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3차

관서구법순례기 - 10일 요시노2 (킨푸센지金峯山寺 장왕당蔵王堂·요시노조 궁궐 유적吉野朝宮跡)

同黎 2012. 11. 21. 03:56


니오몬에서 바라본 요시노산



요시노산 연표




드디어 킨푸센지(금봉산사, 金峯山寺) 장왕당(자오도, 蔵王堂)에 도착했다.

국보. 모모야마시대. 높이가 34미터에 이른다.





킨푸센지(금봉산사)는 수험종의 총본산이다. 본래 요시노는 일본 산악신앙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헤이안시대 석가여래가 상주하며 설법을 하는 곳으로 인식되게 되었고,

곧 일본 특유의 신불습합 사상에 따라 석가여래와 요시노의 산신이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가마쿠라시대 역행자(역소각)에 의하여 수험도(슈겐도)가 생겨나면서 석가여래가 명왕의

모습을 한 산신으로 현현하는 수험도 고유의 장왕권현이라는 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권현신앙은 히에이잔 아래 있는 히요시다이샤의 산왕신도와 결합하여 일본에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은 후 신격을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논쟁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택했던 명신(明神)호 대신 동조대권현이라는 신호가

채택된 것은 권현신앙이 그만큼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소 입장료는 어떤지 모르지만 이 때는 비불 특별공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입장료가 1천 엔이었다.


매표소





지붕은 다포계 양식이다.



킨푸센지(금봉산사)는 메이지유신 이후 신불분리령으로 권현이 신으로 분류됨에 따라 일시 폐사되고

신사로 바뀌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요시노산의 여러 사찰들이 이 때 훼철되었다.

이후 다시 절로 독립해 금봉산 수험종의 총본산이 되었다.


밖을 먼저 둘러본다.


저 넓은 터는 요시노로 피신한 남조의 궁궐터 중 일부로 보고 있다.





음 이건 뭐였지..




한 구석의 위덕천만궁 

나라현 지정문화재이다.


본전


제법 화려하다.


배전


관음당

요즘의 건물이다.



관음당 내부


애염당

역시 오래되지 않은 건물


애염당 내부


한쪽의 작은 신사


종루


드디어 입장한다

저 사진이 본존 금강장왕권현상(모모야마시대, 중요문화재)이다.


장왕당 정면



들어가면 부적 하나를 주고 금강장왕권현상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작은 방에 들어가 기도를 할 수도 있다.

감시가 너무 심해 불상은 찍지 못하고 도판으로 대신한다.

위 사진이 금강장왕권현 본존



장왕당의 장왕권현상은 모두 3구이다.

이 중 가운데 것이 석가여래의 화신이고, 왼쪽은 미륵보살, 오른쪽은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어진다.

 

인터넷에서 장왕당 내부 사진을 겨우 찾았다.

본래 결코 공개하지 않는 절대 비불이다가 2004년 요시노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조금씩 공개되어 2010년과 2012년에 공개된 불상이다.


권현상의 얼굴


아래에서 올려 본 장왕곤현상(자오곤겐)



내부에 있던 다른 장왕권현상, 가마쿠라시대, 중요문화재

신불분리로 폐사된 다른 절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역시 장왕권현상


자오도에 바쳐진 초대형 회마(에마) 

본존 뒤편에 놓여있다. 에도시대의 것으로 입항한 배와 물건을 하역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장왕권현에게 바쳐진 에마이다.


가마쿠라시대의 장왕권현상, 중요문화재


금동 장롱, 무로마치시대, 중요문화재


성덕태자상, 모모야마시대,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 석가여래상


30분 정도 자오도를 구경하고 나온다.





장왕당 앞의 청동등롱


측면


이제 보물관으로 간다. 



승방으로 쓰이던 곳을 개조한 듯 하다.

최근 건물이고 300엔인데, 100엔을 할인해주었다. 내용은 크게 볼 것이 없었다.



다시 보물관을 나선다. 이런 형식의 문을 고려문이라고 부른다.


이제 요시노로 피신한 남조의 궁궐터로 간다.


음 근데 입구부터 이상하다.

분명 요시노조 궁궐 유적이라는 표석이 있는데 바로 옆이 화장실이다.



음?


화장실을 지나면 팔각형의 건물이 하나 서 있고

거기에 요시노조의 궁궐터라는 표석과 금륜왕사터라는 표석이 서있다.


일본에도 남북조시대가 있다. 고다이고천황은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통해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키고 천황의 권력을 다시 쟁취하려고 하였다.

마침내 가마쿠라 막부를 멸하고 겐무의 신정이라고 불리는 천황의 친정이 시작되었지만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이에 반기를 들어 다시 막부를 세우려 한다. 고다이고 천황 측의 닛타 요시사다군이

다카우지에게 패하여 아시카가군이 교토에 입성하자 조정은 남쪽의 요시노로 수도를 옮기고

북쪽의 교토에는 무로마치 막부가 세운 고묘 천황이 세워져 천황이 2명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이것이 남북조시대이다. 이후에 결국 요시노도 함락당하고 북조가 승리하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현재 일본에서는 남조의 천황을 정통으로 인정하고 있다. 



당황스럽지만 이것이 남조 궁궐의 터(吉野朝宮跡)이다.

저 팔각형 건물은 남조묘법전이라는 건물인데 아무것도 없다.



허탈한 일행들


알고보니 남조의 궁궐은 여기서 장왕당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발굴조사를 할 수 없어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하산한다.

이제 걸어서 하산한다.






참 빨리 쉽게 올라온 길인데, 내려가려니 한참이 걸린다. 20분은 더 걸었던 것 같다.







잠깐 쉬는 중.

내려온 시간은 4시 정도인데 산이라 그런지 이미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켜졌다.


내려오는 길에 먹는 사쿠라맛과 밤맛 혼합 아이스크림


이제 다시 오사카로 돌아간다.


오사카에 도착



텐노지역


가는 길에 본 오사카유신회 포스터

오사카시장이자 신 우익으로 유명한 하시모토 도오루 시장이 가운데 있다.


이제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

숙소 아래의 오코노미야끼 집에서 잔을 기울이며 아쉬운 맘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