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POSCO 경영관을 구경한 학생들에게
경영대학에서 건축비 전액을 자체 모금해서 건립된 LG-POSCO 경영관이 개관된 오늘, 나도 여러분과 함께 구경을 했습니다. 세계 유명 경영대의 건물들을 한 달 동안 답사한 후 설계한 건물, 롯데 호텔처럼 지었다고 자랑하는 건물, 교수들이 발벗고 나서서 모금해서 지은 건물, 우리나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급 수준의 대학 건물을 둘러보면서 여러분들 못지 않게 나도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스타급 연사인 앨빈 토플러의 강연까지 개최하는 경영대의 재력은 그야말로 구경꾼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대리석과 고급 마감재로 장식한 복도를 걸으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꼈습니까? 이 정도로 최고급의 대학 건물이 우리 캠퍼스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만끽하는 데서 오는 자긍심이 여러분을 압도했습니까? 그런 자긍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이벤트이기는 하지만, 구경을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는 초라한 철학과 교수에게 일말의 서글픔과 분노가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이 부디 거대 자본의 마력에 도취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LG-POSCO 경영관이 천민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들었습니다. 더욱이 그런 상징적인 건물이 우리 대학에 있음으로써, 그동안 유지되었던 고대인의 숭고한 기상과 이념이 변질될까봐 걱정스러웠습니다.
대학에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이 들어섬으로써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문명의 혜택을 대학인들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첨단 과학 문명의 향유와 사치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소득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 예전에는 사치스러웠던 소비 행위도 별 것 아니게 됩니다. 그러나 LG-POSCO 경영관의 호사스런 인테리어는 우리 사회의 다수 기층 민중이 체감하는 경제 수준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어서 그저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설마 나의 이런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우리가 모은 돈을 우리가 쓰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항변할 경영대인들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 말은 한 벌에 수십 만원짜리 속옷을 입는 졸부들이 즐겨 쓰는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니까요.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벌어 학비를 충당하려다 성희롱까지 당하는 여학생들이 있는 마당에 굳이 복도에 대리석과 융단을 깔아야 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건축 기금을 아껴서 장학 기금으로 전환하면 공금 전용에 해당되어서 그랬을까요? 손바닥만한 연구실에서 책을 쌓아 놓을 곳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돈 못 버는 분야의 교수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부속실이 붙은 연구실을 소유한 경영대 교수들이 기업 경영의 윤리성을 얼마나 강조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경영대가 모금한 것처럼 다른 대학들도 모금해서 좋은 건물을 지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신 어느 경영대 교수님이 생각납니다. 나는 그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땅의 재벌이나 기업가들 중에 생색나지 않고 이득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 기부할 사람들이 몇이나 되느냐고. 나는 몇 해 전에 한국철학회 총무이사로 있으면서 회장님과 함께 국제학술대회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기업들에게 구걸을 하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너희에게 돈을 줌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태도를 취하면서 일전 한 푼 주지를 않았습니다. 대회가 개최되기 불과 두어 주전에 우리의 궁한 형편이 신문에 보도되자, 어느 벤처 기업이 최소한의 경비를 대줘서 간신히 대회를 치렀습니다. 경영대가 LG와 POSCO에서 200억원의 기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경영학이 그들의 이윤 확대와 관련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LG-POSCO 경영관을 구경한 학생 여러분, 그 건물로 인해 젊은이답지 않는 속물근성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싹트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고뇌하고 번민하던 동료 학생들 옆에서, 대기업에 취직이 보장된다는 느긋함을 만끽하고 희희낙낙했던 일부 경영학도들의 몰가치적이고 무비판적인 정신이 LG-POSCO 경영관의 준공과 함께 재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돈 버는 능력대로 살기 마련이라는 약육강식의 논리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인 이기심이 고대인의 가치관을 형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영대인들은 최고급 건물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답게 최고 수준의 윤리관과 역사 의식으로 무장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LG-POSCO 경영관을 구경하는 이들마다 이처럼 초호화판 건물이 들어 선 고려대에는 더 이상 기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철학과 하종오 교수
경영대학에서 건축비 전액을 자체 모금해서 건립된 LG-POSCO 경영관이 개관된 오늘, 나도 여러분과 함께 구경을 했습니다. 세계 유명 경영대의 건물들을 한 달 동안 답사한 후 설계한 건물, 롯데 호텔처럼 지었다고 자랑하는 건물, 교수들이 발벗고 나서서 모금해서 지은 건물, 우리나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급 수준의 대학 건물을 둘러보면서 여러분들 못지 않게 나도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스타급 연사인 앨빈 토플러의 강연까지 개최하는 경영대의 재력은 그야말로 구경꾼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대리석과 고급 마감재로 장식한 복도를 걸으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꼈습니까? 이 정도로 최고급의 대학 건물이 우리 캠퍼스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만끽하는 데서 오는 자긍심이 여러분을 압도했습니까? 그런 자긍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이벤트이기는 하지만, 구경을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는 초라한 철학과 교수에게 일말의 서글픔과 분노가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이 부디 거대 자본의 마력에 도취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LG-POSCO 경영관이 천민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들었습니다. 더욱이 그런 상징적인 건물이 우리 대학에 있음으로써, 그동안 유지되었던 고대인의 숭고한 기상과 이념이 변질될까봐 걱정스러웠습니다.
대학에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이 들어섬으로써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문명의 혜택을 대학인들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첨단 과학 문명의 향유와 사치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소득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 예전에는 사치스러웠던 소비 행위도 별 것 아니게 됩니다. 그러나 LG-POSCO 경영관의 호사스런 인테리어는 우리 사회의 다수 기층 민중이 체감하는 경제 수준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어서 그저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설마 나의 이런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우리가 모은 돈을 우리가 쓰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항변할 경영대인들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 말은 한 벌에 수십 만원짜리 속옷을 입는 졸부들이 즐겨 쓰는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니까요.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벌어 학비를 충당하려다 성희롱까지 당하는 여학생들이 있는 마당에 굳이 복도에 대리석과 융단을 깔아야 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건축 기금을 아껴서 장학 기금으로 전환하면 공금 전용에 해당되어서 그랬을까요? 손바닥만한 연구실에서 책을 쌓아 놓을 곳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돈 못 버는 분야의 교수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부속실이 붙은 연구실을 소유한 경영대 교수들이 기업 경영의 윤리성을 얼마나 강조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경영대가 모금한 것처럼 다른 대학들도 모금해서 좋은 건물을 지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신 어느 경영대 교수님이 생각납니다. 나는 그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땅의 재벌이나 기업가들 중에 생색나지 않고 이득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 기부할 사람들이 몇이나 되느냐고. 나는 몇 해 전에 한국철학회 총무이사로 있으면서 회장님과 함께 국제학술대회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기업들에게 구걸을 하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너희에게 돈을 줌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태도를 취하면서 일전 한 푼 주지를 않았습니다. 대회가 개최되기 불과 두어 주전에 우리의 궁한 형편이 신문에 보도되자, 어느 벤처 기업이 최소한의 경비를 대줘서 간신히 대회를 치렀습니다. 경영대가 LG와 POSCO에서 200억원의 기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경영학이 그들의 이윤 확대와 관련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LG-POSCO 경영관을 구경한 학생 여러분, 그 건물로 인해 젊은이답지 않는 속물근성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싹트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고뇌하고 번민하던 동료 학생들 옆에서, 대기업에 취직이 보장된다는 느긋함을 만끽하고 희희낙낙했던 일부 경영학도들의 몰가치적이고 무비판적인 정신이 LG-POSCO 경영관의 준공과 함께 재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돈 버는 능력대로 살기 마련이라는 약육강식의 논리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인 이기심이 고대인의 가치관을 형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영대인들은 최고급 건물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답게 최고 수준의 윤리관과 역사 의식으로 무장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LG-POSCO 경영관을 구경하는 이들마다 이처럼 초호화판 건물이 들어 선 고려대에는 더 이상 기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철학과 하종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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