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야산진언종 총본산 곤고부지로 간다.
곤고부지(金剛峯寺, 금강봉사)는 고야산진언종 뿐만 아니라 모든 진언종의 정신적 총본산으로 본래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하나의 사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야산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마치 엔랴쿠지가
히에이잔 전체를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 콘고부지의 성립은 진언종 교조인 홍법대사 구카이가 사가천황
에게 이곳을 하사받으면서 시작되었다. 홍법대사 구카이는 진언종 도량을 설립할 곳을 찾던 중 이곳의
토지신인 고야명신과 니우명신의 안내를 받아 고야산을 양도받았다고 전한다. 이것은 영산인 고야산에
불교가 결합하면서 생긴 전설로 보이며, 고야산의 분지가 팔엽의 연꽃이 핀 것 같은 지형라서
산 위의 만다라를 펼치는 모습으로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고야산을 하사받은 구카이는 제자들과 함께 사찰을 세웠으나 워낙 교통이 불편해 생전에는 완성되지
못했다. 9세기에는 천황의 사액을 받아 관사에 준하는 사격을 얻었으나 10세기에는 도지와의 불화도 있고
낙뢰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승려들이 산을 내려가기도 하였다. 이후 승려 조요(정은)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후원, 시라카와천황과 토바천황의 참배로 인하여 사령이 증가하고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12세기에는 고야산에서 세력이 급성장한 신의진언종 교조 카쿠반(각번)이 정토신앙과 밀교를 결합시키나
다른 승려들의 급습을 받아 하산해 네고로지를 열기도 했다. 이후 귀족이나 무사의 출가도 늘고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는 호조 마사코가 출가하면서 2000여 개의 건물이 늘어선 대단지가 되었다.
이렇게 히에이잔처럼 승병을 보유한 고야산은 오다 노부나가와 대립하게 되는데 결정적으로 노부나가를
배반한 아라키 무라시게가 고야산으로 도망치자 이를 내놓으라는 노부나가의 사신을 죽이면서 갈등이
커졌다. 이에 노부나가는 진언종 승려 수백을 죽이고 고야산 공격을 준비했으나 혼노지의 변으로 일단
화를 면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키슈 정벌을 하면서 다시 위기에 빠졌지만 고야산 승려 모쿠지키
오고의 중재로 사령 대다수를 헌납하고 무장을 해제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전국에 별원을 세워
후호조씨, 마츠다이라씨 등 많은 무사들이 귀의하고 후호조씨의 호조 우지나오의 은거지가 되기도 한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고야산에 곤고부지의 전신이 되는 청암사를 세워 어머니의 보리사로 삼았다.
이 청암사(세이간지)는 고야산 학승들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학려방이라 하여 고야산 학승, 우리로 치면
이판승의 총괄 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메이지유신 이후 통합된 종교법인이 필요해지면서 바로 옆에
존재하던 행인방, 즉 우리로 치면 사판승의 역할을 했던 승려들을 총괄하던 흥산사(코잔지)와
합쳐지면서 총본산 콘고부지가 되었다. 그러나 막말에 대화재가 일어나며 70여개의 건물이
불에 타게 되었고 이후 복구하여 19세기에 복구한 것이 현재 곤고부지이다.
들어가는 길
산문
와카야마현 지정문화재
거대한 건축이다
대주전과 오서원
현지정문화재
신앙공간은 단조가란이라고 부르는 곳에 위치하고 대부분 과거 세이간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현관
옆의 회화문
현지정문화재
경장
현지정문화재
종루
현지정문화재
회화문
종루 안내문
들어가며 납경을 받는다.
현관의 모습
금강봉사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대주전의 복도
내부의 모습
가장 큰 공간인 오히로마
역대 천황과 좌주들의 위패를 모셨다.
안내문
후스마에가 번쩍인다
17세기 작품들
화재에서 구한 것으로 카노 탄유의 것으로 전하는 것
매화의 칸
버드나무의 칸
히데요시의 조카이자 양자였던 관백 히데츠구가 할복한 곳이다.
후스마에만 화려하다
거대한 건축군
중간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밖은 새롭게 신축한 곳들이다.
별전으로 건너가는 길의 정원
거대한 크기의 돌을 놓은 고산수식 정원이다.
회랑을 걷다보면 별전이 나오고
신별전과 매점으로 갈리는 길이 나온다.
먼저 별전 내부
고야산 개창 당시 구카이를 안내했다는 두 마리의 개
당나라에서 유학하다 귀국하는 공해의 모습
명주의 항구이다
당의 장안문
보다 보니 역으로 찍었네
나니와에서 견당사를 따라가는 구카이
중간에 거대한 도코노마에는 공작그림이 그려져 있다.
신별전
이 곳에 가면 따뜻한 차와 다과를 주는데
배고플 땐 몇 바퀴 돌기도 한다. 보살님들이 살짝 눈감아주기도 한다.
내부
거대한 후스마에
크다
있다보면 스님이 나와 간단한 설법을 한다.
신별전 밖으로 나간다.
별전 밖의 거대한 정원은
와룡정이라고 하며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고산수식 정원이다.
바위로 누워있는 용을 구성
저 안쪽은 오전
다시 별전으로 돌아온다.
홍법대사상
모란도
사쿠라
바깥 풍경
연꽃과 붓꽃
단풍
멋지다
다시 대주전 방향으로 가는 길
사계의 중정이라는 정원
에도시대 만든 정원으로 고야산을 차경한 정원이다.
작은 연못도 보인다.
도비라에
대주전 상단의 칸
천황이나 좌주가 앉는 곳이다.
현재 옥좌 자리에는 뭔가 의식용 법구가 놓여있는 듯
안내문
도코노마
바깥 풍경
좌주가 타는 가마
오서원
와카야마현 지정문화재
황족 등이 왔을 때 머무는 곳이었다고 한다.
후스마에는 모두 옛날 것이라고
안내문
작은 불당도 있다.
화려한 후스마에
유아의 칸이라고 하는데
백작가인 소에지마가에서 모시던 지장보살을 모셨다고 한다.
후스마에는 카노가의 것
안내문
이어 구카이의 제자이자 곤고부지의 2대 좌주인 전등국사 신젠(진연)의 묘가 있다.
곤고부지의 문장
삼파문은 고야산의 진수사인 니우츠히메신사의 문장이고,
오삼동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이간지를 지을 때 하사한 문장이라고
현재는 두 개를 겹쳐 쓴다.
진연묘 앞
저 멀리 있는 어묘
현지정문화재
안내판
고야산을 사실상 완성한 인물이다.
작은 정원
나오는 길
부엌 옆에 있는 작은 불당
이로리의 칸
가운데 기둥에는 역시 명왕을 모시는 불단이 있다.
부엌과 마주보는 곳으로 이로리는 바닥을 파내고 재를 놓은 뒤
솥을 걸어놓는 일본 전통의 방한기구이자 생활공간이다.
애염명왕을 모시고 있다.
홍법대사가 직접 모신 것이라고
안내문
부엌인 대소의 모습
부뚜막은 벽돌로 고쳐놨다.
가운데 세 개의 솥
솥 하나에 쌀 2가마가 들어가는 큰 솥이라고 한다.
안내문
이렇게 곤고부지를 다 보았다.
이제 단조가란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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