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3일 교토 중부4 (쇼운지正運寺, 초엔지長圓寺, 시마바라島原 스미야角屋)

同黎 2018. 5. 16. 00:32



니조진야


예전에도 들렸던 반찬가게


9차 땐가 여기서 덴뿌라 사먹었던 기억이

맛있다


쇼운지(정운사, 正運寺) 정문



옆의 쪽문으로 입장


쇼운지(정운사, 正運寺)는 정토종 사찰이다. 이 절의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현재 사찰은 가토 기요마사의 가신이던 이이다 나오카게(飯田直景)가 마련했다고 한다.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교토 중심가로 옮겼다고 한다. 여기저기 있던 사찰을 몇 군데 몰아넣은 건 히데요시 때부터 몇 차례 있던 일이다.

 본존 십일면관음상은 화재 속에서도 주자 안에서 환하게 빛나며 불을 피했다고 하며 가마쿠라시대의 대불사인 운케이가 일본에서도 관음성지로 유명한 나라 하세데라의 본존과 같은 목재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라쿠요 삼십삼소 중의 26번이다.


관음당


납경소


사무소


안내 포스터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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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엔지



초엔지(長圓寺, 장원사)는 정토종 사찰로 에도시대 초기에 세워졌다.

교토쇼시다이였던 이타쿠라 카츠시게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그의 법명을 따서 절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현재 사찰은 텐메이 대화재 때 소실된 것을 다시 지은 것

본존 관음보살인 천태종 승려이자 왕생요집을 지어 정토종의 조사 중

하나로도 불리는 겐신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라쿠요 삼십삼소 영장의 24번인데, 영장 순례의 성립은 고시라카와천황 때이니 중간에 끼어넣은 듯하다.


본당 모습


내부는 잘 안 보인다.


납경소


비가 온다


드디어 납경 두 곳 지나고 시마바라로


시마바라 입구


저 장대한 긴 건물이 스미야이다.


신센구미의 칼자국이 있다는 표석

사실 술 먹고 그냥 난동부린 거 같은데...


기다란 스미야의 정면

이곳은 시마바라, 에도의 요시와라와 함께 일본 유곽을 대표하는 곳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유곽이 몰락하면서 전통적 유녀가 있는 요정은 급감하고(아직도 있긴 있다.) 홍등가였던 시마바라도 사라지는 바람에 거의 모든 요정(아게야, 揚屋)이 사라졌다. 그리고 전후 공창제가 폐지되면서 거의 모든 유곽 건물도 사라졌다. 스미야는 그 중 유일하게 남이있는 유곽의 아게야 건물로 건물 자체도

17세기 초에 지어진 화려한 건물로 유곽건물 중 유일하게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스미야(角屋)는 16세기 후반 히데요시 시기부터 시작한 최고급 요정이다. 이 고급요정을 아게야라고 하는데 스미야는 그 중에서도 주인이 습명을 하는 최고급 요정이었다. 현재 14대 당주가 주인으로 있으며 더 이상은 연회는 하지 않고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641년 시마바라가 홍등가로 정비되면서 세워졌으며 근대 연회장 한 곳이 불타 재건한 것 외에는 그 모습을 지키고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영업이 잘 안 되어서 연회가 없이 그저 매춘만 하는 오차야(お茶屋, 찻집이 아니다)로 떨어졌다가 80년대에는 아예 그냥 연회소로 바뀌었다. 그후 1998년 법인을 세우고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소장품만 1만 1천점에 이른다. 최고급 요정이니까 그에 걸맞는 각종 그림이나 다도구, 악기와 의상 등등이 있는 것


이 때는 특별공개

평소에는 춘추에만 열며 입장료도 1천엔이다.

2층까지 보려고 하면 사전 예약이 필요하며 (전화) 별도로 800엔을 더 내야한다.


시마바라 스미야

http://sumiyaho.sakura.ne.jp


입구의 모습


대문채를 지나야 현관이 나온다.



먼저 쭉 들어간다.


정원의 멋진 소나무

와룡송이라고 한다.


멀리 다실이 보인다.


다른 쪽으로 통하는 길


이곳이 가장 넓은 공간인 마츠노마이다.


소나무를 보는 곳이기 때문에 방에 소나무가 들어간다.


화려한 후스마에

막말기의 화가 키시 렌잔의 작품

안타깝게도 이 공간은 불탔다가 근대 재건한 것이라 중요문화재가 아니다.



후스마를 고정하는 부채모양 장식


도코노마


마츠노먀의 안내문

후스마에를 비롯한 회화들은 다 건져냈다는 이야기가 써 있다.


한 층 높은 자리


주객이 앉는 자리이다.


화려하다 확실히


정원



작은 다실이 있다.

여름용인 듯



정자 


작은 정원


곡목정에서 바라본 정원


정원에 딸려 있는 곡목정이라는 다실

와룡송의 1대 나무가 죽은 후 그 나무로 지었다고 하며 지금은 2대째 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와룡송


화려한 장식 조각




포대화상도


류큐나전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가리개용 병풍이다.

츠이다테라고 한다.



손잡이 부분



와룡송


멋있다


대단히 화려하다



다른 다실로 통하는 작은 문


오모테센가에서 지었다고


다른 쪽으로 통하는 복도


다른 곳


중간의 작은 정원


석등롱


운치가 있다


아지로노마

마츠노마와 함께 메인 공간 중 하나이다.




도코노마


후스마에


역시 가장 상좌


후스마에



선종풍의 화두창


반대쪽에서 바라본 정원



현관 쪽으로 가는 길


무구걸이

칼은 풀고 들어가야 한다.


가운데 중정



역시 칼을 보관하는 곳


많다


부엌


한쪽에 천조대신을 모신 신단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여기는 비공개였다.

2층에서 주로 은밀한 일이 벌어졌다고


주인이 앉아서 계산하는 곳



부엌에도 신단


화로 겸 솥을 놓는 곳



부엌


부엌에서 바라본 계단


목욕할 때 썼던 대야



현관은 현재 미술품, 공예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엌


실내의 우물


솥도 많다


한쪽에는 불씨를 지키는 곳

신성시하는 곳이다 나름


이제 밖으로 나온다.


신센구미가 낸 칼자국


한때 조슈번 양이지사들이 여기 있어서 붙잡으러 출동할 때 생겼다고



한쪽에 서 있는 기념비

조슈번사 쿠사카 겐즈이가 있었다는 곳. 나중에 금문의 변에 참여하는 인물이다.


스미야 안내판


그냥 시마바라를 뜨지 않고 남은 흔적을 찾아본다.


시마바라 대문으로 가는 길


과거 유곽 건물을 개조한 집들


멀리 문이 보인다.


이 집


오래된 것 같다.


대문


슬픈 기억의 문이다.

현재는 19세기에 재건된 고려문 양식의 문


이건 뒤 쪽이고


앞으로 간다.

에도막부는 교토와 에도에 유곽을 정비하면서 시마바라와 요시와라 전체를 통제한다.

즉 사방에 높은 담을 세우고 심지어 해자까지 파서 아예 동떨어진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결국 시미바라 대화재로 동쪽 절반이 탔을 때 많은 유녀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었다.


지금은 그 흔적들이 거의 사라졌지만 대문은 남아 당시의 아픔을 대변한다.


한쪽에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수조와 두레박이 있다.


이렇게 시마바라를 떠난다. 언젠가 한 번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교토의 하나미코지에 게이샤가 많다는 건 알고 마치 교토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지금은 기온, 특히 가모가와 강가의 좁은 골목길인 폰토쵸가 수백년 전부터 유흥가였고, 지금도 풍속업소가 엄청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