옥

탄조인을 관리하는 승려의 집인 것 같다.


멀리 보육원 너머 보이는 호카이지의 약사당


호카이지로 내려가는 길에 담으로 둘러쌓인 곳이 보인다.


한쪽은 우물

신란이 태어나서 몸을 씻겼다는 우물이다.


한쪽은 포의총이라는 무덤이 보인다.


포의(胞衣)라고 하면 태어난 아이의 태반과 태막을 의미한다.

우리로 치면 태봉인 셈인데, 이것을 땅에 묻어 부정을 막았다고 한다.


신란성인의 포의(에나)총이라는 표석


이제 호카이지로 내려간다.

전에 왔을 땐 몰랐는데 진짜 2분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