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9차

9번째 간사이원정기 - 6일 교토 라쿠난1 (홋쇼지法性寺, 도후쿠지東福寺)

同黎 2016. 1. 17. 02:31



야마시나의 아침은 고요하다.


철도가 보인다.



다시 JR야마시나역으로 가서


교토역으로 가 이번엔 나라행 기차로 갈아타고 도후쿠지역으로 간다.


도후쿠지로 가기 전 바로 옆의 홋쇼지(法性寺)로 간다.

라쿠요 삼십삼소 관음영장순례를 하기 위해서이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 일단 문 사이로 카메라부터 들이민다.


홋쇼지(법성사, 法性寺)는 10세기 중반 당시 권세가 극을 달렸던 후지와라씨가 세운 사찰이다.

당시 후지와라씨의 중심으로 세 명의 황후를 딸로 두고 미도칸파쿠(御堂関白)라고 불렸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에 의하면 "천하가 모두 나의 것이니 저 둥근 달처럼 모자람이 없어라"라고

표현했을 정도라고 하니 당시 섭관가에 올라 율령체제를 사실상 무너트리고 모든 권력을

틀어 쥐었던 후지와라씨의 권세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홋쇼지는 그런 후지와라씨 중 당주였으며 섭정과 관백을 지낸 후지와라노 타다히라(藤原忠平)가

후지와라씨의 우지데라(氏寺)로 지은 절로 광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절이다. 지금의 도후쿠지 부지가

전부 홋쇼지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후 쇠퇴하고 오닌의 난 등으로 불타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을

메이지유신 이후 관음상을 중심으로 재건하였다. 이 때 도후쿠지의 배려가 있어

임제종이 되기도 했다가 현재는 정토종 서산파에 속한다.


 지금 남은 것은 당시 본존으로 만든 천수관음상과 후일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만든

오대당의 본전인 부동명왕상이다. 현재 부동명왕상은 도후쿠지의 탑두인

도주인(동취원, 同聚院)에 모셔져 있다. 도주인은 이전에 갔었다.


5차 여행기 참조

http://ehddu.tistory.com/723 


한참을 불러본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잘 안 나온다.


안내판


아주 간략한 설명만 되어 있다.


겨우 할머니가 나오셔서 문을 열어준다.

건물 하나짜리 작은 절이다.

안에는 수호신사인 이나리신사가 있고


지장보살도 보인다.


건물 입구에는 제액관세음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예로부터 여기 모신 천수관음상은 병을 낫게 해주는 관음상으로 유명했으며,

천황의 병도 여기서 빌었다고 한다.


도장을 받으러 들어간다.


낙양삼십삼소 제21번 홋쇼지의 주인장


국보로 보존된 천수관음상

특이하게 머리가 27면이다. 팔은 42비

팔이 42개인 것은 천수관음의 정해진 공식이지만 얼굴이 27면인 것은 기요미즈데라의 천수관음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예라고 한다. 창건 당시의 것이니 그만큼 귀한 것이다.


비불이라서 몇 년에 한 번씩 특별공개만 된다.

 

조형적으로 보면 여러개의 팔을 조각하느라 어깨가 지나치게 넓어지고,

머리도 큰데 허리는 너무 얇아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국보로 지정된 도묘지나 쇼린지의 십일면관음상, 후지이데라의 천수관음상처럼 아름답지는 않고

헤이안시대의 매너리즘이 조금씩 옅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후지와라씨의 후원으로 만든 것이니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는 높다.


이제 도후쿠지로 들어간다.


도후쿠지도 여러 번 왔다.



가는 길에 보이는 훈다인(분타원, 芬陀院)

여기도 전에 와봤다.



계곡 사이에 놓여진 와운교

사실 도후쿠지에서 유명한 다리는 통천교지만, 통천교는 태풍으로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운 것이며

다리 부분이 철근콘크리트지만 와운교는 살아남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건너편에 있는 언월교와 함께 대구를 이르며 각각 구름과 달을 상징한다.


언월교에서 바라 본 통천교와 계곡

가을이면 이곳이 온통 붉은 단풍이 된다.


지나가는 길에 나온 도주인

이번엔 지나간다.


멀리 일하문이 보이고


바로 옆에는 탑두사원을 개조해 만든 도후쿠지 보육원이 있다.


모습을 드러내는 도후쿠지

정면에 법당이 오른쪽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고리가 보인다.

도후쿠지(동복사 東福寺)는 홋쇼지의 터에 가마쿠라시대의 섭정인 쿠조 미치이에(九条道家)가 세운 절이다.

대사찰을 만들겠다는 염원으로 동대사의 동, 흥복사의 복자를 따서 도후쿠지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임제종 동복사파의 대본산으로 교토 5산에 들어가는 거찰이지만 오닌의 난으로

전소되고 다시 세운 사찰도 메이지시대 일부 소실되어 재건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금은 에이칸도 등과 함께 교토 최고의 단풍 명소로 유명하다.


통천교(도게츠교)와 본당을 이은 회랑

본당은 법당과 불전의 역할을 한꺼번에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후쿠지의 칠당가람은 불전과 법당을 하나로 하고 대신 선당이 들어간다.


2층으로 된 경장


문화재는 아니다.


대방장 입구가 보인다.


방장에서 바라본 통천교와 경장


방장. 메이지시대에 불타 다시 지은 것이다.

배관료는 400엔


방장 남쪽의 정원

모래와 돌로 봉래, 방장, 영주, 호량의 4산을 형상화한 정원이다.

일본 가레산스이(고산수) 정원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방장에서 기념사진


은사문과 남정이 함께 보인다.

메이지천황의 아내인 소헌황후가 불탄 방장과 본당을 재건해 주었으며

이 문도 지어주었기 때문에 은사문이라고 한다.


모래로 파문을 그려 넣었다.


안경 좀 써라


방장의 서쪽 방향 한쪽은 아예 계곡으로 뚫려 있어 통천교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건너편에 개산당이 보인다.

도후쿠지의 개산조를 모신 곳으로 중요문화재이다.


통천교(도게츠교)

올라가보면 나무로 만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콘크리트임을 알 수 있다.

단풍철 행락객이 농담아니라 미어터질 정도임을 감안하면 나무다리였음 그냥 주저앉았을 거다.

단풍은 아름다운데 정말 붐빈다.


통천교가 바라보이는 무대




아 제발...

그래 작성일 기준으로 제대가 600일도 더 남았으니 봐준다.


북쪽 정원


옛 칙사문 안에 있었던 돌을 사용하여 바둑판 모양의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동쪽에는 역시 불탄 건물의 석주를 이용하여 북두칠성을 만들어 놓았다.


다시 돌아온 남쪽 정원


동영이는 나라에서 허용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을 듣고 있다.


좋단다


삼문이 보인다.


도후쿠지 삼문은 일본에 존재하는 선종 사찰의 삼문 중 가장 오래된 문이다.

가운데 세 칸의 문을 뚫고 2층의 누각을 만든 다음 2층에 보관석가여래와 십육나한을 모신 국보 건물이다.


붉은 칠을 하지 않고 단정하게 지은 건물로

마치 학이 내려앉은 듯한 단정한 건물이다. 건물 중에 단연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난젠지 삼문을 보며 왜 이 정도 건물이 국보가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도후쿠지 삼문을 보면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하며 뭐가 다른지를 알게 해주는 건물이다.

지온인의 삼문은 웅장함에 기를 질리게 하지만 도후쿠지의 삼문은 선종의 단아함을

잘 보여주는 우아함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당 내부


본존 석가여래와 가섭, 아난의 삼존상. 중요문화재이다.

아래로는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본존 석가여래상

선종사찰은 불상조각에는 조금 인색하여 명품이 적고 오히려 승려 초상조각이 성행했다.


선당 사진을 빼먹었다.

가마쿠라시대의 건물로 오닌의 난을 피한 교토의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이다.

일본 선당(禪堂) 중에 가장 오래된 건물로 선종이 막 들어온 가마쿠라시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구이다.


도후쿠지의 명물인 동사

즉 측간이다.


무로마치시대의 건물로 일본 최고의 화장실 건물이고 중요문화재이다.


거참 내부 보존도 깔끔하게 잘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