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16일 나치카츠우라1 (쿠마노나치대사熊野那智大社)

同黎 2019. 4. 1. 04:07



이제 나치대사로 가는 길


산사태가 난 건가, 아님 채석장인가


하여튼 다시 산속으로 간다.


터널도 보이고


꽤 큰 도로이다.


멀리 보이는 바다


들어가는 길


이래봬도 고속도로에 해당한다.


하늘이 왜 이러냐


겨우겨우 산에 올라


드디어 신사 도착


꽤나 큰 관광지라 호텔도 많다.


두 번째 오는 곳

역시 경치가 좋군



나치산 줄기


원래라면 기어올라와야 하는 길


차 타서 조금 줄었다.

그래도 또 기어올라갔다.


겨우 올라온 신사


신사 전경


산맥


내려다보이는 도리이



신사 자체는 작다.

쿠마노나치대사(熊野那智大社, 쿠마노나치타이샤, 웅야나지대사)는 쿠마노삼산 중 하나로 다른 두 신사에

비해 수험도의 영향이 크다. 전승에 따르면 5대 코쇼천황 때 인도에서 도래한 나형상인이 십이소권현을

제사하고 이후 닌토쿠천황 때 사전을 지은 것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불명이고 아마 나치폭포를

신성시하는 원시신앙에서 시작하여 사전은 나머지 두 산보다 나중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모시는 신은 다른 신과 거의 똑같은데 다만 나치폭포를 신체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신 1좌를

추가해 13신을 모시며 나치폭포를 오쿠니누시의 화신으로 가장 위에 모시고 있다.

나라시대부터 기록에 나오고 있으며 이후 구마노신앙이 커짐에 따라 헤이안시대 활발한 신앙을 받는다.

특히 불교와의 결합이 가장 심하였고 수험도 수행자들이 모여들어 거대한 사사집단을 이루어서 조직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후 고토바천황이 조큐의 난을 일으킬 때 고토바천황 편을 들어 무사정권의 후원을

잃어 점차 쇠잔해졌다. 그래서 다른 곳과는 달리 유력 성씨가 아니라 승려들이 시주를 모집해 절을

세워 불교적 성격이 더 강해졌다. 이후 에도시대 키슈번에 의해 후원을 받았고 승방이 늘었으며

덕분에 신불분리령으로 많은 사찰들이 사라졌지만 신사 바로 옆에 세이칸토지는 지금도 남아있다.

 

배전


새해 기념 에마


보물전 공개 중

300엔


십이소권현 신상

와카야마현지정문화재인 무로마치시대의 작을 복각한 것



실제로는 15좌의 신이다.


도요토미 히데요리 앞으로 보내는 서장

중요문화재



와니구치

히데요리 기증

현지정문화재



마키에연상

히데요리 봉납

현지정문화재



태도

도쿠가와 요시무네 봉납

키슈번주였다가 8대 쇼군에 오르는 그 사람이다.



고동인

모루군인이라고 되어있다.

아스카시대의 것으로 중요문화재


와키자시


고마이누

무로마치시대


활석제 오륜탑

가마쿠라시대

현지정문화재


동제 수적

헤이안시대

현지정문화재


신경

쿠마노후스미대신



금은장식보검칼집

중요문화재

에도시대


상자까지 함께 중문 지정


상자


우왕보인 목판


각종 현불 파편

현지정문화재


경총 출토 유물

헤이안시대

현지정문화재


카메야마천황이 나치폭포 옆에 세워놨다는 기원목패

에도시대



동제보주형 교각장식

에도시대

현지정문화재



여기도 버스가 다니긴 하는데... 폭포에서 내리면 다시 역으로 가기 어렵다.

버스 배치가 좀 극단적


이제 사전을 보자


사천은 6동으로 모두 중요문화재

측면에 있는 팔사전과 섭사 미아가타히코사

12권현 중 중사사, 하사사를 모신 곳


야타가라스가 있다.


안내문


섭사 미아가타히코사

야타가라스를 신으로 모시는 곳


역시 중요문화재로 지정

여기서 시종 종조 잇펜상인이 득도했다고 한다.


본전 부분


배전


뒤편의 5개 사전이 중요문화재


거대한 신목 녹나무


수령 800년의 나무로 신체로 모셔지고 있다.

타이라노 시게모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안내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


반대편으로 나간다.


나오는 문


바로 옆이 세이간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