颐和园 5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5

지혜해의 패방 군데군데 비석들이 있다 불행각 옆의 정자 괴석을 쌓아 축대를 만들었다 뒤에서 보는 불향각 이제 뒤편으로 간다 불향각 전경 정말 크다 오래된 나무를 지나 지혜해로 넘어간다 지혜해는 만수산 꼭대기에 무량수불을 위해 건륭제가 지은 건물로 오색 유리벽돌로 화려하게 지었다. 유리벽동에는 불상 천개가 찍혀 있는데 문혁 당시 상당수 훼손된 것을 복구한 것이다 크다 머리는 대부분 새로 만든 것이란다 내부에는 건륭제가 만든 무량수불이 모셔져 있다 사방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붉은 옷이 입혀진 불상 되편 광배 부분에 감실이 있고 보석으로 장식한 작은 불상이 또 있다 위태천 내부 감실에 모셔진 협시보살 이제 지혜해 부편으로 가면 티베트 식으로 만든 사대부주라는 사원이 있다. 티베트 삼예 사원을 본따 만든것으로 ..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4

남호도에서 보는 만수상멋지다 불향각지금은 3층이지만 본래 7~8층이었다고 섬을 한바퀴 도는 중 다들 뱃놀이에 여념이 없다 괴석을 쌓아 만든 섬 다시 배를 타고 건너간다 만수산 방면으로 남호도 작은 섬이다 멀어지는 섬 우리가 들어온 동궁문과 반대의 석방 방면으로 왔다 돌로 만든 배 이건 그냥 등장한 것은 아니고 오랜 전통이 있는 것이다군주는 배고 백성은 물이라 백성이 군주를 가라앉힐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돌로 만든 배를 세웠다고 한다 이것은 양주 서호에 있는 유명한 석방을 이화원에 재현한 것이다 다시 장랑을 따라 간다 복을 의미하는 박쥐모양으로 휘어진 장랑 사람들 많다 배운문 앞의 패방 배운문의 현판 내부로 들어가면 중문인 이궁문이 보이고 불향각이 높이 솟아있다 과거에는 배운문과 이궁문 사이에 연..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3

이제 동쪽에 있는 건축군을 보러 간다 먼저 인수전 뒤의 옥란당황제가 정무를 처리하고 거처하던 곳으로 건륭제 때 지은 것이지만 서태후가 광서제를 가둬놓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광서제가 다른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정문 온락문을 제외한 모든 문을 담으로 막아놓았다 옥한문 혁판 문을 들어가면 보이는 옥란당 뭐 평범한 건물이다 좌우로는 배전이 있다 옥한당 정면 내부는 광서제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 벽화 뒤편으로 괴석을 쌓아 만든 가산이 있다 옥단당 뒤의 의예관 의예관은 본래 옥란당과 ㅉ가하는 황후의 거처이다.광서제가 갇혀있을 대 황후 역시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황후는 서태후가 꽂은 인물이랑 감금은 아니었다고 의예문을 지나 의예관이 나온다 비교적 소박한 편 안내문 의예관 현판 내부 역시 복원 한쪽에 석각..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2 문창원文昌院2

다음 취진관으로 간다 상아를 조각해 만든 상자 조각 수법이 대단하다 비취 여의 10개가 한 세트로 내려온다고 서양 기법으로 만든 촛대 화려하다 당시 황족이 사용하던 자동차 유리로 만든 촛대 특이하군 칠기로 만든 경대 서양식 시계 법랑 합 칠기로 만든 합 서양 군함식 시계 역시 서양 군함 모양 시계 각종 화병 금니로 쓴 병풍 보석으로 조각한 가리개 옥으로 조각한 가리개 칠보와 옥으로 만든 연꽃 칠보와 옥으로 만든 꽃밭 오래된 나무로 조각한 신선들 은으로 만든 수선분 각종 은기들 산호 화분 서양에서 수입한 식기들 허 마이센 것이었다고 들었다 포크와 나이프 나전과 상아 손잡이 은과 금제 도구 칠보로 만든 작은 도구들 다음 동기 관 아 청동기.. 이젠 어느 시대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상~서주 시기의 것을 청..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1 문창원文昌院1

택시를 타고 이화원으로 왔다보통 동궁문으로 들어가서 동궁문으로 나오는 코스를 하는데 우리는 산을 넘어서 북궁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입구의 영벽 동궁문이화원의 정문으로 현판은 광서제의 친필이다 이화원(颐和园)은 청조 최대의 어원이다. 본래 이곳엔 서호라는 호수가 있었는데 금나라 때 행궁을 설치하였고 원나라가 대도를 정한 후에는 북경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운할르 파면서 이곳의 호수를 거대한 저수지로 만들어 넓혔고 이후 명나라 정덕제가 호산원이라는 황실 원림을 삼았다. 만력제가 이를 넓히고 천계제 때는 위충현의 소유가 되기도 했다. 건륭제는 이곳에 이화원의 전신인 청의원을 조성했는데 서호를 크게 넓히고 곤명지라고 하였고 그 흙으로 산을 쌓아서 만세산이라고 하였다. 이는 어머니 효성헌황후를 위해서였다. 그후 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