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여성

페미니즘의 바다에 물결치다 2

同黎 2013. 3. 14. 13:39

서구의 여성들이 여성참정권 획득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물을 얻은 20년대 안팍에, 그들을 둘러싼 지구의 환경은 매우 역동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제정러시아는 위대하다는 볼셰비키 혁명과 함께 '소비에트'로 탄생했고, 유럽대륙을 향해 고립주의를 선포한 미국은 20년대 후반 경제대공황의 늪에 빠져들고.... 앞장 서 나가는 서유럽 자본주의국가들의 제국주의화는 이미 1차 대전 발발의 원인이 됐다가 43년 발발할 2차 전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하여, 안터졌음 그게 더 수상할 거 같은 제2차 세계대전은 전쟁당사국이 몇 되지 않았음에도 지구의 전대륙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2차 대전은, 지금까지도 헐리웃 영화사들의 주된 소재로 봉사하는 그 중차대함 말고도, '인류'에게 크나큰 회의를 안겨준 전쟁이라고 서양사 교과서에 써 있더라. 

전쟁으로 재삼 확인한 '인간 말종'같은 행위 앞에서, 사상적으로도 활발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관념론이냐/유물론이냐, 혹은 이성이냐/경험이냐 머 이러면서 3천 년 가까이 대체 본질이 모냐며 말싸움 졸라 하던 서구철학의 전통에 반하여, '존재는 본질에 우선한다'는 요지의 난해한 용어와 정의를 가지고 실존주의가 기염을 토했다. 또한,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이념 및 체계경쟁 속에서,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할 거 없이 신좌파운동이 광범위하게 진행됐음이다. 이 당시, 그람시를 재평가하는 바람에, 국내 한 드라마에서 소쥐섭이 하쥐원에게 헤게모니론을 언급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설이 있더만. 아님 말고~

어쨌거나, 다종다양한 움직임 속에서, 드뎌 서구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잘 먹고 잘 싸며 무럭무럭 자라난 60년대가 됐다. 모자람 없이 자란 세대라 그런지, 모자람 있는 사회 구석구석에 신경도 써주는 진지청년들도 있었는가 하면, 동양에서 온 신비의 해초라며, 굽지도 않은 맨 김을 우걱우걱 씹으며 바다를 노래하거나, 인디언적 삶을 희구하며 초원에 널부러지는 애덜도 있었음이다. 어쨌든~ 

다시 격동하는 사상적, 사회적 상황과 함께,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의 선배들이 혁명기에 출현한 것처럼 다시 도래하리니...


The Personal Is Political

제1의 물결이 당대 사회를 거세게 휩쓴 근대성과 연관되는 것이라면, 제2의 물결은 전후 자본주의 국가의 기묘한 풍요 속에서 일어난 일단의 움직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제1세계 국가들이 향유한 그 경제적 안락함의 이면에 전체주의와 제국주의가 존재하고 있었다. 인류의 코텍스 아니 후리덤을 걸고 나치보다 더 무션 공산주의자들과 벌인 냉전은 시민들을 찍소리 몬하게 갈구는 효과적인 선전도구였고, 대신 그들에게 제 3세계의 그 비옥한 텃밭으로부터 갈취한 부를 선사해 왔었는데, 아니 그런데 시방, 제 3세계가 각성 속에서 서서히 발기하고, 시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앙탈을 부리기 시작하는 거다.



독일의 신좌파운동으로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베트남전 반대시위, 프랑스의 68혁명 등, 60년대를 상징하는 여러 변혁운동이 여성의 삶과 무관한 것은 아니었기에 페미니스트들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음이다.

전세대에서 수용된 제반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물들, 예컨대 참정권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권리와 경제부문의 진출 보장은 사료적 가치로서 훌륭했을지 모르나, 현실의 삶이라는 부분에서는 미진한 바 큰 거 자명했다. 이 당시의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한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대통령 케네디로 나타나는 미국 내의 오픈-마인디드 경향성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제도 정비 관철에 큰 힘이 됐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전방위적 여성 평등, 예컨대 교육, 결혼, 고용 그리고 정치참여 등에 대한 평등이 제도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이러고 있을 때 맞이한 도도한 사회변혁운동은 제1물결기의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을 계승한 래디컬 페미니스트 탄생의 계기가 된다는데 사정은 이랬다고 한다.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의 시민권 운동은 이들 중산층 백인 페미니스트들을 별루 좋아하지 않았고, 신좌파 계열에서 벌어진 변혁운동은, 때가 때이니 만큼 반전운동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 이 대단한 대의 앞에서 여성들은 서포터의 역할에 만족해야 할 상황인거다. 다시 한번,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기네들은 운동의 주역이 아니라 남성운동가들의 시다바리임을 깨닫는다. 아~ 백날이 가도 얘네덜이 우리를 위해 싸우지는 않겠구나.. 머 이러믄서?

"The personal is political"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는 의미를 가진 당 문구는 이때 데뷔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슬로건이였다. 이유를 함 들어보자.

여성들이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난관의 경험들을,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사적 영역으로 간주하는 오랜 전통이 이 당시에도 존재했음은 당근이었다. 핍박받던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이 한국전과 베트남전의 핏값으로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고, 여러 전향적인 집단들이 반인류적 전쟁을 규탄하며 대정부 투쟁을 주도하던 시절에, 여성에 관한 일체의 논의들은 후순위로 밀려나거나 혹은 정치와 무관(apolitical)한 것들로 규정됐다. 

그래, 때는 전시였고 국내·외적으루다가 복잡거룩다단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으니, 전업주부들의 고민이나 여성을 향한 고용차별, 뭐 기타등등은 걍 기타등등의 나부랭이로써 격이 다른 이야기였단다. 이에 페미니스트들은, 개인들이 겪는 개별적인 문제들이 사회 혹은 그 시스템으로부터 기인하는 바, 당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액숀이라 천명하며 전열을 가다듬은 것이다. 

어째서, 내가 하는 운동이 당신들의 그것보다 부차적이고 덜 중요하며 때로는 개인의 영역일 뿐이여야 하니? 대체 어째서, 사회시스템의 압제로 인한 나의 고통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있어, 앙? 


Angels on a Pin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출현은 기존 페미니스트들이 확실히 규정되는 결과를 낳았다. 우선, 이들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축이 된 여성권리단체들하고는 태생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졌으니, 각종 여성직능단체나 정부협력 여성단체 등에서 활동한 것이 아니라, 출발부터가 사회변혁운동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페미니즘 운동 내의 수많은 분화에 일조하기도 했는데 바로 본질주의 논쟁이 그것이다. 

제1 물결기부터 계속 잠재되어 있던 '차이' 논쟁이 가일층 강화된 사례라 할 수 있겠는데, 이 당시 진행된 본질주의에 대한 담론들은 일차적으로 생물학적 접근법이다. 남녀, 아니 부뉘기가 부뉘기인 만큼 여남이라고 해야 하냐? 어쨌거나 양성간의 차이는 모냐믄.. 근원적으로 달리 태어났다는 거다. 나는 너와 달라. 그러니 우리 독립하께.. 머 이런 가라로 표현하면 어폐가 있을라나?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둘러싼 논쟁들은 래디컬 내부를 크게 둘로 나눠놓았다. 래디컬 중에서도 자유주의에 가까운 일당들은, 여성성이라는 것 자체가 여성의 완전한 발전을 저해하며, 이에 따라 양성적 개념 혹은 가치를 추구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 근저에는, 양성의 차이가 사회적, 문화적 맥락 혹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양성은 동등하다 머 이런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게 되겠다.

반면, 문화적 페미니즘의 경향이 강한 일당들은, 아이다, 사회나 문화 조또 엄꼬 원래 여성성은 타고난 건데, 이를 오염시키지 말고 더욱 더 계발해야 할 거시다 머 이렇게 주장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양성추구 속에 들어있는 남성성의 영향들, 즉, 그토록 지양하고자 하는 부권사회의 남성적 인습(因襲)을 스스로 용인하고 실천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거 듣다보니 20세기 이후를 강타하고 있는 유전이냐, 환경이냐 하는 말싸움하고 별반 틀릴 게 엄씀이다.

뭐 꼭 본질주의가 아니었어도, '동등(equality)'과 '차이(difference)'에 관련된 입장의 대립은 이미 제1물결기에 표출되어 내려온, 이 바닥에 있어서 유구한 논제이자, 또 그래서 근본 문제이기도 하다. 왜? 모든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해소 대상은 부권제 사회다. 부권제가 야기한 각종 여성 억압과 폄하를 타파하려 하니, 두 가지 방향성이 튀어나오게 되기 때문되겠다.

양성구유(androgyny)라고도 표현하는 양성추구는 부권제 사회가 야기한 성(sex)과 성별(gender)의 차별을 근원적으로 소멸시킬 수단이라는 것이 '동등'을 추구하는 쪽의 입장인데 반해서, '차이'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성/성별은 본질적으로 다르므로 부권제가 소멸한다 해도 양자의 차이는 쭈욱 존재한다고 믿었더랬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 부권제 아래 억압된 여성성을 해방시키고 보다 심화·발전시키자는 입장을 가지게 되는 거고.

그런데 본질주의의 대두가 이전의 차이론에 비해 더 논쟁적이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차이론자들이 동등론자들을 공격한 주요 반론들 중 하나는, 부권제적인 패러다임으로부터 그들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맥락이었다. 허나, 일단의 차이론자들이 가지고 나온 본질주의란 거 역시 부권제 사회의 사상적 산물이기는 매한가지 아니던가 말이다. 



보통 본질주의가 품고 있는 것은 "차별"이다. 본질적으로 다른 나와 너, 혹은 나와 그것은 결코 같아질 수 없고, 그러니 너는 혹은 그것은 고 모양 고 꼴로 살아가는 것이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걸 공고히 해왔다. 인종주의, 식민주의, 종교차별, 또는 빈부차별, 성차별 등등, 보다 우월한 대상이 그렇지 못한 넘을 조지고자 할 때, 그 외연은 본질주의가 포장하고 있었다. 몇 천년인지도 잘 모르는 오랜 부권제 문화가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부분을 페미니스트가 차용해 간 형국이 되시것다.

저 옛날, 중세때 스콜라 철학자들은 탁상에 앉아서 토론하는 것을 졸라 좋아했단다. 아담한테 배꼽이 있었냐, 천사도 똥오줌을 쌀까나 등의 실로 심각한 주제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과연 핀 대가리 부분에서 몇 명의 천사들이 춤을 출 수 있는가"였다는데.. '천사는 날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 치열한 토론을 후세인들은 'Angels on a pin' 이라 부르며, 무의미한 썰들을 시도때도 엄씨 풀어놓던 저 철학자들의 고귀한 정신을 길이길이 기리고 있다. 오~ 돈데기리..


Hodgepodge(뒤죽박죽)??

아, 저 진지한 페미니즘 담론들을 걍 공허한 말장난이라 치부하려니 어째 미안해질라구 한다. 보통 사유의 틀이라 말하는 철학 등의 여타 학문들도 삐뚜름이 치보면 죄다 말장난 아니겠나 말이다. 

6·7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활동들은 전세대가 그러했듯이, 여러 시대사상과의 조우 및 그 변형이 함께 했다. 19세기로 그 기원이 올라가는 막스주의 페미니즘, 신좌파운동에 보다 많이 영향받은 사회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프로이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정신분석 페미니즘이나 실존주의 페미니즘 등이 제 2물결기에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이런 풍부한 원천이 존재하는 페미니즘의 미덕이라면, 도대체가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아 일목요연한 정리는 아예 요원하다는 점이랄까? 남성 중심의 사상들 및 그 사조가, 소크라테스 시절로 짧게 잡아도, 물경 삼천년 가까이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제 이백 여년 조금 넘는 당해 사상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래서는 안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통 뒤죽박죽의 넌센스라 단정'짖'지는 말 일이다. 명멸한 모든 페미니즘 이론가들이 원래부터 페미니스트로 태어나 남성들의 학문을 연구하여 취사선택해가면서 자신의 이론을 완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양반들은 적성에 땡기는 학문을 선택한 것이고, 그 자신 여성으로서, 의식의 각성을 통해서 해당 학문에 또다른 관점과 해석을 제시해 온 과정이 존재한다.



페미니즘에 있어, 현재까지 수많은 계파와 실천이론들이 존재해 왔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것은 동등론과 차이론이다. 그만큼 "차이"에 대한 관점과 태도는 현실의 행동에 변이를 가져오는 중요한 입장(standpoint)라 할 수 있음이다. 

시몬느 드 보봐르, 슐래미스 파이어스톤, 케이트 밀렛 등이 유명한 동등론자들이라면, 제인 갤럽, 앨렌 씨이수, 루스 이리거레이 등은 저명한 차이론자 되시겠다고 분류한 바 있는 엘리자베스 그로츠(Elizabeth Grosz)의 말쌈을 좀 들어보자. 

그로츠는, 동등론자들의 주장들이 자칫 페미니즘을 '치마 입은 인본주의'로 후퇴케 하여, 결국 여성이 남성으로 다시 흡수되는 결과를 맞게 할 수도 있는데, 차이론자들의 존재가 이러한 퇴행의 위험을 환기시킬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적 엄정성(intellectual rigour)과 페미니즘 정치투쟁간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딜레마에 차이론자들이 빠져 버릴 수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가야트리 스피백(Gayatri Spivak)의 말쌈을 인용하기도 했다.

"반대편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네게 줄 보편성을 집어들라. 그렇게 함으로써 네가 던져 버리게 될 것은 너의 이론상의 순정성이다."
(You pick up the universal that will give you the power to fight against the other side and what you are throwing away by doing that is your theoretical purity.) --Grosz의 <Sexual Difference and the Problem of Essentialism>에서 재인용


남성독자들, 무섭지 않으신가? 어디선가, 여성성 본질주의자가 언젠가 찾아올 모권제 사회의 그날을 고대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살금살금 당신들의 자리를 잠식해 들어갈 지 모른다. 왜냐면, 그로츠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그의 글을 마치기 때문이다.

..(중략).. 이러한 출현은 페미니즘이, 그 스스로가 비판하는 것들과 친숙해질 수 있는 조건들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부권제적 지배성에 도전할 수 있는 바로 그 수단도 제공한다.
(...(ellipsis)...This emersion provides not only the conditions under which feminism can become familiar with what it criticises but also the very means by which patriarchal dominance can be challenged.)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던 간에 페미니스트들의 공통된 혁파대상은 부권체제가 양산한 그 모든 것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할란다. 양성의 동등함이란 개념도, 양성의 차이라는 개념도 궁극적으로는 부권체제가 강제한 패러다임을 깨부수어 버린 상태, 즉, 새로운 판을 지향하고 있다. 다만, 부권제적 요소가 제거된 새로운 그 무엇은, 아무도 경험치 못한 연유로 인해서 누구도 모른다. 과연, 나를 양육한 이 세상의 여러 가치들로부터 나는 얼마나 자유롭게 사유하고, 또 얼마나 창의적일 수 있을까?


Like a Bitch over Troubled Water

여성억압으로부터 시작된 당 운동은 초기 무렵처럼의, 중산층 백인 이성애 여성의 전유물로만 남아있지는 않았다. 운동이 확산되어 그 정신이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엔 보다 다양한 개념들과 계파들이 생겨났다. 단순히 특정계급의 이익에만 봉사하기에는 한 사회 내에 수많은 그룹의 여성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피임법의 출현이라든가, 가전제품의 발달로 여유시간이 많아지니 생각 또한 많아 배부른 소리 하려고 페미니즘이 부흥한 거는 아니란 야그 되겠다. 

물론 페미니즘 운동이 다양한 집단을 처음부터 죄다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60년대에 이미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보장하는 법률안이 서구에서는 마련됐다. 비록 승진 등에 있어 여성에게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라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지만, 1990년대 초중반에야 비로소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되어 명목상이나마 '동노·동임'이 실시된 대한민국의 사정하고는 참 많이 다르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나 중산층 백인 여성들의 정치·경제적 권리운동은 인종차별의 고통을 당하는 아프리카계 강제이주 여성들에게 요원한 이야기였다. 또, 제 1세계 여성들과 제 3세계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그 거리만큼이나 서로 다른 우주였다. 

마치 만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노예의 사슬을 잃으리라던 막스의 선언이, 현재 제1세계의 노동자와 제3세계의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격차를 감안할 때, 참말로 꿈같은 말인 것처럼..

이에 따라, 제도의 평등에서 출발하여 양성구유까지 확대되는 동등론자들의 주장보다는, 차이론자들의 주장이 역설적이지만 더 많은 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차이'에 관한 논쟁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페미니스트들이 나타나면서 이전보다 생산적인 담론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글로발 시대에 걸맞게 다문화페미니즘 혹은 전지구적페미니즘 등 차이를 전제로 한 상대주의적 운동 경향이 출현했다. 물론 이것은 80년대 이후 강조된 다원주의, 문화상대주의 등과 맞닿아있는 부분 되겠다. 이,삼십 년 전부터 서서히 영향력을 모아와 지금 전세계 사상계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게 생태주의인데, 이 바닥에도 에코-페미니즘이라 해서 최신 페미니즘이 나와 있다.

페미니즘과 그 실천운동은 이렇게 현실세계의 맥락과 함께 진화되고 발전되어 왔다. 제1물결기가 부르주아혁명과 함께 시작한 것처럼, 제2물결기는 60년대 좌파운동과 함께 도래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부인할 지 몰라도, 그들의 이론적 배경 역시 늘 당대의 사상 및 학문 사조에 많은 영향을 받아오게 되겠다. 

이들이 외치는 여성해방은 원칙적으로 여성억압의 원인 제거다. 남녀가 아니 여남이 같던 틀리던 간에 죄다 포유동물에다가 인간류 아니던가? 여성해방은 인간해방의 바운더리 안에 위치하고, 그러므로 이들의 운동은 여타 변혁운동과 하등 다를 것이 없음이겠다. 그러므로 당 기획의 첫 기사에서도 언급한 바, "여성이 향유하는 삶의 질이 반드시 당대의 진보 수준을 초과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당연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 운동은 지구에 일정기간 이상 거주하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투쟁이라 생각하지만, 실인즉, 권력이 만들어놓은 부권체제와의 싸움이다. 부권체제, 즉, 가부장제는 여성을 억압하는 직접적인 메커니즘이지만, 더 넓게는 권력자와 그 서포터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억압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권제의 해소가 여성과 함께 살아가는 남성들의 거세를 의미하는 건 당근 아니다. 

끝으로, 익스트림은 모든 사조와 실천운동에 존재하게 마련인데, 유독 페미니즘에서만 그 극한을, 그 과잉을 부러 부각시키고 기억할 필요는 엄찌 않겠능가.

한때, 60년대 익스트림 페미니스트들 같은 경우, 그룹 회원에게 빠굴 할당제를 실시해 멤버 1/3만 남자와 섹스하도록 하는.. 음.. 참으로 그 속내가 궁금한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는데, 뭐.. 때는 60년대였고 이들은 소수였다. 이 수준의 뻘짓들은 당시 미국의 각 지역에 산재한 초원이나 사막에 기거하시던 히피분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겠으니 구엽게 봐 줄 수도 있는 일이지 싶다. 문제는 표층구조가 아니라 심층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