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9차

9번째 간사이원정기 곁다리 - 7일 교토4 (헤이안신궁平安神宮)

同黎 2016. 3. 3. 01:37



이제 헤이안신궁으로 간다.

1895년 헤이안천도 1100주년을 기념하여 내국권업박람회를 열기 위해 헤이안천도 당시의

황궁(다이다이리, 大内裏)을 5/8로 축소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래 다이다이리가

위치했던 지역은 이미 도심이 되어 토지매입에 실패하고 당시로써는 교토 외곽이었던 지금의 자리

(지금이야 당연히 최고 번화가 앞이지만)에 세웠다고 한다. 정확히 말해 재현된 부분은 헤이안쿄의

다이다이리 중 외궁 부분인 조당원(팔성원)의 부분이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의 근정문~근정전

구역에다가 광화문 앞의 육조 부분을 재현한 것이고 생활공간인 내전 부분은 복원하지 않았다.

박람회가 끝난 후 헤이안으로 천도 한 간무천황을 제신으로 하는 신궁이 되었고, 이후 교토를

수도로 한 마지막 천황이라고 할 수 있는 고메이천황(메이지천황의 아버지)를 추가로 모셨다.

황가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신궁이라고 부른다.



정문인 응천문(応天門)이다. 정전인 대극전의 정문이다.


원래는 응천문 좌우에도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복원이 되지 않았다.

건물 기와는 모두 녹유기와이다.


들어가면 넓은 모래마당에 조당원을 복원한 건물이 이어진다.


정면인 대극전


대극전을 중심으로 좌우의 회랑이 2층의 창룡루와 백호루로 연결된다.

대극전과 동서회랑, 창룡루와 백호루, 응천문의 6동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대극전은 외배전(外拜殿)의 역할을 하면 이 뒤에 있는 내배전과 신체가 모셔진 본전은 1976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당시 일본공산당의 청년들이 방화하여 9동을 태워먹었다고 한다.


동서의 신락전과 


객전

나머지 건물들의 거의 다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독특한 모습의 창룡루

이 밖의 몇 개 건물이 생략되어 복원되었다.


응천문


500엔을 내고 명승으로 지정된 신원으로 들어간다.



이 신원은 메이지시대의 대표적인 작정가인 7대 오가와 지쿠에가

만들었다고 하며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등나무와 같은 연못


연못 위의 작은 섬


전체적으로 연못을 따라 한 바퀴 돌도록 만들어져있다.


창포를 키우는 백호지



작은 오솔길 옆으로 연못들을 이어주는 물길이 이어져있다.



넓은 연못

가장 중심이 되는 창룡지라고 한다.


창룡지 가운데 있는 징검다리. 와룡교라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산조대교와 고죠대교의 교각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작은 석탑


신사


멀리서 바라본 와룡교


연못 뒤에 있는 정자

보기 좋다.


저 멀리 등나무 사이로


정원의 백미인 태평각이 보인다.


등나무가 많아 여름에 오면 등나무꽃이 향기로울 것 같다.

등나무는 후지와라씨의 상징이라 많이 심어졌다.


다리 위에 건물을 씌운 태평각은 교토고쇼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언제 건물인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멀리 보이는 영빈관

상미관이라고 하며 역시 교토고쇼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한쪽에는 결혼식을 치루는 회관도 있다.


상미관 앞에서 기념샷


아름다운 태평관



나무 하나하나가 모두 계산하여 심은 것이기 때문에 아주 아름답다.

교토에서 헤이안신궁, 도쿄에는 메이지신궁이라니 얼마나 정성을 들였겠는가?


다시 대극전 앞으로 나왔다.


마지막 기념사진


1928년 지은 붉은색 대도리이

헤이안신궁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오래되지 않았어도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무지막지한 크기 때문에 교토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