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택시를 타고 세이료지(청량사, 清凉寺) 도착
경장이 보인다.
경내 안내도
3번째 방문이다.
본존 석가여래상은 비불로 1달에 1일만 여는데 신기하게 오늘까지 올 때마다 3번 다 봤다.
그리고 영보관은 처음이다.
동문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석불
한쪽에는 다보탑을
반대편엔 미륵불을 새긴 독특한 예이다.
미륵다보석불이라는 안내판
경장 내부도 공개하는 몇 안 되는 경우지만
세이료지의 상징인 거대한 인왕문
옆에는 진수사인 아타고신사
멀리 거대한 석가당이 보인다.
다보탑
다른 대부분의 건물과 마찬가지로 에도시대 중~후기의 건물이다.
인왕문 역시
19세기의 아미타당
교토부문화재로 18세기 초에 지어진 거대한 본당 석가당
세이료지의 역사는 다소 복잡하다. 본래 아미타삼존을 본존으로 삼은 세이카지(서하사)라는 절로 시작했으며 화엄종 사찰이었다. 사가천황의 황자로 신적강하하여 좌대신까지 오른 미나모토노 토오루의 별장을 그의 사후 사찰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이게 9세기로 헤이안시대 극초기이다. 참고로 미나모토노 토오루는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 후보 중 하나이다.
그러던 중 10세기에 도다이지 승려인 초엔이 중국 송나라로 건너가 오대산 청량사를 순례하였고 대주의 개원사에서 현재 본존인 석가여래상을 조성하고 이 불상을 우전왕이 만든 상이라고 하여 귀국 후 교토 아타고산 아래에 똑같은 청량사라는 절을 지어 안치했다. 이는 천태종 본산인 히에이잔에서 교토 중간으로 오는 길목에 큰 절을 지어 엔랴쿠지에 대항하려 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엔랴쿠지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절은 완성되지 못했고 그의 사후 제자가 세이카지의 경내에 석가당을 짓이 석가여래상을 안치했는데 이 것을 계기로 세이료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13세기에는 융통염불종과 강한 관계를 맞게 되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융통염불종이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오닌의 난으로 가람이 소실되면서 재건기에 정토종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세이료지에서는 여전히 융통염불의 의식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석가신앙이 크게 유행하면서 사가석가당이라고 불려지게 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 전투에 나가기 전 참배하기도 하였다.
너무 강행군이라 잠시 찻집에서 차와 젠자이를 먹으며 휴식
인왕문 풍경
진짜 크다
석가당 안으로 진입
또 봤다!
세이료지 석가여래상은 북송시대의 것이다. 그러나 오닌의 난 이후 재건을 거치면서 진짜 인도 우전왕의 상으로 믿어지게 되었다. 우전왕상은 불상을 만들며 만들어진 위경 조상경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인도 우전왕이 부처님을 뵙고 싶지만 병에 걸려 가지 못하자 부처님을 모방한 상을 만들어 공양했고, 이에 부처님이 나타나 불상 조성의 공덕을 설법했다는 것이다.
세이료지 석가상에 대한 신앙은 대단해서, 밤이면 살아서 걸어다닌다라고 믿고 있다. 또 인도, 중국을 거쳐 일본에 왔다 해서 삼국전래의 상이라고도 불린다. 1950년대 수리 당시 안에서 복장물이 발견되었는데 비단으로 만든 오장육부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이료지식 석가상은 일본 전국에 유행해 현재 100점의 유물이 확인된다.
경내는 무료지만 본당 내부와 방장은 400엔, 영보관까지는 700엔을 내야 한다.
본당 뒤편에는 이렇게 회랑이 있어 방장으로 연결된다.
회랑 밖의 풍경
우물
ㄱ자로 굽어있다.
한쪽의 석불
呂자 모양의 연못이 있고 한쪽에는 섬이
반대편엔 변재당이 있다.
변재천을 모신 건물치고는 꽤 규모가 크다.
연못 풍경
섬과 함께 보이는 풍경
방장 가는 길
한쪽의 칙사문
좀 많이 소박하다.
석가당 모습
방장에는 뭐 별 거는 없다.
다시 밖으로
잠시 아미타당에 들렸다가
드디어 영보관에 간다.
일 년에 2번, 춘추에만 개방
영보관 전경
입장권 확인 중
들어가자마자 압도적인 아미타삼존불
본래 세이카지 시절의 본존불로 9세기의 작품이다.
젊고 건강한 청년의 분위기
국보로 지정된 이유를 알겠다.
가운데 본존
협시보살을 잘 보면 흉배근과 복근이 잘 조각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불상에서 볼 수 없는 박력이 있다.
보면 볼수록 감탄
본존은 다소 형식적으로, 협시보살은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분위기를 조화시켰다.
협시보살
반대편에 있는 문수보살기사상과 제석천(보현보살)기상상
문수보살상은 헤이안시대의 것으로 문수보살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그러나 보현보살은 형식상 제석천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대도 약간 뒷 시기로 보인다.
거위를 타고 있는 제석천상을 보현보살상으로 재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각각 중요문화재로 지정
보현보살(제석천)의 보관
무로마치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기부한 휘장
에도막부의 5대 쇼군인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딸이자
기슈번주 도쿠가와 츠나노리의 부인인 츠루히메가 기부한 상자
함의 포장
지장보살상
중요문화재로 가마쿠라시대
불사리탑
목조소탑이다
금동탄생불
사천왕상
중요문화재
다문천
지국천
광목천
증장천
헤이안시대 후기
중요문화재인 비사문천좌상
헤이안시대 후기
비사문천상으로는 흔치 않은 좌상이다.
무로마치시대에 만들어진 석가여래상
비슷하게는 만들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양식화가 눈에 보인다.
여의륜관음
도발비사문천
시기는 적지 못했다.
십대제자상
중요문화재로 가마쿠라시대의 것
오늘 중요한 십대제자상을 두 세트나 봤다.
2층에는 국보인 북송대의 십육나한도 모사품이 걸려있다.
진품은 각각 8폭씩 도쿄와 교토국립박물관에서 보관 중
진품의 모습
한쪽에는 석가여래상 복장유물을 전시
진품이다
안에서 발견된 염주
영산회상도
문수보상도
모두 북송시대 판화이다.
확대
비단으로 만든 오장육부
다른 복장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
각종 직물들
경전
칠화 병풍
사진이 매우 조악하게 나왔으나 실제 보면 아름답다.
이렇게 영보관 관람을 마쳤다.
석가당 서쪽엔 오사카성 발굴 당시 발견했다는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두개골 무덤이 있으나 이번엔 바빠 찾지 못했다.
다시 동문으로 나가 텐류지로 향한다.
아타고신사
다보탑의 모습
귀한 유물을 본 답사를 마치고 마지막 목적지인 텐류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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