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1차 東京

東京紀行 - 6일 가마쿠라 쓰루가오카하치만구鶴岡八幡宮

同黎 2018. 4. 27. 07:29



버스를 타고 츠루가오카하치만구에 도착


가마쿠라역에서부터 신사의 산노도리이까지 이어지는 이 석단 도로는

호조 마사코가 안산을 빌러 만들었다고 한다.


1단을 높여 만든 이 길은 단가즈라라고 한다.

과거에는 교토의 주작대로와 같은 중심도로 역할을 했다고


산노도리이

이치노도리이는 저 멀리 있고 여기가 경내 입구이다.


거대한 도리이


경내로 들어서면 다리와 함께 양 옆의 연못이 보인다.


지금의 다리는 에도시대의 것이고 원래는 목교로 붉은 색이라서 아카하시라고 했다 한다.


정식 명칭은 태고교

저 멀리 언덕 위의 신사가 보인다.


다리에서 바라 본 도리이


쓰루가오카하치만구(鶴岡八幡宮, 츠루가오카하치만구, 학강팔번궁)는 하치만신을 모시는 무사의 신사로 본류인 우사하치만구, 교토의 이와시미즈하치만구와 함께 3대 하치만구로 불린다. 본래 가마쿠라막부의 조상인 가와치 미나모토씨의 2대 동량 미나모토노 요리요시가 교토의 이와시미즈하치만구를 권청해서 조그마한 신사를 가마쿠라에 지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미나모토씨에서는 하치만신은 조상신으로 모셨다.

그 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헤이케 타도를 외치며 가마쿠라에 입성해 막부를 세우고 가마쿠라라는 도시를 재설계하면서 신사를 크게 세웠고 신사를 중심으로 도시를 짰다. 가마쿠라 막부 멸망 후 일시 쇠퇴했으나 이 신사는 모든 무사의 신사로 여겨졌기 때문에 금방 재건되었고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참배하였다. 에도시대에는 미나모토씨의 후예를 자처한 도쿠가와씨가 대규모로 증축했는데 이 때는 신사와 절이 일치된 상태라서 종루와 관음당·호마당·인왕문·다보대탑 등이 즐비했고 도쇼쿠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근대 폐불훼석기에는 극심한 피해를 받아 대탑 등 불당 대부분이 파각되고 불상·불구·경전 등이 사라졌다. 일부가 인근 사찰이나 센소지, 박물관 등으로 이전했으나 남은 게 별로 없다. 게다가 남은 불당들 대부분도 화재로 소실되고 관동대지진으로 하배전(무전) 등도 파괴되어 남아있는 건축물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 대탑의 모습

이걸 부셔버렸다니...


구 삼문

이것은 인근의 코묘지라는 정토진종 사찰로 이축했다.

 

태고교


다리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연못은 겐페이지이케, 즉 원씨와 평씨의 연못이라고 한다.


신사 경내에 가마쿠라국보관이 있다.


먼저 연못부터 간다.


겐페이지이케는 다리를 중심으로 겐지이케와 헤이케이케로 나뉘어져 있다.

호조 마사코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꽤 크다.


여기에 비밀이 있는데, 겐지이케에는 섬을 3개 만들어

일본어로 낳을 산(産)자와 음을 맞추고 변재천을 모신 신사까지 세웠다.

반면 헤이지이케에는 섬을 4개 만들어 죽을 사(死)와 음을 맞추고 헤이지의 멸망을 바랬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헤이지는 망했으나 오히려 후계는 이어졌고, 겐지는 이겼으나 쇼군가의 혈통을 끊겨버렸다.


변재천사


주변에 겐지의 상징인 2줄이 들어간 백기를 그려 놓았다.

그래서 신사 이름도 기상변재천사이다.


신불분리로 훼철되었으나 신체였던 변재천상은 중문으로 지정되어

국보관에서 보관 중이고 신사는 80년대 재건했다.


신사 모습


근경



마사코석이라는 돌


호조 마사코가 참배했던 돌이라고


연못이 넓다


신사


여긴 꽂이 별로 없다.


다시 옆으로 돌아


도리이를 보고


반대쪽 헤이지이케로


여긴 연꽃이 피어있다.



한쪽에는 신사 건물이 들어서있다.


이제 본궁으로 갈 차례


직진한다


정면의 무전


테미즈야


대부분의 건물은 에도막부 11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나리와

12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요시가 기증한 19세기 건물이다.


무전(하배전)

중요문화재인 와카노미야(약궁, 하궁)은 공사 중이다.


공사 중인 약궁


중요문화재이다


무슨 행사가 있는지 방송장치를 설치했다.


원래 단청이 없던 건물이었는데 관동대지진으로 무너지고 다시 세운 후 단청을 화려하게 했다고 한다.


방송장치 없을 때의 모습


이제 대석단을 올라 본궁으로 간다.


고마이누


61개의 대석단


한 쪽에 쓰러진 은행나무는 사연이 있다.

가마쿠라막부의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죽자 그 밑에 있던 13인의 주요 고케닌이 대립하는데, 특히 요리토모의 처가인 호조씨와 2대 쇼군이자 요리토모의 차남인 요리이에의 처가 히키씨가 대립했다.

요리이에가 쇼군이 되지만 병약하다는 이유로 4남이자 호조씨의 지원을 받던 사네토모가 간사이 38국의 지토직을 받는다. 이에 반발한 히키씨가 반란을 일으키지만 호조씨가 이를 제압하고 호조 마사코는 제 손으로 자신의 아들인 요리이에를 유배시켰다가 암살한다.

3대 쇼군 사네토모는 정사를 싯켄인 호조씨에게 빼앗긴 채 지냈으며 조정으로부터 우대신의 직위를 하사받는다. 이 때 감사인사를 드리러 츠루카오카하치만구에 참배를 오는데 바로 이 은행나무 뒤에서 형 요리에이의 차남 구교가 달려들어 사네토모를 암살한다. 요리이에는 후손이 없었고 요리이에의 자식들은 줄줄이 반역으로 호조씨에 의해 죽임당했으며 나머지 자식도 요절했기 때문에 외계로도 자식이 없다. 

이후 고토바천황이 쇼군의 공석을 빌미로 조큐의 난을 일으켜 가마쿠라를 치려 하지만 호조 마사코가 집결시킨 무사들이 이를 막아내고 승군들도 막부 편을 들며 이는 실패한다. 이후 가마쿠라막부는 명목상의 쇼군을 천황가나 섭관가에서 골라서 올리고 실권은 호조씨의 싯켄이 차지하게 된다.


정정했던 은행나무는 2010년 태풍으로 쓰러지고 마는데

원래 자리에는 자손나무를 이식하고 원 그루터기는 옆으로 옮겨 심었다.


다행히 자손나무도 뿌리내리기에 성공했고

그루터기에도 새 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고


올라간다


팔번궁이라는 현판이 보이는 누문


조두체로 쓰인 현판


좌우 회랑은 중요문화재이다.

문은 아니다


좌우의


즈이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


배전, 폐전, 본전은 연결되어 있으며 19세기 쇼군가에서 지었다.

모두 중요문화재


사진을 못 찍게 하지만 본존 사진을 살짝 찍었다.


역시 중요문화재인 경내 말사


뒤에서 본 모습


폐전과 배전 모두 거의 닛코 급으로 조각이 화려하다.


뒤편에서 찍은 사진


회랑에는 역대 신여들이 늘어서있다.

신사 입장료가 없는 대신 회랑을 이용한 보물관은 400엔인가 300엔

근데 거의 복제품


국보인 신보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목상


편액


미나모토씨의 2대 동량인 미나모토노 요리요시의 좌상


안장


스미요시대명신상


아래를 내려다 본다.


저 멀리 도리이들이 보인다.


내려오는 길

원래 나무가 있었던 곳


이제 국보관 방향으로 간다.


공사 중인 약궁


안타깝군


신식전


여기가 원래 하치만구의 요배소라고 한다.

그러니까 미나모토노 요리요시가 처음 지은 신사의 요배소이다.

원궁은 매우 산 위에 있기 때문에 여기 요배소가 있는 것

 

거북바위와 학바위

물로 씻으면 무늬가 나온다고..


히라하타신사

즉 백기신사


미나모토씨의 상징인 백기를 의미한다.

제신은 1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3대 쇼군 사네토모



저기 가마쿠라국보관이 보인다.


이제 국보관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