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6차

일본횡단기 - 4일 나라6 (정창원正倉院)

同黎 2020. 2. 28. 15:36



오늘 정말 피터진다.

하루에 열 몇군데를 가려니 택시를 타고 정창원으로 바로 직행한다.


택시를 타고 들어왔는데


아뿔싸


정문은 막혀있고 옆문으로 가야 한단다.


사진만 찍고


급하게 옆문을 외친다.


하...


주 출입구를 찾았다.


그동안 정창원전은 여러번 봤는데 신기하리만치 정창원과는 인연이 없었다.

처음 몇 년은 수리중이라서, 몇 년은 주말에 와서 인연이 없었다.

이번에 작정하고 온 것이다.


정창원 관람은 월~금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가능하다.

다만 도다이지 남대문에서 거의 1km 안쪽에 있어 처음 오면 찾기가 쉽지 않을 뿐


우리 뒤편으로도 계속하여 참배객이 온다.


이제 들어가자


거대한 창고가 보인다.


2010년부터 행해진 건물 수리


수리 당시의 모습


기와 교체


안내문이 많다


드디어 내부로 들어간다.


정창원(正倉院, 쇼소인)은 나라시대 지은 거대한 창고로 코묘황후가 남편 쇼무천황의 사십구재를 맞이하여

천황의 애용품 650여 점과 60여 점의 약재를 도다이지 대불에서 봉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3차례에

걸쳐 황후와 천황의 물건들이 헌납되었고 국가진보장 등 5권의 목록이 만들어졌다. 건물은 습기를 막기

위해 아래를 지면에서 띄운 교창식 건물이고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북창은 천황과 황후의 애품,

중창은 도다이지의 의식구, 문서, 조동대사사 관계자료, 남창은 도다지이의 불구와 대불개안법회 당시의

사용품 등이 봉납되었다. 그밖에 별도로 성어장이라는 작은 창고가 있어 불경들을 봉납했다.

본래 정창은 각 쿠니에서 정세를 납부받아 보관하는 창고를 말하는데 나라의 대찰들도 별도의

사령이 있어 조세를 받았으므로 정창을 설치하고, 여기에 각종 보물을 보관하였으나

지금은 이러한 정창이 다 사라지고 도다이지 것만 남았다.

이후 정창원은 몇 차례 열렸는데 가장 많은 것이 각종 반란이나 전란 당시에 무기를 보충하기 위해 열린

것으로 무구류는 실제 봉납품과 목록 사이의 간극이 가장 크다고 한다. 그리고 일부 불경이나 약류 등은

사용을 위해 반출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시대 유물들이 이렇게 완전히 남아있는 것은

인류의 큰 선물로 당시 당, 신라, 백제 뿐만 아니라 서역의 물건까지 전해진다.

메이지유신 이후 정창원과 황실의 연관성이 강조되어 정창원은 황실에 접수되었고 궁내성이 관리하였다.

이후 조금씩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정창원전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고 또 일부 염직류는 호류지 것과

혼동되어 도쿄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전후에는 궁내청 정창원관리소에서 담당하여 보관 중이다.

보통 황실이나 궁내청 소관 유물은 국가지정문화재가 되지 않는 것이 일본의 관습이지만 나라 일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킬 때 국가에 의해 관리받지 않는 유구는 포함이 불가능해지자

정창원 건물만 예외적으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창원이 수리 중일 때 담 너머로 본 느낌은 거의 경회루만하다였다.

정창원 건물은 정면이 33미터, 측면이 9.4 미터, 높이가 14미터에 이른다. 경회루가 정면 34.4미터,

측면 28.5미터, 높이 21.5미터로 측면과 높이는 훨씬 크지만 정면은 엇비슷하니

그렇게 크게 느낀 나의 느낌이 아주 틀리지는 않은 셈이다.


대단하다


나라시대의 건물이라니


정창원의 진수사

스키모토신사라는데 어떤 신인지 잘 모르겠다.


겨우 잡은 정면


대단하다


성어장이 안 보이는게 좀 아쉽다.


처마 끝


반대편


구경하는 사람들


수리 시 교체한 기와들


많다


이제 다시 나간다.


한쪽에 주춧돌만 널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