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17일 키즈가와1 (카니만지蟹満寺)

同黎 2019. 4. 2. 03:56



칸논지에서 강을 건너면 키즈가와시이다.


익숙한 강둑길이 나온다.

예전에 이 길을 따라 카니만지에 가서 그 거대한 청동불을 처음 봤지

감회가 새롭다


카니만지 주차장


역시 옆문으로 간다.


이번에는 사진을 좀 찍어두려고


본당을 지나


문앞부터 찍는다.

장지훈이 걸린다.


카니만지

두 번째이다



카니만지(蟹満寺, 해만사)는 역시 진언종 지산파의 사원으로 아스카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생각된다.

창건 설화가 전해지지 않고 대신 헤이안시대 후기의 일화집인 콘자쿠모노가타리에 관련된 설화가 있다.

옛날에 관음신앙이 두터운 땅이 있었는데 그 지역의 한 처자가 마을 사람들이 먹기 위해 잡은 게를 놓아

주었다고 한다. 이후 그 처자의 아버지가 개구리를 삼킨 뱀을 보고 그 개구리를 놓아주려고 하는데 뱀은

딸을 자신과 결혼시켜주는 조건으로 놓아주겠다고 해서 허락한다. 이후 뱀은 미남으로 변해 딸을 받으러

왔는데 딸은 뱀에게 3일을 유예를 받고 관음경을 외웠다. 그러자 많은 게가 나타나 뱀과 싸워 이겼고

딸은 뱀과 게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절을 짓고 게가 가득하다는 의미의 카니만지라고 지었다고 한다.


다만 이건 설화인데, 이 지역에는 고대 도래인들이 많았으며 이들이 논을 가리키는 단어가 카니였고

신을 가리키는 단어가 하타로 가니하타, 혹은 가무하타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기서 파생된

단어로 보고 있다. 불상의 크기나 발굴된 규모로 보아 큰 영향력이 있는 호족이며 불상이 통일신라

불상과 비슷한 것을 보아 한반도계와의 관련성도 주목된다. 이후 쭉 불상만 방치되어 있다가

에도시대 진언종 지산파의 지샤쿠인 승려가 부흥하여 지금의 절이 되었다.


본당


사람을 한참 부르다 안 나와 배관료를 놓고 들어간다.


안내문


교토부 미나미야마시로지역의 고사 모임

교토부의 남쪽 지역이 과거 야마시로노쿠니였다.

미나미야마시로는 교통편으로는 사실상 나라에서 가는 것이 더 좋다.


해만사라고 써 있는 현판


본존 금동석가여래좌상

국보, 아스카시대


높이 2.4미터의 장육존상의 규모를 갖춘 크기의 불상이다.


밑에는 암반의 대좌가 있는데 움직인 적이 없다고 한다.


불상은 금동불이 만들어진 초기의 작품으로 생각되며 아스카대불보다는 야쿠시지의 본존과 연결성이

더 강조된다. 특히 통일신라 불상, 그 중에서도 석굴암 본존과의 연관성이 매우 주목되는 대작이다.


상호

최근 조사에 따르면 무게는 2톤으로 비슷한 크기에 비해 약 5톤의 무게인 야쿠시지상보다 훨씬 가볍다.

또한 두께가 야쿠시지의 것보다 얇아서 주조수법이 더 훌륭하다고 평가된다.


상호의 모습


가부좌한 하반신의 옷주름 처리가 석굴암 본존과 닯았다.


잘 생긴 불상이다.


뒷부분


광배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스카대불과는 달리 손상된 부분이 거의 없다.



반대편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 모양


32상에 들어가는 표현이다.


십이천도 병풍


이 곳도 잘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