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7일 교토 라쿠사이6 (묘신지妙心寺)

同黎 2018. 6. 4. 22:59



다음 장소는 묘신지

여기도 볼 것이 많은데 의외로 자주 오지 못했다.



묘신지는 임제종 묘심사파의 대본산으로 가마쿠라시대 하나조노천황이 창건하였다. 임제종 묘신지파는 전체 6000여개의 임제종 사찰 중 약 3400~3500개의 사찰이 속해 있어 임제종 최대 종파이다. 일반적 종파가 200~500개에 속한 것에 비하면 엄청나다. 물론 정토진종 혼간지파나 진종 대곡파, 일련종 같은 곳에 비하면야 화력은 딸리지만

또한 묘신지는 오산십찰에 빠져있는데, 무로마치 시대 막부에서 지은 텐류지, 쇼코쿠지 등이 진입하면서 다이토쿠지와 함께 여기서 빠졌다. 이후 에도시대에도 이 문제로 다이토쿠지와 함께 좀 고생을 하기도 했다.

하나조노천황이 이궁을 바쳐 선사로 바꾸었고, 다이토쿠지의 개산조인 대증국사 종봉묘초의 제자 대상국사 관산혜현을 개산조로 삼아 세웠다. 이후 뛰어난 선승들이 많았지만 남북조시대 묘신지 주지가 아시카가씨와 대립하던 오우치 요시히로와 관계를 맺자 분노를 사서 사령이 몰수당해 난젠지에 주어지기도 하였다. 그래도 난젠지와의 협조를 통해 부흥하기는 하였다.

지금의 사찰은 오닌의 난에 전소되었으며 이후 사찰을 일으킨 4명의 주지가 각각 탑두를 세웠고 그것이 묘신지 4파라고 하는 각 파의 근간이 되었다. 이후 고카시와바라천황의 윤지로 자의(자주색 가사)를 입게 되면서 다이토쿠지와 같은 급이 되자 다이토쿠지로부터 독립해서 큰 사찰이 되었다. 이후 전국 다이묘들의 후원을 입어 크게 번영하였고, 에도시대에는 황벽종의 시조인 은원융기가 방일했을 때 임제종의 정통을 잇기 위해 묘신지에 그를 초빙하려 했으나 결국 거부되었다.

지금도 16~17세기에 지은 건물이 대부분 남아있으며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선종사찰의 필수인 칠당가람을 모두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사찰인데 삼문, 불전, 법당, 방장(대·소), 고리, 욕실, 경장이 그것이다. 칠당가람은 삼문, 불전, 법당, 방장, 고리를 기본으로 욕실, 동사(화장실), 선당, 경장 등이 왔다갔다 하는데 하여튼 여기는 다 있다. 이 외에도 칙사문, 총문, 침당 등이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남아있다. 경내 탑두사원도 48여 개로 일본 사찰 중 최고에 달한다. 다음은 다이토쿠지


겨울에 경장과 고리를 특별공개 중


대고리 입구


우리는 먼저 일반 관람을 하러 간다.


방장과 법당을 잇는 복도


방장으로 들어가면


30분에 한 번 꼴로 가이드 안내를 받아 방장과 법당, 욕실을 볼 수 있다.

 

대방장의 모습

입장료를 내면 여기서 대기한다.

건물은 중요문화재


방장 정원


이끼에 간단하게 모래로 산만 만든 간략한 정원이다.

현재 사적 겸 명승 지정


칙사문

역시 중요문화재


대방장, 중요문화재

에도시대 초기의 건물이다.


방장 현판


묘신지파 사원들의 명찰

각 급별로 되어 있는데 저게 전부는 아니다.


멀리 보이는 법당과 불전


방장 내부


가운데의 불단


후스마에는 가노 탄유의 작품

 

수묵산수도이다


따로 문화재 지정은 안 되어있다.


법당으로 간다

천정의 운룡도


여기에 온 이유는 이 국보 범종을 보기 위해

698년 만들었다는 기년이 있는 아스카시대의 종으로 일본의 기년명 종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규슈에서 만들어졌다는 명문이 있으며 같이 만들어진 종이 규슈 다자이후의 칸제온지에 남아있다.


종루

종루만 60년대 방화로 불타서 중요문화재에서 해제되었다.


법당


불전

불전만 19세기에 재건된 것이지만 역시 중요문화재


각 건물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복도도 중요문화재이다.


욕실로 가는 중


역시 에도시대 지어진 것이다.

사실 16세기에 지은 것인데 이후 다시 한 번 지었다. 중요문화재


이 욕실은 아케치욕탕이라는 별명이 있다.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아케치 미츠히데가 교토로 개선했을 때 미츠히데는 자신의 숙부가 승려로 있던 묘신지로 왔다. 그 때 미츠히데가 이곳에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할복하려고 사세구를 썼는데 그 때 숙부가 그를 책망했다고 한다. 미츠히데 사후 숙부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곳을 지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미츠히데를 공양하는 행사를 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내부 물을 끓이는 곳



물을 넣는 곳


목욕탕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사우나다.


욕탕 뒤편의 작은 정원



이렇게 공식 관람이 끝난다.


욕실 위편으로 난 굴뚝


삼문


삼문에서 바라본 불전과 법당


선종풍의 화두창


법당과 묘신지 방장의 문을 연결하는 복도


경장

역시 중요문화재


이번에 특별공개하는 곳이라 들어가본다.


안내판


내부


안에는 부대사가 있다.



신발


이제 고리로 들어간다.

내부에는 사보 진열 중


하나조노천황상


각종 기와와


경상


밥 짓는 곳


가운데에는


지장보살반가상을 모시고 있다.


아마 미부지장인 것 같다.


거대한 고리


평소에 보기는 어렵다.


국보 중 고리는 단 두 곳뿐


아궁이


우물


창고


흙과 석회로 만들어 화재를 막는 토장이다.


입구의 고리


복잡하게 얽힌 방장으로의 연결 통로


방장을 나와 묘신지 답사를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