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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주전자와 사철에 대한 환상

同黎 2019. 3. 17. 06:37

무쇠 주전자와 사철에 대한 환상

 

한국에 보이차 인구가 늘어나면서 보이차 가격도 급격히 올랐지만 더불어서 몸값이 올라간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이차을 낼 물을 끓이는 무쇠 주전자입니다. 주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무쇠 주전자(일본에서는 鐵甁이라고 부르는)는 그 물 맛이 좋고, 특히 뚜껑에 龍文堂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거나, 南部鐵器 마크를 달고 있거나, 砂鐵(일본어로 和鐵)로 만들어 진 것이 최고라는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에만 퍼져있는 이야기는 아닌지, 중국에서도 이런 물건들을 선호하는 현상이 보입니다. 무쇠 주전자에 대한 신화는 일본에도 역수출 되어서 일본식 다도를 위한 다부(茶釜)에도 사철을 썼다는 이야기가 많고, 야후 옥션에서 이런 철기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이야기는 맞는 건가요? 그리고 한국의 차계 특히 보이차계에 퍼져있는 사철, 용문당 주전자는 과연 다 진품일까요? 먼저 사철이 뭔지 알아보면서 이야기 해봅시다. 사철은 말 그대로 모래처럼 자연에 퍼져있는 철입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서 자석을 가지고 놀이터의 모래를 훑으면 자석에 붙은 까만 가루, 그것이 바로 사철입니다. 이렇듯 사철은 자연상태에서 매우 흔하며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철성분입니다. 그 중에서도 주로 바닷가의 모래층에 많이 퇴적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상태에 흔한 것이 사철이지만 사철을 이용했던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오직 일본만이 사철을 이용했습니다. 사철은 자철광이며 소량의 티타늄, 칼슘, 바나듐, 망간 등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분순물들은 열 전달을 빨리하고 또 상대적으로 많은 티타튬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했던 주철이나 강철보다는 녹이 덜 쓸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사철을 사용했던 나라는 일본 밖에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사철이 강철에 비해 채집할 때 노동력이 더 들고 또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많은 불순물 때문에 제련과정에서 드는 수고와 비용이 더해집니다. 덕분에 일본 외에는 뉴질랜드에서 유일하게 티타늄을 추출하기 위해 채집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만 사철을 사용한 것은 일본의 제철기술이 에도시대까지 매우 뒤쳐졌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일찍이 철광석을 채내고 석탄(갈탄 등)을 이용하여 높은 온도에서 철을 뽑아내었습니다. 그 과정을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대략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강철을 만들고 송대부터는 석탄을 이용한 용광로를 이용했으며 한국도 이와 같았고 유럽도 중세부터는 완전히 강철시대로 바뀝니다. 그런데 일본은 석탄을 이용하는 시기가 19세기까지 내려오며 철광석 채굴도 매우 늦었습니다. 바다가 융기한 산에 사철이 많았기 때문에 철광석을 채굴할 생각을 안했던 것이죠. 그래서 일본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 강철보다는 사철을 원료로 하는 특수한 강철이 더 많이 생산되었고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그래서 타타라제철(たたら製鉄)이라고 하는 점토로 된 틀에 사철원료를 쌓고 위에 목탄을 쌓고 불을 질어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철을 환원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그렇게 해서 옥강(玉鋼)이라고 하는 강철의 일종을 생산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옥강을 원료로 하는 것이 화철, 혹은 사철 주전자입니다. 문제는 옥강이 가지 여러 가지 단점입니다. 옥강은 보존성이 좋지만 철광석을 이용한 강철 제련에 비하여 생산성이 너무 낮습니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또 목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목재의 낭비가 심하고 매연 등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조차 사철 산업은 급속히 사라져갑니다. 이것이 다시 부활한 것은 바로 태평양전쟁 때입니다. 전쟁 물자가 부족해진 일본은 사철을 이용하여 군수품을 생산했지만 너무 낮은 생산력과, 또 옥강 대포 등이 너무 쉽게 터지는 문제로 인해 다시 사려져갑니다. 미군정이 모든 일본도 생산을 금지하고 오직 미술품에 해당하는 일본도만 허용하자, 전쟁 때 무수히 생산되었던 군도(軍刀) 생산도 멈추었고, 일본도의 재료로 쓰였던 사철은 그 용도가 더욱 사라집니다. 다만 일본도 전통 보존을 위해 사철 광산을 보존하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에서 단 한곳, 돗토리현의 사철광산만 한정적으로 유지, 채굴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 세계에서 사철을 생산하는 곳은 일본에서도 단 한 곳뿐입니다. 따라서 일본 내에서의 사철 원료 공급은 단 두 가지 경로만 있습니다. 한 가지는 앞서 말한 돗토리현의 사철 광산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일본군의 군도 등 미술적 가치가 없는 폐도를 녹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중에 넘치는 사철제품의 대다수는 가품입니다. 500년 이상 철기를 다룬 일본 전통공예사에게 직접 문의해본 결과, 진짜 사철 주전자는 일본에서도 최소 25~30만엔이며 이마저도 사철 100%가 아닌 사철과 일반 철의 혼합제품이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원료도 적고, 같은 양으로 만든다면 일본도 쪽이 주전자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순사철 주전자는 태평양전쟁 이후로는 거의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전쟁 이전의 골동 주전자는 기본이 100만엔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용문당이니, 남부철기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려면 먼저 일본 다도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중국 송나라에서 일본에서 말차를 중심으로 하는 차문화가 건너간 이래 일본에서는 15~16세기 무로마치시대에 다도가 만개합니다. 이에 따라 물을 끓여내는 솥 즉 다부(茶釜)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 중심은 지금은 후쿠오카현인 아시야(芦屋)지역과 토치기현인 텐묘(天命)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다성(茶聖)인 센노 리큐(千利休)가 츠지 요지로(辻与次郎)라는 장인에게 자신의 전용 다부를 만들게 한 이후로 그 중심지가 교토로 옮겨집니다. 교토에서는 여러 장인들이 대를 이어 솥은 만드는 데 대표적인 곳으로 유명한 가문이 오니시가(大西家), 니시무라가(西村家), 나고시가(名越家), 미야자키가(宮崎家), 시모츠마가(下間家) 등입니다. 그리고 차문화가 교토를 중심으로 각 무사들에게 퍼지면서 각 번을 다스리는 강한 다이묘(大名)들은 자신들의 전속 장인을 두고 차솥을 만들게 합니다.

우리가 아는 무쇠 주전자는 일본에서는 철병(鐵甁)이라고 하는 것인데, 솥의 부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일본 다도의 중심은 말차지만, 우리나 중국처럼 엽차를 마시는 것도 있는데 이를 센차(煎茶)라고 합니다. 일본의 엽차는 40~60도의 매우 미지근한 물로 우려내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철병은 작습니다. 그리고 옆에 물항아리를 두고 수시로 보충해줍니다. 그리서 중국에서처럼 커다란 탕관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말차에 비해 센차는 문화가 많이 적기 때문에 철병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에도시대 말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차가 싸지고 대중화되면서 엽차가 보급되며 메이지시대~쇼와시대에 많은 철병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지고 주로 솥을 만들던 장인들도 철병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용문당(龍文堂)이니, 남부철기(南部鐵器) 같은 것이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용문당(龍文堂)은 교토의 철병 장인으로 에도시대 말기에 시작되었고 1958년 마지막 당주의 사망을 끝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분가가 귀문당(亀文堂)으로 이곳도 현재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용문당 못지 않게 유명한 금수당(金寿堂)과 그 분가인 금룡당(金龍堂)이 있으나 역시 1950년대를 전후하여 맥이 끊겼습니다. 앞으로 이런 당호가 붙은 교토 철병은 용문당으로 편의상 줄여 말하겠습니다. 흔히 이런 용문당 및 기타 철병은 사철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 철병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그 예술성과 희귀성 때문이며 물맛이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사철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일본의 그 어떤 다도가나 골동상도 하지 않습니다. 당시 생산 환경 상 사철이 섞였을 수는 있으나 최고급 옥강은 모두 일본도를 만드는 때 쓰였으며 당시 사람들은 굳이 철병이 사철을 섞는 풍습은 없었다고 합니다.

용문당이나 기타 당호가 들어간 철병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뚜껑에 새겨진 용문당, 귀문당 같은 초서체 글씨를 많이 이야기합니다만, 이러한 것은 가짜 뚜껑도 많고 또 진짜 뚜껑만 거래되어 본체를 속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단 초기 용문당 진품은 작가가 유명한 것이 아니고, 각종 기업이나 절, 신사 등에서 기념품으로 만든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쓰이물산 50주년, 가와사키 조선소 20주년 기념 등등입니다. 이렇듯 초기에는 기념품을 위한 대량 생산을 하다가 이후 그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면서 뚜껑에 용문당 같은 글씨를 새기게 되는데 이런 것이 가품이 많습니다. 진품을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살펴보고 사는 것이며 또 몇백년 간 철기를 생산한 가문에 감정을 맡기는 것입니다. 보통 한화로 5~20만원 사이에 감정을 하고 감정서를 발부해줍니다. 가격은 최소 100만엔에서 시작하며 좋은 것은 300만엔 이상 갑니다. 그러니까 동묘 앞 같은 곳에서 파는 것이나, 야후 옥션에서 파는 것은 99% 가짜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용량이 1리터 이상 되는 골동 철병도 다 가짜입니다. 일본 센차는 그렇게 큰 용량을 가지지 않으며, 대형 철탕관이 만들어진 것은 90년대 이후 중국에서 대형 탕관에 대한 주문을 하면서부터입니다.

그렇다면 남부철기(南部鐵器)는 무엇일까요? 흔히 남부라는 명칭 때문에 이를 지명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부철기란 지금의 이와테현 모리오카시를 중심으로 하는 모리오카번을 다스렸던 무사 난부씨(南部氏)에서 따온 것입니다. 본래 모리오카는 근처에 사철광산이 있고 목탄 수급이 좋아 좋은 철기를 만드는 장인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전주의 한지가 유명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사철광이 중단되고 전통공예인 남부철기가 도태될 위험에 빠지자 1949년 모리오카번의 옛 철기 장인들이 모여 남부철기협동조합을 만듭니다. 이후 옆 동네인 미야기현 미즈사와시의 옛 센다이번 소속 장인들 역시 협동조합을 만드는데 1959년 이 두 개의 협동조합을 합쳐서 만든 것이 남부철기협동조합연합회입니다. 지금 남부철기라는 마크를 달고 나오는 것은 모두 여기서 나옵니다. 이후 일본인들의 집이나 식당에서 녹차를 물처럼 마시게 되자 철병 수요가 늘었고 이곳에서 만든 남부철기 철병들이 집집마다 보급됩니다.

문제는 남부철기와 사철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쓰는 철은 수입철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전 세계에 사철을 생산하는 곳은 돗토리현의 광산 한 곳뿐이고 이마저도 제한적입니다. 남부철기가 유명한 것은 센다이번 같은 강력한 다이묘 아래서 우수한 실력을 가진 장인 가문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남부철기뿐만 아니라 토야마현의 타카오카 철기와 동기, 야마카타현 야마가타 철기가 못지않게 유명합니다. 사실 제일 가치가 높은 것은 교토에서 생산되는 철병입니다. 이곳이 오래되고 명성 높은 장인 가문이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보이차인들이 남부철기라고 사러 가는 것은 사철은 섞이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물론 진짜 순사철, 혹은 반사철 주전자도 있습니다. 이런 건 마치 일본도처럼 번쩍번쩍한 은색 광이 나거나 품위있는 적색을 띄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철 주전자는 순사철은 최소 20만엔, 반사철은 10만엔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불과 수십만 원에 사철 주전자를 샀다는 건 나는 가짜를 샀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정도 비용을 주고 과연 순사철 주전자를 살 필요가 있는지 제가 물어봤던 일본의 전통공예사(일본예술원 회원)도 의문을 표했습니다. 물맛이라는 건 일반 철을 써도 얼마나 관리를 하는가, 특히 광천수에 함유된 미네랄을 계속 쌓는가에 달려있는데, 한국이나 중국인들은 이걸 물때라며 벅벅 닦아버린다고 말이죠. 그래서 순사철로는 아예 차솥은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가격도 너무 비싸지니 말입니다.

보이차를 다루는 분들이 무쇠 주전자에 열광하며 여기저기 용문당이 굴러다닙니다. 사철 주전자도 말이죠. 그러나 이런 내력을 살펴보고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못봤습니다. 일본 유명 다인들도 하나 가지기 힘든 용문당이 어찌나 많은지요. 정확치 않은 이름에 매료되기 보다는 숙고와 숙고 끝에 적절한 가격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좋은 기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