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가와를 따라 내려간다.
날씨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JR야마자키역 앞
강을 건너왔더니 오사카부에서 교토부로 바뀌었다. 이 동네가 혼노지의 변 이후 주코쿠 대회군을 한
하시바 히데요시(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군과 아케치 미츠히데군이 격돌하여 결국 하시바군이
승리해 히데요시의 천하에 한 발 가까워진 포석을 마련한 야마자키 전투가 일어난 곳이다.
역 바로 앞이 묘키안이다.
심지어 버스정류장이 입구에 있다니..
묘키안(妙喜庵, 묘희암)은 임제종 동복사파에 속하는 작은 암자이다. 무로마치시대 도후쿠지의 산외탑두로
세워졌다고 하며 야마자키 전투 당시 히데요시의 진영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유명한
하이쿠 시인인 야마자키 소칸의 은거지라고도 하는데 이 설은 부정되고 있다.
이 작은 사찰이 유명한 이유는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실이자 센노 리큐가 만든 유일한 현존
다실인 대암(待庵, 타이안)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본래 타이안은 이 근처에 있었던 리큐의 저택에서
옮겨온 것이다. 야마자키의 전투 당시 히데요시가 리큐를 초대하고 이 때 리큐에 의해서 이 다실도
이축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서원 남쪽에 있으며 차석은 다다미 2칸, 기타
미즈야 등을 포함하여 총 4첩 반의 작은 다실이다. 리큐기 추가한 와비차에 어울리는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지붕부터 벽지, 창에 이르기까지 모두 리큐가 직접 설계했다.
여기를 직접 배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달 전에 왕복 엽서로 예약해야 한다. 홈페이지가 있으나 전화나
이메일로는 예약이 불가능하며 반드시 왕복 엽서나 편지로만 가능하다. 외국인도 얄짤없다. 또한 고교생
이상만 배관할 수 있고 중학생 이하는 배관 불가다. 배관료는 1천 엔. 한마디로 보기 힘들다.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다실은 3곳으로, 센노 리큐의 대암, 오다 우라쿠사이의 여암, 고보리 엔슈의 밀암이다.
밀암이 위치한 다이토쿠지 류코인은 배관불가(정도가 아니라 한 번도 일반 공개된 적 없음)이며, 대암도
이렇게 보기 힘드니 여암만 편히 볼 수 있다. 다만 대암은 똑같이 지은 레플리카가 오야마자키역사자료관,
도쿄 롯본기의 모리미술관, 사카이시의 리쇼노모리 등에 많이 지어졌기에 그나마 구조를 살필 기회는 많다.
밖에 있는 태합의 진영이며 리큐의 차석이라는 표석
국보 안내판
정에서 세운 안내판
내부는 일체 촬영금지
다 퍼온 사진이다.
서원에서 본 대암
대암 정면을 찍은 사진이 없어 사카이시에서 복원한 것을 가져왔다.
리큐가 히데요시에게 차를 대접하는 상상도
현재의 입구
직접 가서 보면 벽이 인상적이다.
벽지를 바르지 않고 짚을 섞은 검은 흙을 댄 것이 느낌이 묘하다.
대암의 벽면
어둡고 고요한 느낌
로와 도코노마
츠키노마
직접 보면 뭐랄까 대단한 느낌이 난다.
다실이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긴 다르다. 느낌이
입면도
이렇게 4칸으로 구성된 곳
도코노마와 로가 있는 차석은 달랑 2첩이다.
이렇게 좁은 게 리큐 다실의 특징. 이후 오리베나 엔슈를 거쳐 우라센가로 가면 다시 다실이 매우 커진다.
중요문화재인 서원
야마자키 소칸의 저택이라고 전해지지만 그건 아닌 것이 확실하다고.
무로마치시대의 것이라는 설과 모모야마시대라는 설이 왔다갔다한다.
묘희암 현판
여기서 다건과 대나무 후타오키를 샀는데 매우 잘 쓰는 중
근처에 리큐하치만구가 있어 들려본다.
오야마자키정 지정문화재
리큐하치만구(離宮八幡宮, 이궁팔번궁, 리큐하치만궁)은 이와시미즈하치만구와 동시에 지어졌다 전해지며
우사신궁의 신령을 분령해온 것으로 하치만신을 모시고 있다. 이 지역에 사가천황의 이궁이 있었다고 하여
리큐하치만구가 되었다는데, 다만 10세기까지는 이궁이 있었기 때문에 과연 진짜 이와시미즈하치만구와
동시에 세워졌는지는 의문. 또 특이하게 일본 최초로 들기름을 만든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곳은
에도시대까지 전국에 들기름 판매권을 독점했으며 엄청나게 번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존왕양이파인
조슈번이 막부파인 아이즈번주이자 교토수호직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를 배제하려고 일으킨 금문의 변
당시 조슈번의 둔소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들기름 상점과 함게 소실되었다. 이후 폐번치현
당시 광대한 경내의 서쪽이 오사카부로 편입되면고 철도까지 지나가면서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안내판
생각치 못하게 들기름의 신사에 와버렸다.
신사 내부
과거 절이 있던 자리의 탑신석
이곳도 신불습합으로 절이 있었다고 하며 오층목탑의 심초석이라고 전해진다.
안내판
크다
꽤 큰 탑이었을 것 같다.
이세신궁 식년천궁 기념비
일본 들기름의 시조라는 오야마자키신인
이 신궁의 신관이었다고 하며 처음으로 일종의 기름 짜는 방아를 발명했다고
안내문
이걸 발명했단다
기름장수
배전
뒤편의 본전
안내판
섭말사들
다시 차를 세워둔 JR야마자키역으로 와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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