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詩

헤어진 다음 날 - 김도언

同黎 2013. 10. 6. 01:27

헤어진 다음 날


                                    김도언



너와 헤어진 다음 날, 길가에서 죽어 있는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목욕하는 여인을 상상하지 않았다, 골목마다 가득 버려진 헌책들의 나른한 저자가 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았고, 기침이 심한 시내버스 기사에게 첫사랑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거스름돈을 자꾸 틀리는 편의점 여자에게 머리칼을 짧게 자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순식간에 버렸다, 배고픈 고라니가 순수한 눈동자를 버리듯, 너와 헤어진 다음 날, 나는 겨우 존재하는 나를 닮은 것들에게 시비걸지 않았다, 눈이 구두코 위에 쌓이는 밤 나는 산타클로스의 평균수명에 대해 상상하지 않았다, 나는 가끔 출근길에 마주치는 지나치게 빠르게 걷는 어떤 사내의 다음 생애를 떠올려보았을 뿐, 평생 빨리 걷는 사람들의 비애와 그 비애의 난처함을 짐작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버린 날, 나는 속옷을 갈아입지 않았고 아무런 노래도 흥얼거리지 않았으며 매혹적인 걸인에게 적선하지도 않았다, 적선이라는 말이 다만 한없이 우습고 형편없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내가 너와 충분히 헤어져보았던 다음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