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남의 글

인촌이 흑막에 싸인 날

同黎 2013. 3. 8. 02:02

인촌이 흑막에 싸인 날
/산하


제가 졸업한 학교의 본관 앞에는 한 사람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인촌 김성수. 이 양반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야 의견이 분분합니다만,어쨌건 구리옷 입은 인촌은 수십년 동안 학교 본관 앞 정 중앙에서 안암의 언덕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동상 뿐 아니라 원래는 그 묘지도 학교 안에 있었습니다. 문과대 뒤 그윽한 숲속 깔끔한 잔디 자락에 자리잡았던 인촌묘소는 그 호젓한 분위기 덕분에 학생들의 단골 술자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하의 인촌이 이놈들아 시끄럽다~~~~ 무덤을 뚫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우리는 떠들었고 노래 불렀고 꽹과리를 두들겼습니다. 그 꼴을 보다 못해선지, 아님 다른 명당을 찾았는지 인촌 묘소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헌데 학교 안에 또 하나의 인촌 묘소가 생길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인촌 동상을 땅으로 끌어내려 파묻어 버리겠다면서 동상 앞 땅을 파고, 동상에 온통 검은 천을 두른 채 그 목에 밧줄을 건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지난 세기 89년의 6월로 기억되는데.....

89년 1학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공부를 안한 시기입니다. 학원민주화 투쟁이 벌어지고 총장이 휴업령을 내리는 바람에 바로 총장실 및 도서관 점거농성에 들어갔거든요. 1학년 때 허위허위 놀아버린 것을 반성하며 향학열에 불타고 있던 저에게는 진짜로 진짜로 아쉬운 일이었지만(^^;) 불행히도 학교는 한동안 마비상태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휴업령이 해제되고 도서관은 다시 그 기능이 회복되었지만, 총장실에는 얼마 뒤 또 다른 손님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고려대학교 서창 캠퍼스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수도권 인구 분산,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 등등의 명목으로 각 지방에 설치되었던 지방 캠퍼스의 하나였던 고대 서창 캠퍼스는 그 당시 다른 학교의 지방 캠퍼스에 비하더라도 그 형편이 참으로 무인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빈약한 학교 시설, 공사 중인 도서관, 밤만 되면 인적이 끊기는 유령 캠퍼스, 돼지우리 하숙방으로 대변되는 최악의 교육 환경......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89년 당시 서창 캠퍼스는 등록금 많이 빼먹기 위한 대학측 장사판의 극악한 무대였고 그 장사판의 졸 취급을 받던 학생들의 심사가 폭발한 겁니다.

우리가 얼마 전까지 장악하고 있던 본관 점거농성에 들어간 그들의 주장 중 하나는 '단과대 발전'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설움은 자신들이 감수하겠으니 이제부터라도 본교에 없는 단과대학이나 특수 과를 개설하여 진정한 지방 캠퍼스의 육성에 나서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본교' 학생들의 반응은 뜨악했습니다. 학교측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대화는커녕 들은체 만체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했지요. 그 속내는 딱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꼬우면 본교 오지."

그러던 어느날, 동아리방에서 기타를 뚱땅거리고 있는데 비썩 골아버린 남학생 하나와 앳된 여학생 둘이 문을 두들깁니다. 누구세요? 물으니 서창에서 왔습니다.. 라고 약간 힘없이 답이 돌아오더군요. 워낙 본교 학우들의 호응이 낮다 보니 과실이나 동아리방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주장을 알리는 거랍니다. 얘기를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도 예 예 대꾸를 해 주고, 후배 한 명은 손님 대접이라고 누가 먹으려고 사 왔던 쵸코파이를 내밀었지요. 그러자 한 여학생이 눈길을 딴쪽으로 애써 돌리더니 나직한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처음이네요."
"예? 뭐가요."
"우리 얘기를 다 들어주시는 곳도 처음이고.... 뭘 주시는 데도 처음이네요."
"(땀 뻘뻘) 허허 뭐....이거 드시면서 쉬었다가 가세요.. 야 커피 하나 빼 와라"
"고맙지만 저희 못먹거든요. 단식 중이거든요."
"........."

그제서야 움푹 패인 그들의 눈망울과 늘어진 어깨가 우리 눈에 보였습니다.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단식하는 사람들을 몇 번 본 경험상, 최소한 사흘은 굶은 듯 초췌했습니다. 그 허기진 몸을 이끌고 단과대와 학생회관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호소를 들려 주고 있었던 겁니다. 문전박대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연한 냉대를 받아 가면서 말입니다.

지속적인 무관심, 무대응, 무신경에 맞닥뜨린 서창 학우들의 농성은 마침내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본관 앞 인촌 동상 앞으로 몰려간 그들은 검은천으로 인촌 동상을 칭칭 휘감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앞 잔디밭을 파헤쳤습니다. 동상을 쓰러뜨려 묻어버리겠다는 것이지요. 김성수의 증손자(손자던가?)인 재단이사장 이하 학교측의 무성의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지요.

이 사실이 알려지자 백발이 성성한 고고학적 학번의 선배들이 학교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의 스승이었던 인촌 동상에 대한 모독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죠. 또 본관 주위에는 서창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학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서창 학생들은 일단 거사를 중지한 상태...... 그러던 중에 분명 본교 학생으로 보이는 몇몇이 인촌 동상으로 기어올라가 그를 감고 있던 흑막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에선 백발 성성한 노인이 "민족의 스승인 인촌 동상에 대한 폭거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읽고 있었구요. 서창 학생들이 가만 있나 눈을 돌렸더니 그들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더군요. 이상할이만큼....

그때 한쪽에서 외침이 터져나왔습니다.
"무슨 권리로 그걸 뜯어내는 거요? " 낯익은 얼굴이었습니다. 즉 본교 학생이었죠. 그를 신호로 몰려 있던 인파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습니다.

"내려와!"
"맞아 당신들이 뭔데 그걸 뜯어?" 하나 둘씩 목소리를 높이는데 하나같이 서창 쪽의 퀭한 얼굴들이 아니라 제가 익히 아는 면면들이었습니다. 즉, '본교' 학생들이었죠. 서창 학생들 쪽에선 계속 침묵이었습니다.

그때 한 학생이 불쑥 앞으로 나서서 "내려와~"를 외치던 이에게 손가락을 칼끝처럼 내밀고 물었습니다.
"그쪽..... 본교요? 분교요?"

일순 정적이 흐르나 했더니 손가락 끝이 지적한 그 사람이 벽력같이 답했죠.
"본교요 왜요?"
그때 문제의 손가락이 싸늘하게 되물었습니다.
"학생증 있어요?"

이 말은 그야말로 폭풍을 불러일으킨 한 마디였습니다. 지적받은 학생은 대번에 학생증을 높이 치켜들고 손가락에게 돌진했습니다.
"시발놈아 봐라. 86이다. 너 몇학번이야? 싸가지없는 새꺄." 그 뒤를 수십명이 따랐고 손가락이 포위될 지경에 이르자 이번엔 또 다른 인파가 분노한 86 그룹과 부딪쳤습니다.
"본교냐 분교냐 물었는데 뭐가 싸가지 없는데?"

마침내 86 그룹에게 발길질이 날아들었습니다. 저도 뚜껑이 열려 버려서 옆에 있는 친구 병철이 (태권도 3단)에게 저 새끼 죽이자~~~를 외치며 난생 처음 패싸움에 끼어들려는 찰나, 병철이가 앞을 막았습니다. "쟤들 태권도부야." 그 말을 들은 저는 부리나케 방향을 돌려 다른 놈들 쪽으로 달려갔지요

몇 명간에는 이미 주먹과 옆차기 앞차기가 오간 상황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이성을 잃지 않은 몇 명의 필사적인 제지로 집단 난투의 참극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인촌동상은 멀쩡히 제 모습을 드러냈고 '본교' 학생들은 씩씩거리면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남아 있는 건 서창 학생들 뿐이었습니다. 그 핼쓱한 얼굴에 가득한 참담함을 내뿜으면서 말입니다. 언젠가 우리 방에 왔던 여학생이 눈에 띄어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안함을 모면하려고 꺼낸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가만히 있었어요들? 열받는데....."

그러자 돌아온 것은 뜻밖의 반문이었습니다.
"아까 그 학우(용맹한 86을 지칭하는 듯)가 서창 86이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에?"
"너무들 해요 너무들 해...... 왜 가만히 있었냐구요?..... 분..교..생이 무슨 말을 해요? "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얼마 뒤 서창 학생들은 농성을 풀었습니다. 얻어낸 성과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본교냐 분교냐를 꼬챙이로 찔러대는 '일반 학우'와 '전폭적인 그러나 형식적인' 지지를 했던 운동권, 그리고 망부석에 벽창호를 더한 것 같은 학교측의 대응 앞에서 서창 학생들은 그들의 한이 서린 '조베리아'(조치원 시베리아-- 서창의 별명)로 하염없이 돌아가야 했습니다.그들의 주장이 짓이겨지는 현장에서조차 그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한 일은, 그리고 나름대로 한 의식 한다고 자부하는 민족고대 안암 캠퍼스의 자랑스런 청년들이 한 일은 흑막에 싸인 인촌 동상 앞에서 목소리 몇 번 높이고 심하면 주먹질 몇 번 하고 악 쓴 것 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이상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조국통일이나 노동해방이라는 가슴 떨리는 구호에 주먹을 치켜들며 금새 뜨거워지는 그들이었지만 서창 학생들의 처지에는 혀 몇 번 차 주는 것 외에 한 일은 없었습니다. 등록금 인하 투쟁은 해마다 벌어졌지만 서창 문제에 대해 정식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제기했던 이들은 적어도 제 기억선상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같은 100만 학도로 아울러지고, 그 중에서도 고연전하면 똑같이 빨간 모자 쓰고 "즐거운 고연전 날에 연대생 우는 소리"를 목놓아 부르는 서창과 안암의 학생들이었지만 그들간에는 그렇게 큰 골이 있었고, 그 골을 메우려는 노력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몇 달 후 서창에 총학생회장 선거 유세 문선대원으로 내려갔을 때 서창 학생들이 우리들에게 보냈던 싸늘한 눈초리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눈에는 욕설이 배어 있었고 자조가 스며 있었지요. 개새끼들..... 에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뭐. 네놈들은 선거할 때만 우리가 고대생으로 보이지?

현대자동차 파업이 다행히(?) 끝났습니다. 파업하고 싶어하는 노동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십분 공감하면서 현대자동차 파업의 종료를 축하하고 싶습니다. 임금이 얼마나 올랐네, 노동귀족이네 하는 소리들에는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습니다. 연봉 5천만원 받는 노동자도 엄연히 노동자이고 그것은 그들이 기나긴 투쟁과 노력으로 따낸 결과물이기에 그렇습니다. 내 월급이 얼만데 너희들은 그거 받고도 지랄이냐는 불평은 왜 그거 받고도 지랄하지 않느냐는 반론에 지극히 무력합니다. 그리고 그 불평을 털어놓는 번짓수가 아무래도 틀렸겠지요. 아니할말로 월급을 현대자동차 노조가 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또 싸움싸움해서 얻어낸 연봉 5천만원보다야 편안히 앉아서 수백억대 거부가 된 이병철의 손자같은 사람들에게 더 열을 내야 할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제 당당한 역사와 투쟁 동력을 지닌 대기업 노조들이 그 불평에 무감각해진다면, '꼬우면 우리 회사 오지'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불평하는 이들의 이익이 충돌할 때 자신의 이익에 먼저 손이 가게 된다면 (노조는 이익집단이다...라는 명제, 찬성하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노동귀족'으로 등극하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대기업 노조들이 기나긴 파업 투쟁의 역사를 가지게 된 것, 그리고 오늘날 어쨌든 우리나라 경제의 주요 변수로 떠오를만큼 '파워'를 지니게 된 것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적극적이지는 않으나 꾸준했던 지지와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만약 그 지지와 성원이 분노와 자조로 바뀌게 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공권력의 침탈과 이데올로기 공세보다 더 무서운 적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들이 사회적 강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맞선 강력한 적에 효율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현대자동차로 대변되는 조직 노동자들은, 그 힘을 그들 외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써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는지요. 그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든, 온갖 비리와 불평등에 시달리는 하청 제도에 대한 개선 노력이든 말입니다. 물론 그 노력을 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그를 위해선 마땅히 '노조의 경영참여' 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합니다만.

13년 전 인촌이 흑막에 싸인 날이 다시 떠오릅니다. 살다보면 별 사람들이 다 있을 겁니다. 학교측의 부당한 장삿속에 희생된 이들에게 "꼬우면 본교 오지"라고 주절거렸던 놈들처럼, "꼬우면 정규직되지."라는 투의 싸가지를 발휘하는 놈들도 꼭 있을 겁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줄이라는 정부의 입장은 기업의 비용부담을 가중시킨다"면서 "본교야? 분교야? 그게 어떻게 같니?"라던 손가락같은 이들도 반드시 있을 겁니다. 서창이나 서울 안암이나 똑같은 학교의 명찰 달았건만 굳이 거기에 차별성을 두고 싶어 했던 좀스런 인간들처럼,그래봐야 같은 노동자 '주제'에 자기들의 '정규직으로서의 기득권'을 고집하는 이들도 간간히 발견될 거구요.

노조는, 그리고 조직 노동자들은 사측 뿐만 아니라 위에 쓴 이들과도 싸워 줘야 합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떠들고 쌈박질할 때 정작 말문을 열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서창 여학생처럼, 조직된 힘도 없이, 할 말은 새털처럼 많지만 입을 열지 못하고 싸움의 추이만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이들을 위해서도 팔뚝 걷어 부치고 싸워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싸움을 포기할 때.......아니 포기하고 싶어질 때 어쩌면 그들은 13년전의 인촌동상처럼, 그리고 저처럼 흑막에 싸여 가게 되는 것일 테니까요.

"노동자는 하나다" 과거 이 말이 진리임을 증명해 준 것은 편리하게도 노동의 반대편에 선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가 하나임을 증명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 증명이 멋지게 이루어져 나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