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쵸메 경내도
철도료 신바시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기계가 보인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링 정방기(リング精紡機)이다.
1893년 영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산업유산으로는,
또 그 중에서도 기계로는 드물게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정방기라는 것은 원사를 늘리고 꼬아서 실로 만드는 기계라고 한다.
이 거대한 기계는 미에방정회사라는 곳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며 일본의 산업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또한 현재 전해지는 근대 기계 중에 가장 오래된 기계라고 한다.
위 아래로 실이 걸려있다.
일본에서 최근 근대 산업혁명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했는데
이 작업이 하루이틀에 걸쳐 이루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기계를 중요문화재로 삼다니...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논란도 많고 또 수량 자체가 없으니
이런 산업유산을 보물로까지 지정하기는 어려울 듯
진짜 크다
현재 메이지무라에서는 기증받은 것이라고
섬유산업은 근대산업 중에 가장 중요한 산업 중의 하나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별도로 등재된 토미오카 제사장도 국보로 지정하였고
여러모로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유물이다.
기계 세부
이건 또 관련된 다른 유물인 듯
이것도 정방기
방모 뮬 정방기 라고 한다.
이건 면이 아니라 양모용인 듯
이건 자동 정방기란다.
뭔지 모르겠다
이것도 기계
음 이건 프레스기인가
여러가지 산업화 기계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것도 기관인 것 같고
이것도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국화문장평삭반(菊花御紋章付平削盤)이다.
1879년 공부성에서 이와테현에 있는 아카바네 공작분국을 통해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뭐 평면 절삭하는 공작기계라고 하는데 본래 네덜란드에서 수입하던 것을 직접 만든 것을 기념해 천황가의 문장인 국화문장까지 붙인 것이다. 당시 조선소에서 쓰던 것이라고 하며 소유자는 지금도 이와테현이다.
밖에는 당시 도쿄 신바시공장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던 화력발전소의 굴뚝 기초가 남아있다.
관동대지진으로 현재 기초만 남아있다고
이제 다음 45번 건물인 공부성 시나가와 유리제조소(工部省品川硝子製造所)이다.
안내판
1877년 지은 것으로 공부성에서 영국인 등 다양한 기술자들을 고용해서 유리 제조 기술을 만들어
판유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후 1885년 공장을 민간에 불하해서 민간자본을 키웠다고 한다.
다음은 46번인 우지 야마다 우편국(宇治山田郵便局舎)
1909년에 지어진 것으로 딱 봐도 이쁜 것이 중요문화재이다.
ㄱ자로 된 독특한 형태의 건물이다.
전반적으로 목조 건물에 외관은 판자와 회칠을 사용했고
창문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당시로써도 파격적인 다자인이었다고 한다.
건물의 끝 부분
여기저기 이렇게 작은 돔 부분이 있어 장식성을 더 강조하고 있다.
반대편 출입구
내부에는 우표를 전시하고 있다지만 시간이 늦어 보지 못했다.
기념사진 찍는 심희곤
저 멀리 성당이 보인다.
저기로 넘어가면 5쵸메인데
그 앞에 4개의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도시의 마을에 있을 법한 이용원, 극장 등 4개의 건물
바로 옆 거대한 성당이 이색적이다.
47번 혼고키노토(本郷喜之床)라는 건물이다.
2층짜리 목조 건물로 1868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안에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상가 건물로 이용원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이 건물 2층에는 유명한 일본 근대 하이쿠 시인인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세들어 살던 곳이다.
이곳에서 그의 장남 신이치가 태어났지만 요절하고, 그의 시집도 나왔지만 대역사건이 일어났으며
다쿠보쿠는 낭비벽을 고치지 못한 채 결핵에 걸리는 등 개인사적으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던 곳이다.
결국 2층도 들락날락하기 힘들어진 그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도련님의 시대> 참조
이 집도 유서가 깊은 집이다. 고이즈미 야쿠모 피서의 집(小泉八雲避暑の家)이라는 작은 상가 겸 민가이다.
고이즈미 야쿠모는 그리스인과 아일랜드인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신문기자를 하면서
각종 번역, 평론 등 문학에 종사했다. 이후 일본에 영어교사로 부임하고 일본에 푹 빠져 현지인인
고이즈미 세츠코와 결혼하고 일본인으로 귀화하여 이름을 라프카디오 헌에서 고이즈미 야쿠모로 개명했다.
그는 일본의 민담과 괴담을 수집해 여러 책을 냈는데, 도쿄제국대학의 강사였으나 일본제국은
일본에 흠뻑 취한 미국인보다 서구 열강을 제대로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고 결국 그를 해임한다.
그의 후임으로 영문학과에 부임한 사람이 바로 나츠메 소세키였다.
그가 해임되고 책방을 했던 곳으로 1층은 책방, 2층은 거주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참 메이지무라에는 메이지시대 인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안내판
바로 옆에 있는 중요문화재인 쿠레하자(呉服座, 오복좌)
1892년 오사카 이케다시에 지어진 소극장으로 여기서는
지방 순회를 하던 가부키나 연극, 신파, 만담, 강담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이른바 헌정의 수호자라고 불리며 지금도 일본 국회의 헌정기념관에
동상이 서 있는 25선의 중의원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가 호헌 연설을 했던 것이나 일본의 유명한
사회주의자이며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한 고토쿠 슈스이(幸徳秋水)가 연설회를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이 조그만 공간에 메이지시대의 거물들이 모두 모여 있다.
안내판
내부는 일본 전통의 극장 모습을 지키고 있지만 또 서양식 요소도 도입되어 있다고 한다.
내부에는 지금도 공연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객석은 가운데 부분과 사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4쵸메의 마지막 건물 50번 한다아즈마유(半田東湯)
목욕탕이다. 아이치현 한다시에 있었다고 하며 일본 전통의 목욕탕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안내판
내부에는 이렇게 목욕탕이 재현되어 있다.
4쵸메까지 이렇게 다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 5쵸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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