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13일 - 이누야마12 (메이지무라明治村 3쵸메三丁目2)

同黎 2016. 10. 4. 04:39



3쵸메 경내도


이어지는 3쵸메는 고급 별장들이 즐비하다.


이어지는 26번은 코다 로한(幸田露伴)의 자택 카규안(蝸牛庵, 와우암) (幸田露伴住宅「蝸牛庵」)

코다 로한은 메이지시대에 활발히 활동한 소설가, 수필가이자

젊었을 때의 자유민권론자, 아시아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돈이 없어 여러 번 이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당호에 달팽이를 집어 넣었다고 한다.


안내문


여기도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인의 집답게 소박해 보이는 건물


밖으로는 다른 건물들도 보인다.


저긴 조금 이따가 가기로 하고


도코노마의 모습


그렇게 문장이 좋았다고 하며 한시나 일본 고전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고 한다.


마쓰오 바쇼에 대한 전집 작업이나 오층탑이라는 작품은 그의 뛰어난 업적이다.


창문의 모습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올라가진 못했다.


싱크대?


화장실의 모습


백자로 된 변기


현관의 다실풍 창과 꽃꽂이


마당에서 본 풍경

2층이 다실이라고 한다.


이제 다음 건물로 간다.


딱 봐도 담에 붉은 칠까지 한 화려한 저택이다.


이 위풍당당한 건물은 27번 건물 자규소(坐漁荘, 좌어장)인데,

총리대신까지 지냈던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의 별장이다.


사이온지 긴모치는 교토의 공가 출신으로 후작을 거쳐 공작까지 오른 사람이다.

젊을 적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는데 이 때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공부해서 일본 제국주의

관료 중에서는 나름 말이 통한 양반이라기도 하지만 제국주의자임에는 틀림없다.

2차례의 총리직을 지냈지만 군대와의 갈등 때문에 별다른 업적 없이 물러나야 했다.


들어가는 입구의 문

지붕이 요상하다.


정원을 거쳐가면


건물의 옆면. 2층의 건물이다.


이 건물은 상당히 유명하다고 하다. 총리대신에서 물러난 후 지긋지긋해진 사이온지는 시즈오카에

이 별장을 지어 살았고, 용무가 있을 때만 도쿄의 자택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1849년부터

1940년까지 어마어마하게 오래 살았기 때문에 메이지유신부터 참여했다. 그래서 물러날 당시

마지막 원로라는 이름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이곳으로의 방문도 많았는데, 그가 군부 과격파에

비판적이이서 1932년의 5.15 사건, 1936년은 2.26 사건 당시 모두 암살 대상이었기 때문에 보호를

위해 1930년대에는 철근 콘크리트가 가설되기도 하였고, 집사실과 경비초소도 세워졌다고 한다.

1940년 그가 죽을 때 군부를 저주하며 죽었다는데 그대로 됐다.


안타깝게도 여기는 시간 만료


밖에서만 들여다 본다.


건물 전면에는 노송나무 껍질을 붙여 놓았다.

상당한 돈지랄이다.


어쨌든 매우 멋있고 화려한 건물이다.


하늘과 어울린 풍경


좀 더 원경의 사진


역사적 장소인데 들어가보지 못하다니


어렵게 들여다 본 내부

메이지무라로 옮긴 것도 건물의 보존을 위해서라고 한다.


바로 옆에 연결된 28번 다실 에키라쿠안(亦楽庵, 역락암)이다.

아마 논어에서 이름을 따온 것 같다.


이 다실은 교토의 의사이자 한학자인 후쿠이 코사이(福井恒斎)라는 인물의 다실이었다고 한다.


들어가볼 수 없으나 센노 리큐의 작법을 충실히 따른 다실이라고 한다.


다실 앞 노지


소박하지만 나름 개울도 있고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정면


공식 설명에도 센노 리큐 이야기만 잔뜩 하는 것을 보니 뭐 그렇게 대단한 건물은 아닌가보다.


여기서 호수 쪽으로 내려가니 정류장이 보인다.


바로 교토시전의 반대쪽 정류장이다.


여기서 보니 멀리 등대가 내려다 보인다.


접근해본다


보기 힘든 벽돌조 건물이다.


이 곳이 30호인 스가시마등대 부속관사(菅島燈台附属官舎)로 별로 안 중요해 보이는데 중요문화재이다.

스가시마등대는 미에현 토바시에 있는 등대로 무려 에도시대 초기부터

불을 붙이던 곳이고 1873년 처음 서양식 등대를 세웠다고 한다.

등대는 이후 약간의 훼손을 거친 것 같으나 이 부속관사는 당시

그대로의 것으로 가치를 높이 여겨 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고 한다.


현재 등대는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제자리에 있다.


이 등대는 29번인 시나가와등대

여긴 조금 이따 보고


관사 내부의 부뚜막


안내판


굉장히 단순한 건축인데 당시로는 흔치 않은 영국인 설계의 건물이라고 한다.


등대 앞의 해시계


앞에는 대포 하나가 있는데, 중국 대련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이제 시나가와등대(品川燈台)로 간다.


29번인 이 등대는 도쿄에 세워져 있던 등대로 1870년에 세워졌다.

이것은 막말 서구 열강 5개국과 체결된 통상조약에 따라 외국 선박에 대한 등대와 항로 표지를 설치하는

것을 동의하고 그에 따라 프랑스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일본의 등대라고 한다.


그래서 중요문화재


이제 31번으로 가려 하는데 공사 중이란다.


이런


31번은 나가사키거류지 25번관(長崎居留地二十五番館)이다.


사진으로만 보는 건물


공사 안내문


이 건물은 1889년에 지은 것으로 스코틀랜드인이 살았다고 한다.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일했던 이라고 하며 본관과 별관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약간 동남아나 인도에서 지어지던 식민지풍의 건물이라고 한다.


내부의 모습


이제 슬슬 지치기 시작한다.

다음 건물로 고고


청록색 아름다운 건물이다.

사실 이쯤되니 내부에 못 들어가는 게 고맙기도 하고...


32번 고베 야마테 서양인 주택(神戸山手西洋人住居)이다.

1887년의 건물로 목조 2층 건물이다. 나가사키의 건물보다는 유럽 본토와 더욱 가까운 건물이라고 하며

부지가 좁기 때문에 베란다에 변화를 주고 출입구를 넓혀 건물을 더 넓어 보이게 한다고 한다.

1층은 가게 겸 하인들의 집이며 주인이 사는 2층은 절대 못 보게 설계되어 있다고

 

안내판


여기서 내려다 보니 정자 하나가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정자는 아니고 2쵸메에서 본 것과 같이 건물 현관에 차를 대는 구루마요세를 이축한 것이다.


슈교대학 구루마요세(宗教大学車寄)는 현재 다이쇼대학(大正大学, 대정대학)의

전신인 슈교대학(宗教大学, 종교대학) 본관의 현관 돌출부이다.

종교대학은 불교의 천태종, 진언종, 정토종이 만든 연합불교대학으로 이후 대정대학으로 개명했다.

1960년대 종교대학 본관이 철거될 때 이 구루마요세라도 옮겨와 보존하자고 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크기를 비교해 보면 엄청 크다.


이것이 과거의 본관


안내문


이건 조류가 심할 때 배에 이를 전해주는 신호기라고 한다.

이것도 1909년도의 물건


이렇게 겨우 3쵸메를 다 보았다.

겨우 60% 본 것이다...


멀리 4쵸메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