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6일 카이즈카3 (간센지願泉寺)

同黎 2017. 8. 12. 22:02



이제 다시 카이즈카역으로 복귀


이제 카이즈카 시내로 나간다.


카이즈카 시내도


역 광장


역 전경


역 바로 앞에는 종시동서해총령석비(従是東西海塚領石碑)가 있다.

카이즈카는 에초에 카이즈카 어방(貝塚御坊)이라고 불렸던 정토진종 사찰인 간센지의 영지였다.

인근에 키시와다번이 있지만 이곳은 번과의 투쟁 끝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오사카 전투에 협조하고 독자적인 자치령이 되었다.

이것은 오사카의 시초인 이시야마 혼간지의 사하촌과 비슷한데 말하자면 이시야마혼간지 시절의

전통을 잘 지키고 있는 사찰령 하의 자치도시의 견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에서 골목으로 들어가


5분 정도 가면 간센지가 나온다.

상업도시답게 오래된 상점 건물이 보인다.


다시 골목으로 진입


곳곳에 보이는 에도시대 건물


여기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간센지 표문이 보인다.


요건 다른 쪽 입구


우리는 정문으로 들어간다.


카이즈카의 역사를 논할 때 간센지(원천사, 願泉寺)는 빠질 수 없다. 본래 교키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이 사찰은 그러나 사실상 정토진종의 8대 종주이자 승려 다이묘로 유명한 이시야마혼간지(후의 오사카)의 지배자 렌뇨에 의해 세워진다. 그후 이 일대는 혼간지 산하의 사내정으로 발전한다. 그 후 오다 노부나가가 잇코잇키를 토벌하면서 이곳도 폐허가 되지만 렌뇨의 뒤를 이른 겐뇨가 이시야마혼간지에서 퇴거한 후 임시로 이곳에 머물면서 크게 번영하고 카이즈카고뵤라는 별칭을 얻는다. 겐뇨가 떠난 이후 주지의 역할을 맏았던 보쿠한가의 노력에 의해서 번창했으며 도토요미 히데요시에게 사내의 면역을 인정받았다. 이후 오사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돕고 다시 키시와다번과는 독립된 자치권을 획득하였다. 한편 이에야스는 간센지에 해자를 파고 군사적으로 무장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며, 간센지는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자치령으로 존재하며 키시와다번과 대립각을 세운다.

역사적 의미 때문에 혼간지의 동서분열 때 혼간지파(니시혼간지)와 오타니파(히가시혼간지)의

공동 관리하에 있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니시혼간지 산하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안내판


여러모로 신기한 곳이다.


현재 해자는 완전 사라졌고 에도시대에 지은 본당과

표문, 태고당, 종루와 담 등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도에 파란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과거 간센지의 영역

지금은 그 안에 보이는 초록색 부분만 남아있다.


표문 전경

17세기 건립


문 정면에는 본당의 직접적인 노출을 막는 담이 있는데, 일본별로는 목은병(目隠塀)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영벽 혹은 조벽이라고 하여 흔히 볼 수 있지만 일본에서 보기는 힘든데


담도 중요문화재다.

담 너머 보이는 태고당도 중요문화재


18세기 초 건립


이제 안에 들어가본다.

따로 배관료는 없지만 그렇다고 본당 등 내부 배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목은병


본당의 직접 노출을 막는다.


이것도 중요문화재


표문 상부의 용조각


측면의 조각


나름 섬세하다


모란을 새긴 문


문 밖으로 보이는 다른 사찰들

말사도 많았겠지


본당은 17세기 중엽의 것으로 중요문화재


문 앞에 심은 나무


본당 전경

꽤나 크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상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보통 정토종이나 정토진종 사찰은 어영당을 본당으로 삼고 아미타당을 부속 건물로 삼는데,

여긴 어영당이 사라진건지 아예 없었던 건지...


본당 정면

절대 못 올라오게 바리케이트가 마루에 깔려있다.


경장


회벽 건물로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경장 안으로 부대사의 목상이 언뜻 보인다.


경장 바로 옆에는


종루가 있다

뭔가 간신히 서 있는 느낌이지만


에도시대 초기 건물로 중요문화재에 속한다.


종루에서 본 본당의 모습


본당은 얼마 전까지 복원공사를 했었다.


옆에서 본 표문

아주 화려한 장식이 많다. 뭔가 더 큰 사찰이 있을 듯한데


기념식수


중요문화재 표석

에도시대 이곳에서 열렸던 보은강이라는 법회는 지금의 오사카 남부의 상인이랑

농민들이 대거 참여해 주변 다이묘들이 경계할 정도였다고..


다시 나간다

표문의 조각


표문 앞의 석등롱

계단까지 있는 건 오랜만에 본다.


이제보니 곳곳이 사찰이다.


과거 말사들이 따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우연히 도록을 뒤지다 알게 된 곳인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과거 해자가 있던 자리는 큰 도로가 들어섰다.


이제 다시 역 앞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