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논문 24

한명기,「19세기 전반 반봉건 항쟁의 성격과 그 유형」,『1894년 농민전쟁연구』2, 역사비평사

한명기,「19세기 전반 반봉건 항쟁의 성격과 그 유형」,『1894년 농민전쟁연구』2, 역사비평사. 석사5 박세연 19세기는 중세의 정치사회적 틀이 무너지고 새로운 이행이 모색되던 시기이다. 18세기 집권세력에 의해 어느 정도 체제 내부로 흡수된 반체제적 움직임은 19세기 벌열정치로 두터워진 사회적 장벽 때문에 폭발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홍경래의 난, 1862년 농민항쟁, 1894년 농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민중세력의 저항은 봉건체제의 해체를 촉진하였다. 본고에서는 그동안 주목되지 못했던 크고 작은 항쟁들의 유형과 단계, 성격을 규명하여 19세기 전반의 항쟁들이 점차 진전되어 가는 모습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19세기 전반은 조선후기 이래 사회경제적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모순들이 다양한 형태로..

書/논문 2012.09.09

정석종, 「숙종조의 사회동향과 미륵신앙」,『조선후기사회변동연구』, 1984, 일조각.

鄭奭鍾, 「肅宗朝의 社會動向과 彌勒信仰」,『朝鮮後期社會變動硏究』, 1984, 일조각. 숙종연간의 釼契·殺主契사건이나 미륵신앙사건은 그간 학계에 잘 보고되지 않았다. 이는 조선후기 사상사의 변화를 유학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며 불교, 도교와 민간신앙의 변화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조선후기 정치사를 당쟁사로만 파악하고 당쟁의 이해도 사건 전말의 기술에 그쳐 당쟁의 사회사적 성격은 규명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관찬사료에만 집중하여 민간에 대한 사료 발굴에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상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서술되었다. 인계와 살주계는 대만의 정씨정권이 조선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는 이른바 왜서사건으로 시국이 혼란한 틈을 타 주인을 죽이거나 양반 여성을 겁탈하는 사건을 통해 드러나..

書/논문 2012.09.03

고석규, <19세기 전반 향촌사회 지배구조의 성격: 수령-이`향 수탈구조를 중심으로>, <<외대사학>>2

첫째, 이·향층에 편입될 수 있는 요호부민과 그렇지 못한 요호부민의 차이점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같은 요호부민층이 어떻게 분절되어 수령과 결탁할 수 있는 측과 그렇지 못한 측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가? 만약 요호층의 이러한 분열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경제적 측면보다는 경제외적 강제에 의한 것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필자는 요호층이 분리되는 경제외적 강제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다. 둘째, 19세기의 이·향층은 과거의 향리계층과 분절성을 강하게 가지는가? 필자는 조선후기에 고려부터 이어진 土姓의 吏族이 약화되고 양민층 출신의 假吏가 급격히 늘어나서 기존의 향리층을 대신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조선후기 가리층의 수가 증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력이 假吏로 등장하였다고 했을 때, 이것이 필자의 주..

書/논문 2012.07.28

윤용출, 「15·16세기의 요역제」, 『부대사학』10

윤용출, 「15·16세기의 요역제」, 『부대사학』10 박세연 요역은 민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징발하는 수취제도로 전세, 공납과 함께 민호의 사유지에 부과되는 세몫의 하나였다. 요역은 노동력을 징발한다는 특징 때문에 군역·신역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고, 지방에서는 공물·진상의 마련, 생산, 운송이라는 문제 때문에 공납제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요역은 민호를 대상으로 하는 戶役이었지만 군역은 특정의 인신을 대상으로 부과하는 身役이었기 때문에 노동력 징발의 기준과 방식에서 요역과 군역은 구별되는 것이었다. 요역은 雜役·雜徭·所耕雜役·戶役·力役·賦役 등의 용어로도 표현되고 있다. 雜役·雜徭라는 단어는 요역이 지방의 여러 조건과 사정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띄며, 지방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차역하고 징..

書/논문 2012.07.28

양안의 연구 (김용섭,『사학연구』7·8, 1960)

양안의 연구 (김용섭,『사학연구』7·8, 1960) 토론문 김용섭의 본고는 한국사에 있어서 내재적 발전론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본고에서 이야기하는 내재적 발전론의 가장 큰 특징은 농가, 농업, 농민의 문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중세사회의 해체기인 조선후기 이루어졋던 내재적 발전의 원동력이 民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인류사의 보편적인 발전단계” 중 하나인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즉 국가의 통치력이 사실상 해체되고 신분제가 동요되면서 피지배계층이 성장하고 그들의 주도에 의해 근대가 열리게 된다는 세계사적 흐름이 조선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용섭이 연구한 경제사는 조선이 중앙집권국가였음을 인정하고 국가재정..

書/논문 2012.07.24

조선시대 정치적 갈등과 그 해결 (이태진,『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1985)

조선시대 정치적 갈등과 그 해결 (이태진,『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1985) 요약발제문 1. 인간의 정치적 동물로, 인간의 정치적 행위는 역사의 동력이다. 이는 한국사에서도 예외일 수 없는데, 우리는 정치사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정치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그르치는 문제이다. 사화와 당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당연시되고 있지만, 그러한 인식이 생긴 배경은 민족사에 대한 반성보다는 일제의 고의적 작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즉 식민사관이 식민통치의 정당화, 영속화를 위해 한민족의 민족성을 당파적이라고 규정지으면 사화와 당쟁을 본보기로 든 것이다. 때문에 재검토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2.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16세기 ~ 17세기 전반기는 왕조 초기의 통치 기반이 무너져 ..

書/논문 2012.07.24

인조대 정치세력의 동향 (오수창, 『한국사론』13, 1985)

인조대 정치세력의 동향 (오수창, 『한국사론』13, 1985) 요약발제문 1. 머리말 조선 중기 이후 정치사의 가장 특징은 붕당정치이다. 현재까지 인조대에 대한 연구는 당쟁에 대한 개설적인 연구의 일부로 행해졌고, 당쟁의 일반적인 체계화나 각 붕당의 계보화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붕당은 학통이라는 기반 위에 지연, 혈연이 더해지며 생긴 것으로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학문, 정책의 대립과 더불어 일어난다. 따라서 모든 정치적 대립은 당색에 의한 것으로만 파악할 수는 없으며 붕당이 중요한 정치적 변수이기는 하지만 그때 그때 다른 요인을 종합하여 고려해야 한다. 때로는 다른 요인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따라서 조선중기 이후 정치사를 연구할 때는 전통적인 붕당이라는 변수와 그 외 다른 요인에 ..

書/논문 2012.07.24

李基白,「高麗 貴族社會의 形成」,『한국사』4, 국사편찬위원회, 1974.

李基白,「高麗 貴族社會의 形成」,『한국사』4, 국사편찬위원회, 1974. 조선후기 석사3 박세연 1. 成宗代의 政治的 支配勢力 고려 초기 사회는 호족연합형태에서 귀족사회로 발전해갔다는 점은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본고에서는 10세기 말에 있어서의 귀족사회 형성과정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려 건국에 호응한 호족세력과 개국공신은 光宗으로 인하여 억압 받아 거의 뿌리가 뽑혔다. 최승로는 “살아남은 舊臣이 40여 명뿐이다.”라고 하였다. 광종은 대신 후백제·발해 출신 등 새로운 인물들을 등용하였다. 광종 사후 景宗이 복수를 허락하면서 광종의 개혁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제거되었다. 광종이 죽은 후 개국공신계열이 再登用된 것으로 보인다. 荀質 ·申質·崔知夢(90..

書/논문 2012.07.23

붕당정치론 비판 (김용덕,『정신문화연구』9, 1986)

붕당정치론 비판 (김용덕,『정신문화연구』9, 1986) 요약발제문 1. 서언 변태섭교수가 최근 한국사통론을 저술하면서 소장학자 이태진의 붕당정치론을 받아들였다. 근데 붕당정치론이 성립하려면 그 성립기인 선조대에 붕당은 상대세력과의 공존과 상호비판·견제를 원리로 해야 하며 기축옥사 같은 역옥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변태섭은 기축옥사에 있어서 정여립의 역모를 사실로 봐야 할 것이라고 하여 붕당정치론에 의거해 기축옥사를 해석하고 있다. 이에 나는 10년전에 내가 쓴 논문을 다시 봤는데 그 결과 한자의 첨삭도 팔요없는 쾌심의 작임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이대로 있으면 기축옥이 사실이라는 오해가 확산되고, 당쟁사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바 있는 나로는 이태진의 논조에 동의할 수 없다. 2. 기축란의 진상 붕당..

書/논문 2012.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