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탐험을 하고 있는 사이 나머지 애들은 금각사(킨카쿠지, 金閣寺)로 간다.
개인적으로 눈이 펑펑 내리지 않는 한 절대 가지 않는 곳인 금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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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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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는 정식명칭이 로쿠온지(鹿苑寺, 녹원사)로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가 쇼군에서 은퇴해 출가한 후 머물던 별장인 로쿠온인을 그의 사후 개조한 것이다. 아시카가 가문과
관련이 깊은 임제종 상국사파 소속으로 쇼코쿠지의 산외 탑두사원에 속한다. 요시미츠 사후 그의 아내가
머물렀으나 오닌의 난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탄 것을 에도시대에 수복한 것이다. 지금의 건물은 대부분
에도시대의 것이며 1950년 소실되기 이전의 금각의 경우 요시미츠 시대의 것인지, 에도시대에 재건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방화사건에 대한 서술을 보면 무로마치시대 당대의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종각
배 모양의 손 씻는 석조
스님들이 머무는 곳인 고리가 보인다.
에도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금각
금각사에 소장 중인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초상
3대 쇼군인 요시미츠는 1대의 아시카가 다카우지, 2대의 아시카가 요시아키라와는 달리 남북조시대를 종식하고 무로마치에 저택을 지어 교토에서 무로마치 막부의 권위를 확고히 했다. 물라난 후에는 고쇼 북쪽에
쇼코쿠지를 지어 천황을 감시하고 명과의 통교를 위해 일본국왕으로 책봉받아 일본을 동아시아 세계에
편입시키려고도 하였으며, 금각사를 중심으로 하여 귀족과 무사, 선종의 문화를 혼합한 기타야마문화를
만든 이이기도 하다. 현재는 비판받고 있지만 요시미츠가 천황의 자리를 찬탈하려고 했다는 왕위찬탈설이
있을 정도로 그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러나 이러한 무로마치 막부도 3대가 못되어 무너지고 허울만 남는다.
지금의 금각, 즉 사리전은 재건된 것으로 본래 건물은 1950년 방화사건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그 사건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라는 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사미는 말더듬이에 왜소한 체구의
범인이 금각의 아름다움을 이기지 못하고 방화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 범인은 조현병에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지만 과연 그것이 금각의 아름다움을 시기해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숭례문 방화사건처럼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가 더 중요한 목적이 아니었나싶다.
범인은 21세의 승려로 할복 자살을 시도한 상태로 발견되었으나
붙잡혔고 결국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인지 메이지시대 해체수리 보고서가 남아 있어 이후 1955년 금각을 복원 완공하는데,
복원 기준을 창건 당시로 하여 건물 구조의 차이가 생겼다고 하며, 당시에는 금이 많이 떨어져있었고,
3층에만 금이 있었는데 복원은 2,3층 전체를 도금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역시 화재 전 금각의 모습이다.
내부에는 역시 국보로 지정된 요시미츠의 목상과 가마쿠라시대의 대불사 운케이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관음보살상, 기타 석가여래, 사천왕 등 목상 10점이 있었으나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사진은 복원한 목상들이 1층에 보관된 모습이다.
기념사진 찍는 중
복원된 금각은 지나치게 화려해서 주위와 이질감을 준다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개인적으로도 사람이 너무 많은데다 거의 금각만 덜렁 있어 그다지 정감이 가지 않는다.
어쨌든 눈이 온 후의 금각만큼은 정말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다.
패전 후의 일본인들에게 금각의 소실은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물론 그 충격의 깊이는 내가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방장의 모습
방장 앞의 처진 소나무
요시미츠가 아끼던 소나무라는 이야기가 있다.
가까이서 보는 금각의 모습
처진 소나무
비가 와서 그 금빛이 조금 죽은 듯하다.
조그맣게 만들어 놓은 폭포
작은 연못
금각사 동선은 능선을 따라 돌아가면서 멀리 금각을 조망할 수 있게 해놨다.
여기도 포토존
석가정(夕佳亭)이라는 다실
전국시대 건물인데 메이지시대 소실된 것을 재건하였다고 한다.
앞에 요시미츠가 사용했다는 손 씻는 수조가 있는데 그건 못 챙겨봤나 보다.
금각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금각사
안에는 구카이가 만들었다는 부동명왕상(중요문화재)가 보관되어 있으며
건물 자체는 전국시대 다이묘인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의 집 건물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금각사 기행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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