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9차

9번째 간사이원정기 곁다리 - 8일 교토 후시미2 (테라다야寺田屋, 겟케이칸오쿠라기념관月桂冠大倉記念館)

同黎 2016. 4. 7. 23:01



후시미이나리대사를 나와 쥬쇼지마에서 내려 후시미에 있는 겟케이칸(월계관)의 기념관으로 가는 길


후시미의 운하가 보인다.

교토와 오사카를 이어주는 운하로 사용되면서 후시미는 근세에 매우 상업적으로 번성했다.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도 많던 곳이다.


주쇼지마역에서 내려 운하를 따라 조금 걷다보면 테라다야 사건의 현장인 테라다야(寺田屋)가 나온다.


테라다야의 마당 풍경


테라다야는 후시미 운하 근처에 있던 여관으로 당시 교토 사쓰마 반소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사쓰마번의 무사들이 많이 묵었다고 한다.

테라다야 사건이라고 하면 크게 2가지 사건을 가리킨다. 첫 번째는 사쓰마번 양이지사

숙청사건으로 1862년 사쓰마번의 주류였던 공무합체파가 존왕양이파를 제압한 사건이다.

공무합체파란 막부를 없애지 않고, 황실과 막부가 결혼을 통해 협력해 공동으로 국가를

운영하자는 일종의 절충안이었고, 존왕양이파는 막부를 완전히 없애자는 급진파였다. 

하여튼 이 사건으로 인해 사쓰마번은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가 있기 전까지

공무합체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테라다야 사건이라고 하면 흔히 사카모토 료마 피습사건이 더 유명하다.

사카모토 료마는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동맹을 성사시키고 난 직후 이 테라다야에 묵고 있었다.

그런데 막부 직할의 교토 후시미 봉행소에서 사카모토 료마를 납치 살해하려 한 것이다.

후시미 봉행소의 군사가 여관을 포위하자 마침 목욕을 하고 있던 료마의 부인 나라사키 료가 이 일을

알아채고 벌거벗은 채로 2층으로 올라가 사실을 알렸고 료마는 친구 다카스기 신사쿠에게 받은 권총을

발사하며 저항하다 부상을 입었지만 결국 빠져나와 사쓰마번주의 저택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한쪽엔 황족이 쓴 은사기념비가 있고


사카모토 료마 추모비가 누워 있다.

왜 누워있는지는 모르겠다.


료마의 상 옆에서 기념사진


내부에는 테라다야 사건과 사카모토 료마를 미롯한 양이지사의 자료로 가득하다.


마치 총탄이나 칼날의 흔적이 있는 것처럼 장식해 놓아 사건 당시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건물은 적어도 막부와의 전쟁에서 소실된 것을 다시 재건한 것이 확실하다고 보인다.

심지어 위치도 옮겨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사카모토 료마가 묵었다는 방에는 그의 초상이 걸려있다.

역시 유신 시기의 역사는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다. 하긴 승리의 역사니



좁은 복도


료마의 초상


그의 공을 기리는 여러 글씨들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1층의 모습

가운데 화로가 보인다.


뭐 진짜 건물은 아니라지만 NHK에서 한 드라마 료마전이나,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읽으면 당시의 분위기가 언뜻 느껴진다.

최근 읽은 <도련님의 시대>, <왕도의 개>도 좋은 책인 것 같다.


이제 다시 운하를 따라 걷는다.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신사 앞

매화가 피었다.


운하는 오랫동안 뻘로 먹혔다가 최근 그나마 복원되었지만 물이 적은 것 같다.


일본에서 꽤나 대중적이고 유명한 겟케이칸(월계관)의

오래된 술공장을 기념관으로 만든 겟케이칸오쿠라기념관

사실 여긴 뭘 보러 온다기보다는 주로 술을 시음하고 또 사기 위해 오는 곳이니...


입구의 대기장소



기념품으로 받은 술을 들고 기념사진 찍는 김동영


한쪽에는 월계관의 재료가 된다는 후시미의 생수가 흘러나온다.

후시미는 명수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실제 기념관 바로 옆에 나오는 약수를 받아가는 주민들이 많다.



박물관 내부

뭐 그다지 볼 건 없다.


후시미를 나선다. 후시미 특유의 길게 늘어선 양조장 거리는 늘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