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여성

sex worker 호명에 대한 단상정리

同黎 2013. 3. 14. 13:41

 

성노동자 sex worker

 


>>자기호명일 뿐


우리는 그녀들을 ‘창녀’라고 불리우는 것을 반대했다.

그리고 ‘성매매 여성’이라고 호명했다.

그러나 그녀들이 스스로를 ‘성노동자’라고 호명하는 것(대만 등에서의 성노동자운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0년 공창제 폐지 결정을 둘러싼 성노동자들의 저항 및 조직화 사례연구가 필요할 것)에 대해 부정적이지는 않다. 스스로를 호명하는 과정에서 그녀들이 집단화되는 효과를 긍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변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계속하여 쟁점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내가 문제제기하는 것은 성매매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데에 “왜” 노동자라는 라벨링이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체성만으로도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의 근거가 되는데 어째서 그것을 바꾸려 드는 것인가. ‘성노동자’라는 호명이야말로 맑스주의라는 이론으로 모든 모순을 포괄하려는 인텔리적 발상이다.

(yd게시판 논쟁에서 성매매근절의 글 中)



위와 같이 성노동자 운동을 긍정하는 것, 혹은 성노동자라는 호명을 인정하는 것에대해 반대하는 입장의 근저에 오히려 노동자주의가 깔려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야하겠다.

‘노동자’라고 인정하는 것을 그 노동을 찬양하는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 오히려 맑스주의를 곡해하는 노동자주의이다.

(노동자가 초역사적으로 해방의 담지자, 역사의 주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매매여성이 성노동자라고 불리울 수 없다는 데에는 성을 파는 것을 어떻게 (감히?!) 노동이라고 여길 수 있겠느냐는 반감아니겠는가?

신성한 노동의 영역에 성노동이라는 불경한 것이 해당될 수 없다는?

(<공창묵시록>초반에 등장하는 길거리 설전에서, 성매매여성에게 왜 떳떳한 일 안하고 그렇게 수치스러운 일을 하느냐고 다그치던 모습과 논리적으로 그렇게 다르지 않은.) 혐오, 적대, 거부감이 차라리 깔려있다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노동을 찬양하는 것은 오히려 자본가들이다! (열심히 근면하게 일하라!) )

프롤레타리아를 호명하는 것은 그/녀들의 ‘노동’ 속에서 보편성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호명되는 사람들의 ‘현재의 노동’의 양태의 폐지, 그리고 심지어 그/녀들 자신의 계급으로서의 존재의 폐지가 전인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폐지와 연결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보편성을 찾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를 호명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라는 특수한 존재를 찬양하고 영속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이 자신을 폐지함으로써 계급 그 자체를 폐기하려는 것.
성노동자라는 이름도 성노동자를 영속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현재 생산된 조건들 속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이름짓는 행위이고 따라서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만들려는 것. (ex/ 실업노동자)

 



성노동자 운동을 인정하고 성노동자 sex worker라는 호명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성매매를 용인하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매매를 합리화하는 근거와 빌미(포주들이나 업주들, 구매자들에게 유리할)를 제공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따진다면, ‘노동’을 인정하고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도 자본의 착취구조를 인정하고 용인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야기될 수 있겠다.

우리는 ‘노동’을 인정하고 그/녀들을 ‘노동자’라고 부름으로써 자본의 착취구조를 인정하고 용인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집단화되는 것, 그것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와같은 우려도 첫 번째 입장과 마찬가지로 성매매에 대한 혐오와 적대, 거부감을 깔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단지 세련된 우려로 포장했을 뿐.

 


 

>>'성노동자'라는 용어에 과잉된 이런 논쟁의 지형이 시사하는 바는, 성매매방지특별법 제정과 맞물려 진행되었던 담론의 생성 과정에서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이데올로기 투쟁이 결핍되었다는 사실. 그것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남는 문제는,

우리의 입장이 선택적 합법화(공창제)와 차별성이 없어보인다는 점.
무엇을 할 것인가?
현실투쟁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도록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