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6일 카이즈카1 (코온지孝恩寺)

同黎 2017. 8. 10. 04:34



이제 이즈미사노를 떠나


카이즈카역에 도착


여기서 먼저 코온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미즈마철도로 환승해야 한다.


환승 중


미즈마철도는 카이즈카시를 관통하여 미즈마칸논까지 가는 사철이다.

난카이철도와 연계는 깊지만 엄연히 다른 회사라 간사이 쓰루 패스는 적용이 안 된다.


시간표

1시간에 3대 꼴


거의 버스 시간표


미즈마철도 안내판


요금표

미즈마칸논까지는 편도 290엔이다.

왕복 580엔 소요


기차 도착


출근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내부는 한가하다.


2량짜리 철도

이런 작은 도시만을 대상으로 하는 철도라니...

2006년에 결국 한 번 부도가 났었다고


정말 오래된 듯

내부의 선풍기

난카이철도의 오래된 차량을 인수해 쓴다고 한다.


미즈마칸논역 도착


여기서 버스를 타야 하지만 보다시피 버스 시간표가...

다행히 미즈마칸논이 꽤 유명한 순례지라 택시는 있다.


미즈마칸논역


이래봬도 1920년대 건설된 역으로 등록유형문화재이다.


미즈마데라의 탑을 형상화한 입구


주변안내도


우리의 목적은 미즈마데라와 코온지


역 주변 풍경

조용하다


버스 시간표

이미 버스타기는 글렀기 때문에 택시를 탄다.

그래봤자 기본요금이긴 하다.


금새 도착

골목 끝이다


조금 돌아가면


약간 계단으로 된 코온지가 보인다.


정무당이라는 표석

본래 국보로 지정된 관음당은 칸논지(관음사)라는 사찰 소속으로 네고로지의 말사 중 하나였다. 코온지는 정토종 사찰로 별개의 사찰에 속한다. 칸논지는 나라시대 행기(교키)가 지었다고 하는 사찰로 나라에서 오사카 남부에 이르는 가도의 중간에 있는 교키 창건 사찰 중 하나이다. 전설에 따르면 교키는 이곳에 교량을 놓고 관개사업을 하여 민중의 지지를 얻었으며 그 지지를 바탕으로 도다이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이 근처의 지명은 코즈미(木積)라고 하여 도다이지 건립을 위한 목재를 쌓아 놓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번성하던 사찰은 무로마치시대 야마나씨와 오우치씨의 전쟁으로 태반이 날라갔고 그나마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네고로지 공략 때 관음당을 제외하고는 전부 불탔다. 이후 관음사는 사라지고 관음당만이 남아 있다가 메이지시대 최종 폐지되었고, 메이지유신 이후 건물만 남았던 것으로 정토종의 코온지와 병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여기 계신 보살님의 설명으로는 히데요시의 목표는 신의진언종인 네고로지 세력만인데 정토종인 우리는 억울하게 불탔다고 하는데... 아마 역사적 이야기는 틀린 것 같다.


국보인 관음당은 못을 안 썼다고 하여 정무당이라고 불린다. 가마쿠라시대의 건물로

화양과 선종양, 대불양까지 섞인 건물로 건축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일찍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입장


경내는 무료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국보인 관음당이 보인다.


가로 다섯 칸, 세로 다섯 칸이며 내진과 외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선종양과 화양을 섞었고, 내부 구조는 대불양을 띄고 있다고 한다.


뭐 그래봤자 어렵다.


손 씻는 석조


작은 경장


여기서 잠깐 이야기가 길어졌다.

사전에 보물관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워낙 정보가 없어서 예약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혹시 볼 수 없냐고 하자 혼자 지키던 여자분이 한참 곤란해한다.

안에는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불상만 19건 20점이다.

할 수 없이 도록이라도 구입하려고 하니 무려 5000엔

도록이 얇은데 비하여 너무 비싸서 놀라니 도록이라기보다는 현재 건물 수리를 위한 비용을

모금 중인데 그것이 최소 5000엔이고 도록은 그에 대한 보답품이라고 한다. 

자료가 워낙 없는 곳이라 선뜻 돈을 내자 놀라면서 꼭 살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니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온 것이라고. 뭔가 결심한 듯 잠시 고민하더니 따라오란다. 보물관을 보여준다고

이번 답사는 운이 좋다.


보물관으로 안내한다.

관음당의 뒷편


평소 보물관은 5월에만 그것도 오전에만 열고 (아마 한달 내내는 아닐 것이다.)

한 달 전에 예약을 줘야 한단다.


배관료는 따로 500엔


총 19건의 중요문화재

대부분 관음당에서 내려오는 헤이안시대 유물이다.

문수보살상


상호 측면


석가여래상

헤이안시대


상호 정면


약사여래상


전형적인 헤이안시대의 상호


미륵보살(?) 미륵불좌상


전법륜인을 하고 있는 정면


관음보살입상


천의 부분


역시 헤이안시대의 관음보살 입상


정면 상호


십일면관음입상


정면 상호


지장보살상


정면 상호


보현보살입상

다른 것은 다 헤이안시대 것인데 이것만은 나라시대라고 사찰 측에서 주장


측면 상호

헤이안시대 같은데...


난다용왕상


정면

아마 관음상의 부속상이었던 것 같다.


측면


후면

전부 다듬지는 않은 흔적이 보인다.


발란다용왕상


정면


제석천상



상호 정면


상반신


관음당 협시로 모시던 십일면관음상

에도시대 개금된 듯하다.


하반신


또 다른 십일면관음상

이것은 세지보살로 전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조사결과 십일면관음이었고, 또 앞의 것과는 본래 한 쌍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는 협시 중 하나로 보관 중


아미타여래상


약간 투박한 듯한 모습이 아름답다.


오사카부문화재인 지국천왕상


다른 짝인 다문천왕상은 중요문화재


변재천상

머리 위에 뱀 모양의 신상이 있는데, 본래 일본 토착신인 우가신상이다.

변재천과 우가신은 동일시되는데, 그 수적형태가 잘 남아있는 중요한 상이다.


허공장보살상

대좌까지 잘 남아있다.


허공장보살 사방


정토종으로 바뀐 관음당 본존인 아미타여래상


이곳만의 특이한 유물

판회 천부형입상


뒷면에는 묵서가 남아있다.


보물관 뒤편의 공양탑들


이제 관음당 내부로 들어간다.


건물 밖의 창문


내부의 모습

현재 대부분의 유물은 중요문화재이고 별 건 없다.


서로 아리가또를 연발하며 헤어진다.

간사이 쪽에서 봉변당한 사연이 종종 들리는데 다행히 나는 시골만 다니고

또 한국사람들 없는 곳만 다녀서 그런지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예의와 돈을 갖추면 일본인들이 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곳은 찾아와 줬다고 고마워하지.

뭐 아예 또라이들은 어쩔 수 없고


이제 사찰을 나선다.


코온지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미즈마데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