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6차

일본횡단기 - 3일 교토 라쿠호쿠2 (이와쿠라 도모미 은거지岩倉具視幽棲旧宅)

同黎 2020. 2. 19. 22:54



이와쿠라에 도착

이곳은 예전에 짓소인에 가려고 한 번 들린 조용한 동네다. 교토 북쪽에 딸린 작은 분지


이곳에 온 이유는 이와쿠라 도모미 은거지에 오기 위함


이와쿠라 토모미가 존왕양이파에게 밀려 칩거할 때 머물던 집이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다가


드디어 다시 왔다.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는 근대 일본의 공경으로 이와쿠라 사절단으로도 유명한 정치가이다. 코메이,

메이지 양 천황의 측근으로 활약하며 때로는 존왕양이, 때로는 공무합체의 입장을 가졌고 유신십걸 중

하나로도 손꼽힌다. 본래 호리카와가의 차남으로 태어나 이후 이와쿠라가로 입양을 가 이와쿠라가 당주가

되었다. 호리카와가나 이와쿠라가는 섭관가-청화가-대신가의 아래로 최대 대납언까지 오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한참 아래나 가능한 중간 공경(실제로는 하급)으로 다른 가문보다 훨씬 못한 위치를 갖고 있었다.

이와쿠라 도모미는 관백 타카츠카사 마사미치의 밑에 들어가서 건의를 하는 등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미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여 88명의 공경과 함께 관백 쿠조 히사타다에게

항의하는 88공경 사건을 주도하고 코메이천황을 알현한다. 그리고 정치의견서인 신주만세견책을

천황에게 제출하며 개항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상대의 정세를 알기 위한 사절 파견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이후 이와쿠라 사절단의 시초가 된다.

그러나 에도막부에 로주 이이 나오스케가 집권하며 안세이 대옥을 일으키자 몸을 움츠리고 막부 측

인물들과 친분을 쌓기도 한다. 이에 따라 천황의 동생인 카즈노미야를 쇼군과 결혼시키는

공무합체를 주도한다. 그러나 이 일로 존왕양이파의 주 공격대상이 되고 산조 사네토미

등에 의해 탄핵을 받게 되면서 천황의 의심까지 사게 된다. 토사번의 타케치 한페이타

등에 의한 살해 위협이 구체화되자 이곳에 칩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 금문의 변으로 교토의 양이론자들이 썰러나가자 이와쿠라도 복권되지만 계속 이곳에 칩거하며

정치의견를 써 조정이나 사츠마번에 돌린다. 이때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서거하고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쇼군이 되어 공무합체가 균열이 일자 조슈번과의 화해를 주장한다. 이 때 코메이천황이 급서하고 메이지천황이 즉위하자 이와쿠라 토모미는 오쿠보 도시미치 등과 결합해 요시노부에게 대정봉환을 요구하도록 요구하고 결국 요시노부는 쇼군직을 반환하고 오사카성으로 퇴거한다. 하지만 요시노부가 사츠마 정벌을 명목으로 교토를 점령하려는 토바-후시미 전투가 일어나자 이와쿠라가 주도하여 도쿠가와 정벌을 결의하고 각 다이묘들의 충성맹세를 받아낸다. 결국 막부군이 패하면서 이와쿠라를 중심으로 하는 정권이 탄생한다.

신정부가 수립되자 이와쿠라 토모미는 산조 사네토미와 함께 정권을 쥐고 판적봉환을 주도한다. 이와쿠라

토모미는 이 때 건국책이라는 건의서에서 근대적 국가 수립을 주장했고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제 국가가

수립된다. 이후 그는 외무대신에 올라 미일조약의 개정을 위해 유럽과 미국을 도는 이와쿠라 사절단을

이끌고 도해한다. 이후 시카고에서 상투를 자르고 귀국하여 정한론에 반대하였고 이에 불만을 가진

사츠마 구 번사에게 습격을 받기도 한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에게 헌법 제정을 맡기게 되는데

이토가 돌아오기 전에 인두암으로 사망한다.

여러모로 엄청난 인물이다.


안은 소박한 정원이 있다.


작은 정원


해가 잘 드네


안으로 들어가면


근대 건축물이 있는데 이곳은 그의 유품과 책을 보관하는 문고이다.

현재 공사 중이라 들어가진 못한다.

 

작은 모퉁이를 돌면


이와쿠라 토모미의 은거지가 있다.

이와쿠라 토모미가 카즈노미야의 혼인을 성사시킨 후 양이파에게 반역자로 지목받아

은거하던 곳으로 거의 변형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쪽에 위치한 비석


그의 죽음 이후 머리카락을 묻은 유발비이다.


안내문


초가 지붕


유발비 옆으로는 두 개의 작은 공양비가 있는데


안내문이 없다


작은 문


정문이 있다


뒷편의 건물이 부속동인데 이게 진짜 토모미 은거 당시의 건물이다.

앞의 초가집은 이주 후에 손님들을 위해 증축한 것이라고


작다


내부


두 건물 사이의 작은 정원


내부


부속옥


작은 부엌


정말 작은 집이다.


안내문


주옥


안내문


이렇게 한가하다


철로 된 등롱


주옥


이제 밖으로 나온다.


가는 길에 보이는 표석


짓소인 정문이 보인다.


워낙 차가 없는 곳인데 마침 근처 정류장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탑승


날이 따뜻하구나


데마치야나기에 도착


식사를 하러 근처 식당에 들어간다.


오래된 표시를 풍기는 집


점심시간이라 직장인들이 많다.


맛있다

야키니쿠 정식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엔카 가수로 활동하는 한국인인 것 같다.


오늘도 카모가와는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