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거리

하중근 열사의 장례식 송경동 시인 추도시

同黎 2012. 11. 29. 05:29

2006년 건설연맹이 총파업을 했다. 건설노동자에 대한 기본적인 노동환경을 보장하라는 것이 주된 요구였다. 그러던 중 포항건설노조 소속의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 투쟁에서 경찰의 진압 방패에 뒷머리를 맞은 하중근 열사가 돌아가셨다. 반신자유주의 선봉대로서  찾은 2006년의 포항은 더웠다. 지금도 기억나는 투쟁, 지명은 기억도 안나지만 포스코 공장으로 가는 다리 옆에서 경찰과 밤새도록 밀고 밀렸던 그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읽었던 송경동 시인의 조시도 기억난다. 
2005년에서 2006년 사이 너무나 많은 열사가 죽었고 송경동 시인은 마치 추도시 전문가가 된 것 마냥 날마다 추도시를 써야 했다. 그리서 한 때 그의 시를 다시는 듣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오랫만에 다시 찾으니 참... 부끄럽구나.


안녕

건설일용노동자 하중근 열사 영전에

 

 

 

안녕

이젠 모두 안녕

하청도 재하청도

일용공 노가다 잔업 철야 대마치

반지하 월세방 때 전 이불 바퀴벌레 생쥐들

야이 개새끼들아

까닭모를 아픔도 슬픔도

새벽밥 눈칫밥 기름밥

새참의 빵도 우유도 라면도

 

안녕

불우했던 어린 시절

살아, 서로가 서로에게

피눈물 진흙탕 갈퀴가 되고 송곳이 되던 가족들

2년 만에 날 버리고 떠난 조선족 여인도

 

안녕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삶의 여유

한번도 발음해보지 못했던

이 세상의 모든 좋은 말들

글을 몰라 쓰지 못한 수많은 편지들

그 여름의 파도소리, 가을의 낙엽, 겨울 눈송이

가끔은 낭만에 젖던 마흔일곱 늙어버린 청춘도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도 안녕

뒷머리를 찍던 방패날

갈비뼈 으스러뜨리던 군홧발

척척 삭신을 감던 곤봉맛

퍽, 뇌가 깨지던 소리

짐승 같던 너희들 목소리, 그 눈빛들도

이젠 모두 안녕

 

이제 나 다시 착취받지 않으리니

이제 나 다시 차별받지 않으리니

포스코의 종이 아닌, 제관공 하씨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주조하는 화염 용광로가 되리니

착취받는 용접불꽃이 아닌

저 하늘의 영롱한 별빛이 되리니

 

벗들이여!

인간해방 그날까지

그립던 날들아 사랑했던 사람들아 다 못한 이야기들아

굴하지 말고 지지 말고

투쟁! 투쟁! 투쟁!

이젠 모두 안녕, 안녕

 

* 2006년 7월, 포항에서 건설일용노동자들이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포스코 본사를 점거했다. 그들의 요구는 일주일에 한 번은 유급휴가를 쓰게 해달라는, 작업복을 갈아입을 공간을 달라는 소박한 것들이었다. 하중근 씨는 동료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 달라는 해결촉구 집회에 갔다가 진압 경찰들에게 맞아 뒷머리가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공권력 타살을 인정했지만, 아직까지 의문사로 남아 있다. 이 시와 또 한 편의 추도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가 현장에서 폭력시위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네 차례에 걸쳐 출두요구서를 받았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
- 故 하중근 동지 영전에 바침

그간 우리는 
전국팔도를 떠돌며 
너희의 집을 만들어주었다 
너희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버릴 하수구를 만들어주었고 
학교와 공장과 교회를 만들어주었다 

너희는 우리가 만들어준 배관을 타고 앉아서야 
먹고 싸고 따뜻할 수 있었다 
너희는 우리가 연결해준 전선을 통해서야 
말하고 듣고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세상의 모든 천장과 벽과 
계단과 다리를 놓아주었다 
아무말없이, 불평도 없이 

하지만 너희는 그런 우리에게 
착취와 모멸만을 주었다 
불법다단계 하청인생 
일용할 양식조차 구하지 못하던 
일용공의 날들 
우리의 밥은 늘 흙먼지 쇳가루 땡볕에 섞여졌고 
우리들의 국은 늘 새벽진흙탕이거나 공업용기름끼였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늘 개차반 
쓰미끼리1) 인생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줘도 되는 근로기준법의 마지막 사각지대 
못나고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되는 불량표지판 
말 안 듣고 버릇없는 것들이 가는 인생 종착역 
죽지못해 사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였다 

그런 우리의 요구는 소박했다 
옷 갈아입을 곳이라도 있다면 
점심시간 몸 누일 곳이라도 있다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쉴 수 있다면 
일한 돈 떼이지 않을 약속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원청사용자들과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다면 
너희의 노예로 더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너희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못배우고 더러운 노가다들이 감히 
신성한 우리 자본의 왕국 포스코를 점거하다니 
밀어버려, 끌어내, 목줄을 짤라 버려 
58명 구속에 가담자 전원 사법처리 
그리고 시범케이스로 
하중근 동지의 머리를 깨부셔놓았다 

그래서 우리도 이젠 다르게 생각한다 
전면전을 선포한 너희에게 맞서 
우리가 그간 해왔던 건설과는 
전혀 다른 건설을 꿈꾼다 
더 이상 너희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건설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너희의 비정상적인 비만을 위한 건설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의 주인으로 우리가 서는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너희의 하청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원청이 되는 투쟁이다 
우리의 노동에 빌붙어 과실만을 따먹는 
너희 인간거머리들, 인간기생충들을 박멸하는 투쟁 
진정한 사회의 주인 
건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하는 투쟁이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이 망치로 너희들의 썩고 굳은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이 그라인더로 너희의 이름을 
역사의 페이지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사죄하라 
사죄하지 않으면 
우리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내 
너희의 정수리를 뚫어놓을 것이다 
이 성스런 건설노동자의 투쟁 앞에 
돌이켜라. 썩은 시대여 
항복하라. 낡은 시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