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8차 九州

남국유랑기 - 2일 나가사키5 (데지마出島)

同黎 2020. 5. 24. 21:28



전차 기다리는 중

이제 데지마로 간다.


이 차의 경력서

쇼와 41년(1966) 제조

기계류는 쇼와 34년(1959)

어마어마하다. 다른 지역에서 안 쓰는 차를 들여온 것도 많고

새로 만든 것도 있고 차량들이 제각각이다.


1일권 500엔

편리하다. 안 사는 사람이 없을 듯


신치추카가에서 하차


본래 구 나가사키 영국영사관을 보러 온 것인데


공사중이다

괜히 내렸네


이런 건물이라고.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


다시 탑승


오 십팔은행

인천에도 구 십팔은행 지점이 있다. 옛날 이름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지방은행


데지마가 보인다


데지마역에서 하차


길 건너 보이는 입구


역명판


데지마


담너머 복원한 옛날 건물들이 보인다.


한쪽에 있는 데지마 남서단 안내판

과거 데지마를 둘러싼 해자가 상당 부분 사라지면서 이렇게 표기를 해준 것


문도 보이고


각종 건물들이 보인다.


사적 데지마 화란상관 유적이라는 표석


입구인 남수문

본래는 해자가 중간에 있었을 것인데 그건 사라졌다.

남수문과 북수문의 2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남수문으로는 수입용 물건이 드나들었고

북수문으로는 수출용 물건이 드나들었다.


해자 유적이 남아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데지마 서측 강변

나카시마가와


안내판

데지마(出島, 출도)는 에도시대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대서양무역이 허락된 장소였다.

본래 모모야마시대에서 에도 초기에 이르기까지 나가사키에는 포르투칼 상인들이 드나들고,

히라도에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데지마는 에도막부에서 본래 포르투갈

상인을 관리할 목적으로 만든 인공섬으로 막부와 데지마초닌이라고 불린 25명의

나가사키 유력 상인의 출자로 만들어졌다. 데지마 초닌은 매년 이곳에 입주한

서양인 상관에게 돈을 받았는데 매년 약 1억엔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마바라의 난이 터지자 막부는 포르투갈과 단교하였고, 이에 데지마가 텅 비어 상인들이

손해를 보자 히라도의 네덜란도 동인도회사 상관을 데지마로 옮기게 했다. 영국인들도 왔으나

금방 단교했다. 나가사키 봉행은 데지마의 서양인과 일하는 일본인을 감독했는데 배가 없을 때도

보통 서양인 15인과 일본인 100명 이상이 일했다고 하며 유일하게 유녀만 출입이 가능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네덜란드가 프랑스에 점령당하면서 선박이 한 척도 안 오고

전 세계에 네덜란드 깃발은 데지마에서만 올라갔다고 한다. 네덜란드인 의사 시볼트가 귀국 전

일본지도를 가져가려한 것이 발각되어 일본인 수십 명이 처벌받는 시볼트 사건도 있었다.

이후 메이지시대 개항이 나가사키 전역이 개항장이 되어 데지마와 네덜란드 상관도 폐지되고

해군 전습소가 된다. 이후 메이지시대 나가사키항 대규모 개수 사업으로 매립되어 육지가 되었고

이후로도 많은 건물이 들어섰다. 데지마 복원은 전후의 일로 네덜란드가 패전국 일본에게 배상금

대신 데지마의 복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데지마는 전체가 사유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30년 간의 토지 매입과 15년의 발굴, 조사를 거쳐 1996년에서 2010년까지 3차에 걸쳐

19세기 및 메이지시대 건물을 기준으로 복원이 되었고 이제 4기 복원을 압두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국도가 된 모서리 정도를 빼면 거의 완전히 복원이 되었다고 봐도 될 듯 하다.

 

데지마 안내도

부채꼴 모양이 잘 보인다.


데지마 밖을 흐르는 나카시마가와


중간에 다리가 있다.


보존되어 있는 호안석축


안내문


다행히 이 부분은 자연하천이라 매립이 안 되었다.


전경


이제 안으로 들어간다.

입장료 520엔


건물이 무지 많다


문을 들어서면 저울이 있다.


수입품의 무게를 재던 곳

관리들이 감시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데지마 내부의 거리


중심 거리를 두고 좌우로 건물이 있고 그 안으로 또 건물들이 있다.


1번선 선장의 가옥 1층

창고


2층으로 간다


힘들어


네덜란드인 선장의 숙소를 재현


다다미 바닥에 서양식 가구가 있다.


침실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했다고


1번선 선장의 방

19세기 초의 모습


찬장


침대


잘 꾸며놨다


거실



책상


가재도구도 많다


요리소


서양인들의 음식을 만들던 곳


카스테라가 탄생한 곳


저수지

마시는 물은 사서 썼다고



1층이 뚫려있는 건물


부엌이 보인다

이 건물은 페트로의 집

네덜란드 상관 차석이었던 페트로가 머물던 건물이었다고

 

청동 대표

발굴 도중에 발견된 대표로 네덜란도 동인도회사의 선박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크다


일본은 메이지유신까지 제대로 된 대포를 못 만들었다.


내부로 가니 전시실이 있다.

당시 네덜란드 상선


건물 모형


과거 지도를 따라 복원한 모형


깃대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연도까지 새겨져 있다.



해시계

네덜란드인이 만든 것



신기하네

발굴도 많이 되었다


철제 대포

역시 발굴 결과 발견된 것




다음 장소로 가본다.


옆에는 각종 창고가 있다.


무역창고

그 중 하나를 들어가본다.


1번 창고

본래 설탕 창고인데 현재는 건축 전시실이다.

벽의 처리


발굴 현장이 나온다.


바닥에 드러난 유구


뒤로는 강이 보인다.


가운데 있는 다리가 데지마로 사람이 통하는 다리


옆 건물인 2번장으로 간다. 본래 수입품인 각종 염색 염료를 보관하던 곳

발굴 당시 모양


출토된 도자기들


데지마 내부의 바닥 마감이 보인다.


돌과 자갈을 이용


당시 물건이 오고 가던 모습

저울이 보인다


당시 수입품


수출품

칠기 등


수입품


각종 천의 경우 이렇게 샘플까지 만들어놨다.

 

다음 창고인 삼번창

설탕 창고였다고 한다. 설탕 엄청 좋아했던 일본인들


지금은 솜사탕 체험;;


각종 설탕과


과자들


에도시대 화과자 문화는 여기서 꽃피운 것도 있다.


설탕 창고의 재현


카피탄의 집

네덜란드 상관장, 즉 카피탄의 사무소 겸 거주지로 데지마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고 한다.

일본인 고위층의 접대 장소이기도 했다고


독특한 디자인


2층으로 가본다

현관


당구대도 설치되었다고


다다미 17첩 반의 거실

연회장으로 사용


전경


화려하군


넓은 거실


옛날 이 집의 그림지도가 있다.


내부가 무척 넓군


사진 찍는 중


기록도 많다고


대 연회실


부자군


하긴 매년 땅값만 10억원씩 내었다니 수익이 어땠을 지


당시 연회 모습


여자가 살던 방


상관장 아래서 일하는 일본인 여성들이 머물던 공간이라고


발코니


크다


15첩 방

상관장의 사무 공간이였다고 한다.



소파도 있고


차도 있다


배례필자 네덜란드인의 집

네덜란드 서기장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난학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곳에서 몰래몰래 교류를 통해 일본인들이 서양 학문을 배웠고

그것을 화란의 학문이라 하여 난학이라고 했다.

또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기독교 이외의 서적을 해금하여

천문학 의학 등이 널리 보급되기도 했다.


내부

각종 기계들


시계들도 보인다


이게 뭐였더라..

시계였는데


이건 진자운동으로 돌아가는 시계


천문시계


지진예측계


네덜란드 선원들의 실내 작업장 흔적

아마카와라는 걸 만들었다는데 뭔지 모르겠다.


안내문


송아지 뼈

보통 이곳 소는 식용인데 조사 결과 종두법을 위한 개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18세기에 종두법이 들어왔다고 한다.



북수문이 보인다


구석창

막말기에 세운 창고로 프로이센 상사가 사용했다고 한다.

 

사카모토 료마의 해원대도 여기서 거래했었다고


지번경계석



북수문 일대


구석창 내부

지층 단면


석단을 만들 때 땅에 박아 넣은 나무들


안내도


데지마 다리의 석주



과거 남북 수문 외에 사람이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였다.


내부도 유구가 전시되어 있다.


18세기 말 있었던 대화재의 흔적이라고



밖으로 나와


또 다른 데로 가본다.


밖이 보인다


에도시대 건물도 재현되어 있지만


메이지시대 건물도 남아있다.

메이지시대 2개 건물은 복원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

이건 나가사키 내외클럽으로 1903년의 건물


일단 신석창의 고고관으로 간다.


발굴 당시 출토된 유물들


도자기가 많다


규슈가 아리타 등 워낙 수출용 도자기가 많다 보니


대부분 수출용 도자기이다.


완연한 유럽식


청화백자가 많다



이것도 유럽풍


종류도 다양



유리제품도 많다


각종 유리기


그래도 도자기가 압도적



네덜란드 왕실 주문이나 동인도회사 마크가 있는 것도 보인다.


일본이 수입했던 권총

피스톨이다


중요한 자료


발굴 상황


카키에몬인가?


많다


거의 전사 제품 같은 도자기


도자기 제작용 틀

아마 정확히 주문하기 위해서인 듯


도자기 무늬를 넣기 위해 동판도 있다.

대량 생산용


밖에 보니 정원도 있는데


작은 돌다리도 보인다.


포도도 심어놨다는데 역시 그림을 통해 재현한 서양식 정원이다.


서양식 건물


창고 흔적


한쪽에는 데지마 복원 모형이 보인다.


부채꼴이다


가운데 다리


메이지시대 이곳에 들어선 성공회 신학교인 데지마 신학교

메이지시대 초기의 목조건축인데 왜 문화재 지정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모형


크군


과거 모습


멀리서 본 모습


네덜란드에서 보내준 조각



나가는 길


데지마신학교를 통해 나간다.


지금은 요금소, 샵으로 쓰이는 중


나가는 길


이렇게 데지마를 다 봤다. 생각보다 무척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