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근현대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무엇이 잘못되었나?

同黎 2015. 10. 7. 17:48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무엇이 잘못되었나?

 

최근 군함도(하시마)를 비롯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관심이 뜨겁다. 무한도전을 비롯한 인기프로그램에서 일제의 강제 징용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체 이들 유적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식민통치기 일본의 한반도 침략 역사가 다시 한 번 조명되는 것이다. 사실 강제 징병·징용문제와 위안부 문제 등 총동원 시기 일제의 수탈에 대한 관심은 종종 있었던 것이다. 군함도로 대표되는 이번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는 때때로 국민적 분노를 동원하는 일제 수탈의 역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식민지시기 일제의 수탈에 대한 기억과 한일협정으로 끝나지 않은 보상과 사과에 대한 관심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일본 정권과 우익이 단순히 식민 정책을 긍정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조금 더 복잡한 역사적·정치적 속내가 들어가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한국 사회 시민들의 관심과 분노 즉 역사 전쟁도 그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명칭에는 굉장히 복잡한 속내가 감추어져 있다. 이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 한 일본 정권 측에서는 전범국으로서의 과거사 문제를 피해가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를 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이 유산을 단순히 일본의 경제성장을 기념하는 유산이 아니라, 동아시아사에서 일본의 역할을 분명히 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명칭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선 메이지(明治)라는 시간적 테두리를 명확히 해 놓은 것이다. 이를 통해 1912년까지의 산업유산을 등재한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체제가 굳어지고 나아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가 되어 국민과 식민지인을 총동원하는 30년대 이후의 즉 전전(戰前) 쇼와(昭和) 시대를 등재 신청서에서 삭제해 논란을 최소화 하였다.

두 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산업혁명이라는 명칭이다.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 명칭을 산업발전(Industry Development)이 아니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으로 규정하였다. 즉 메이지시대 일본의 경제 발전을 단순한 서구 문물의 수입을 통한 산업 발전이 아니라 봉건사회를 산업사회로 바꾸는 근본적 변화인 산업혁명으로 규정하려는 것이다. 또한 유네스코의 공식 등재서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The site testifies to what is considered to be the first successful transfer of Western industrialization to a non-Western nation.) 일본이 비서구사회에서 처음으로(혹은 유일하게) 산업화를 이룬 국가임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일찍부터 일본의 산업혁명을 강조해온 바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비판하고, 이른바 정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도식적 역사관을 도입한 전후(前後) 역사학을 넘어서자는 주장은 긍정적 면도 가져왔지만 동시에 우파적 입장에서 근대 동아시아 경제 발전에서의 일본의 선두적 역할을 강조한 나카무라 사토루와 같은 학자를 낳기도 했다. 또한 하야미 아키라는 일본의 경제발전을 서양의 산업혁명과 대비되는 근면혁명으로 서술하여 일본의 산업혁명에 고유성을 부여하려 하였다.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등재는 일본의 산업 발전을 일본 고유의 산업혁명으로 격상시키기 위해서이며 궁극적으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산업국가였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보면 이는 일본이 20세기 전반 아시아에서 행한 식민정책과 침략이 아시아의 근대화를 가져왔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시기를 한정하여 총동원시기의 침략상은 회피하는 한편, 일본이 동아시아 고도성장의 주역이었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려 한 것이다.

이상으로 살펴보았듯이 일본에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서 강제징용이 있었음을 인정하려고 요구하여도 그것은 유감표명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했듯이 시대를 메이지시대로 한정하고 기타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유감표명을 하는 선에서 세계유산 등재의 정당성은 만족되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유산의 등재가 동아시아 근대사의 첫페이지가 잘못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역사전쟁이 벌어진다면 진정으로 지목되어야할 잘못된 점은 무엇일까? 자본주의를 선()으로 여기고 자본주의의 이식을 역사의 진보로 설명하는 역사관이 반복되는 한 우리는 식민지 근대화론도 일본의 산업유산 등재도 진정으로 막아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