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6일 - 카코가와1 (카쿠린지鶴林寺1)

同黎 2016. 7. 11. 23:31



히메지를 떠나 마지막(인 줄 알았던) 카쿠린지로 간다.


카코가와역

고베와 히메지 사이의 인구 26만 정도의 나름 제법 큰 도시이지만 일부러 관광객이 올 리는 별로 없는 곳


관광캐릭터인 것 같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카코가와 역 주변도


역 앞에서 카코가와시 커뮤니티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加古川市ゾーンバス(카고가와시 존 버스) 벳부루트(別府ルート)가

1시간에 1대씩 오후에는 매 28분에 출발한다.

시간표는 링크(http://mb.jorudan.co.jp/os/bus/2819/line/index.html) 참조

찾기가 좀 어렵다.


버스에서 내렸다.

사찰 문 앞에 내려준다. 요금은 200엔. 거리는 8분 정도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

1시간에 1대다.


카쿠린지 입구


앞 쪽은 공원으로 되어 있다.


공원 표석

아마 사찰 부지 일부를 헌납한 듯하다.


표석이 보인다.


쇼토쿠태자가 만든 사찰이라는 표석


효고현 지정문화재인 인왕문


카쿠린지(학림사, 鶴林寺)는 천태종 사찰로 6세기 쇼토쿠태자가 설립했다는 일곱 사찰 중 하나이다.

쇼토쿠태자가 고구려의 승려 혜변(恵便)을 시켜 지었다고 한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현재 태자당은

헤이안시대이고 전해오는 불상 중에 아스카시대의 것이 있어 아스카시대쯤 건립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히메지의 엔교지와 더불어 효고지방의 중요한 사찰이었고 전국시대에 엔교지가 불타면서 히메지번의 쿠로다씨는 이 절을 보리사로 삼기도 했고, 에도시대에는 상인들의 후원을 받아 지속적으로 번창했다.

그래서 유물도 많아 스스로 서쪽의 호류지라고 하기도 한다고 


인왕문 전경


성덕태자 어영적이라는 표석


입장료는 인왕문에서 받는다.


카쿠린지에 대한 설명문


배관료는 500엔, 보물관과 공동 입장료는 800엔이다.


이승형은 이런 일본 사찰이 처음인지 사진을 많이 찍는다.


인왕문은 2층 누각문으로 에도시대의 건물인데 에도 말기에 크게 수리되어서 건축적 가치는 조금 낮다.


인왕상 사진 찍는 중


인왕문 안내판


인왕상

주변에 인왕에게 공양한 짚신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에도시대 작품이라 형식화가 진행되었다.


반대편의 인왕상


역시 비슷


입장하는데 아주머니들이 매우 반갑게 맞아준다.

한국인 도둑들이 여기 중요문화재인 쇼토쿠태자회천도와

고려불화를 훔쳐가기도 했는데 의외로 반감이 없으시다.

꽤 오래된 일이라 그런가? 드라마에서 들은 한국말로 인사도 해주신다.

 

멀리 본당이 보인다.


단정한 건물이다.


나무를 지나면


국보로 지정된 금당이 나온다.


일본풍인 화양과 중국에서 온 선종양의 절충식의 대표적인 건물이라는데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무로마치시대 초기, 우리로 치면 조선 건국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니 무척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부에는 본존 약사여래상과 좌우협시 및 이천상이 모셔져 있는데 모두 비불이고 중요문화재이다.


본당 설명문


본당 앞 좌우에는 태자당과 상행당이 있다.

본래 천태종 사찰의 이상적인 가람배치는 본당 앞에 법화당과 상행당이 있는 것인데,

여기서는 태자당을 법화당으로 삼고 옆에 상행당을 지었다. 두 건축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지붕이나 크기 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한다.


본당에서 바라보는 태자당


본당 현판


내부의 모습


사진은 못 찍었지만 일본에서는 불상을 모신 감실 겸 닫집을

궁전이라고 하는데 이 궁전도 함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안은 사진을 못 찍는다.


그래도 몰래 사진기를 들이밀어 찍어 보면


궁전의 모습은 대충 보인다.


다섯 칸으로 된 감실이 있다.


아예 비공개는 아닌가 보다.

그나저나 여기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상당히 좋다.


내부 궁전의 모습

닫집과 감실이 혼합된 모습의 구조에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불상은 모두 중요문화재로 헤이안시대의 작품이다.


약사여래상


월광보살


일광보살


지국천


다문천


본당에서 바라본 삼층탑


본당 정면에서 바라본 밖의 모


등롱들이 정갈하게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멀리 보이는 삼층탑의 모습


삼층탑과 상행당


본당 앞에는 아마도 14세기 이상으로는 시대가 올라가지 않을 것 같은 석탑이 보인다.


1층 탑신은 석등으로 쓸 수 있게 해놓았다.

상당히 특이하다.


이제 태자당으로 간다.


이게 측면이다.

측면에 3칸이 있고 앞으로 1칸을 더 내어 달은 모습이다, 앞으로 내어 달은 1칸은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다.


지붕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노송나무 껍질로 지붕을 달았다.


태자당 설명


12세기 초 헤이안시대 후기의 건물이다. 단 앞으로 튀어나온 1칸은 가마쿠라시대에 증축한 것이라고 한다.

본래 법화당이었으나 후에 성덕태자 신앙이 강조되면서 태자당이 된 것 같다.

안에는 석가여래가 모셔져 있었다.


국보 태자당 현판


날씨 좋은 때의 태자당 모습


태자당에서 바라본 삼층탑과


한쪽의 보협인탑

저것도 남북조시대의 것으로 효고현 지정문화재이다.


태자당 내부


원래 있던 석가여래상 등은 보물관으로 옮기고 현재는 성덕태자를 모시고 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


보협인탑 옆에 피뢰침 같은 게 서 있다.


태자당을 한 바퀴 돌고 있다.


옆으로 종루도 보인다.


관음당


저기 있던 아스카시대 비불도 보물관에 가 있다.


태자당에서 보는 본당

전통적인 헤이안시대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지붕의 모습 등에서는 중국의 영향이 보인다.


태자당 안에 뭔가 보이나 쳐다보는 중


계속 마루 위에서 사진 찍는 심희곤

보협인탑과 삼층탑


종루

중요문화재다


이래뵈도 15세기 초 무로마치시대의 건물이다.


사찰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건축물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시대가 올라가는 것은 흔치 않다.


옆에서 본 모습

한국과는 달리 1층에서 2층에 매달린 종을 치는 형식이다.


종루의 설명문


종루 뒤편에서 뭔가 하는 이행묵


특히 저기에 있는 범종은 고려의 것이라고 한다.


명백한 고려종이다


용두과 음통



어쨌든 이제 종루를 지난다.


태자당 반대편의 상행당


상행당 안내문


법화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고 본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법화당과 상행당이다.

중요문화재로 지정


상행당 정면

수행의 장소인데 법화당이 태자당이 되면서 1칸의 예칸을 달고 지붕도 노송나무 껍질로 바꿔

격을 높인 데 비해 이 곳은 건축 초기 모습을 비교적 그대로 간직한 듯하다.


상행당 정면

쇼와시대 이 건물을 해체 수리했는데 건물 아래에서 두개골만 30개 정도가 나와서 다들 식겁했단다.

이 근처에서 히데요시가 전투를 한 적이 있는데 아마 그 때의 흔적이 아닌가 추정한단다.


상행당 측면


내부 사진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단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문화재가 정말 많은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