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지하도를 나오면
천안문이 바로 앞에 보인다.
천안문 광장 앞에 있는 한 쌍의 화표
석망주라고도 하는데 궁전이나 능묘 입구에 설치하는 원형의 돌기둥이다.
중간에는 구름을 조각하고 맨 위에는 하늘을 향해 짖는 신수가 올라가 있다.
무려 명나라 때부터 있었던 토박이 물건이다.
천안문으로 접근 중
역시 열병식 준비로 비계가 쳐져 있다.
화표와 함께 보이는 천안문
잘 안 보이지만 화표 옆에는 석사자가 앉아있다.
가운데에는 마오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현판 자리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장이 걸려있다.
원래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대단결 만세 라고 써 있는 금속판이 보여야 된다.
잘 보니 글자를 철거한 것은 아니다.
무슨 장치를 해놓는 것인지 이렇게 비계를 쳐 놨다.
천안문 앞의 다리
앞에는 금천이 흐르고 한백옥으로 만든 다리가 있다.
여기를 흐르는 물은 금수하라고 하는 일종의 해자이다.
궁성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사악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상징적 의미도 지닌다.
이 금수하 위로 5개의 석교가 지나간다.
다리를 건너 간다.
다리 중간 중간에도 공안들이 서 있다.
날도 더운데 꼼짝도 안 하고 있다니 신기하다.
마오주석의 초상
중국의 국장
이제 다리를 건너 천안문을 지난다.
천안문 홍예 부분
광화문 등과는 다르게 석회로 둘러져 있다.
조선의 궁문은 석재를 쌓아 성채를 만들고 그 위에 문루를 만들며 문루 홍예의 천정은 목재로 되어 있다.
황궁의 성채는 벽돌을 쌓아 석회를 발랐으니 재료의 차이에 따라 다를 만하다.
문고리 부분
천안문 안에 들어가면 다시 화표가 보인다.
역시 명나라 때의 것이다.
눈 앞에 엄청난 사람과 단문이 보인다.
단문은 황성의 3번째이자 마지막 문이다.
단문은 1420년 영락제가 북경으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지은 당시의 건물이다.
강희제가 보수하긴 했지만 비교적 당시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한다.
천안문에서 단문 양쪽으로는 긴 회랑이 있다. 과거에는 여기와 단문의 문루도 전시관으로 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알고 보니 여기가 역사박물관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가박물관으로 합쳐진 곳이다.
조정에서 가장 큰 행사인 조회가 있을 때 문무백관은 바로 이 단문 앞 광장에서
대기하였다가 황명이 예부를 통해 전달되면 입장하였다.
지금은 관광객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고 사람도 버글거려서 정신이 없다.
단문 문루의 모습
9칸이고 길이는 40미터에 달한다.
단문으로 접근 중
바로 아래서 본 단문
단문의 현판
아마 예기 중용의 구절에서 따오지 않왔을까 한다.
단문을 통과한다.
오 단문을 통과하니 한층 더 헬게이트가 열린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보인다.
멀리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저기에 들어가려면 먼저 좌측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한다.
사람이 정말 많다.
줄을 선 관광객들
입장료는 60위안이다.
우리는 대표로 이종욱을 보냈으나 20분이 넘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 와중에 셀카질
근데 어차피 신분증을 제시해야 표를 살 수 있기 때문에 다 가야했다.
표를 사는 이종욱
4인의 표를 한꺼번에 준다.
알고 보니 미리 인터넷 예매를 해도 됐었다.
이제 드디어 표를 사고 오문 쪽으로 간다.
근데 우리는 지금 입장하지는 않는다.
먼저 태묘에 가기 위해서이다.
오문의 풍경
궁성의 남쪽 정문이다.
오문은 가운데와 양 옆에 2개씩 5개의 누각이 있어 오봉루라고도 부른다.
영락제 때 지어지나 이자성의 난으로 불타자 순치제 때 다시 지어졌고 가경제 때 마지막으로 보수되었다.
문은 세 개인데, 가운데에는 황제만 드나들었고
과거 전시의 1,2,3등이 딱 한 번 출입할 영광이 주어졌다고 한다.
좌우의 문은 각각 백관과 황족의 출입문이었다.
여타 잡인들의 출입은 오문 옆에 있는 다른 문으로 이루어졌다.
오문의 문루
가운데는 9칸의 대형 누각으로 안시루라고 한다. 기러기의 날개라는 뜻이다.
여기는 황제가 조하를 받거나 중요한 유칙을 반포하는 장소였다.
강희제나 건륭제는 남정북벌 이후 여기서 백관의 조하를 받았다.
원래 단문의 문루에는 20위안을 내고 올라갈 수도 있고 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때가 때인지 우리가 갔을 때는 입장이 불가했다.
정중간의 문루 바로 옆의 누각들은 각각 종루와 고루였다고 한다. 즉 황제가 사직단이나 천단으로 갈 때는 왼쪽의 종루에서 종을 올렸고, 태묘로 갈 때는 오른쪽의 고루에서 북을 쳤다는 것이다.
이제 자금성 관람을 잠시 미루고 우리의 종묘와 같은 태묘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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