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詩

고장난 심장 - 안현미

同黎 2013. 10. 6. 01:37

고장난 심장


                            안현미 


빨간 장미 서른 세 송이를 들고 여자가 나를 찾아왔어요 여자의 눈물이 너무 딱딱해 나는 캐낸 눈물로 당신의 심장을 끓이면 좋겠다 생각해요 모래시계를 들고 찾아온 죽음은 백년 동안의 고독이 매장되어있는 화장터에서 활활 타오르고 모래시계에선 시간이 자꾸 흘러내려요 흘러내리는 시간을 가시로 꽂아 놓으며 여자는 중얼거려요 막장에서 석탄을 캐내던 내 아버지의 분노는 어디로 갔나요? 그 여름 국립의료원 중환자실에서 끝내 시간을 놓아버린 내 엄마는요? 어디까지가 바닥인가요? 왜 生은 고장 투성이인가요? 당신, 생은 다 그런 거라고 눙치지 말아요 시시해요 詩까지 시시해요 시체처럼 평온했음 좋겠어요 내 영정사진 앞에서 향나무 향이나 실컷 마시다 배불렀음 좋겠어요 불도 들어오지 않는 다다미 방에서 돌아오지 않는 식구들을 기다리다 보면 애국가 울려 퍼지는 화면조정 시간 이예요 치지지지 아무 것도 수신되지 않던 자정의 TV화면을 나의 내면이라고 부를까요?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을 테지만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겠지요? 그때서야 고장난 심장은 두근두근 따끈따끈 치지지지 나는 나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빨간 장미 서른 세송이를 들고 내 여자가 오늘 나를 찾아왔어요 그게 사랑이었다 해도 무슨 상관 이예요 내 여자의 눈물은 딱딱하고 내가 캐낸 눈물은, 당신은 시체처럼 차가워요 시체처럼 딱딱해요 생이 고장난 심장 같다는 건 하나의 농담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