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8차 九州

남국유랑기 - 3일 미나미시마바라1 (하라성原城跡)

同黎 2020. 7. 1. 03:17



다시 기차를 타고 가는 길

와 역이 무슨 버스정류장인 줄


기차의 요금표도 버스식이다.


시마바라역에 도착


그래도 시마바라역은 규모가 좀 있어 보인다.


역장실이라고 되어 있고 거대한 금붕어가 있는데


이 금붕어씨가 명예 역장이라고


진짜 크다


안녕


각종 철도 상품들


역 밖으로 나간다


멀리 시마바라성이 보인다.


모자상

무슨 뜻인지...


시마바라역


외관은 마치 성곽처럼 생겼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하라성까지 간 다음 다시 시마바라성을 보러 돌아오는 계획이다.


버스를 놓치면 끝장


버스 도착


텅텅 비어보이지만 퇴근 중인 학생 때문에 만차


출발한다


바다가 보인다


시청을 지나


철도를 건너


30분이 넘게 달린다.


한참 지나니 하라성 표지판이 나온다.


길가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성의 능선


어느덧 내릴 때가 되었다.


미나미아리마소학교 앞에서 하차


본래 하라성 앞이라는 정류장이 있지만 거기서 혼마루까지는 적어도 2km나 된다.

우리는 전날 미리 택시조합에 전화를 해서 소학교 앞에서 혼마루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걸어다니다간 버스를 타고 돌아올 수도 없다.


소학교 입구


곧 택시가 도착


니노마루 입구를 통해 들어간다.


하라성은 해안가 절벽을 따라 지은 성이고 혼마루까지 산노마루, 니노마루 등

통과해야 하는 성채 여러 개가 겹겹이 싸여 있어 천혜의 요새에 속한다.

나가는 쪽은 테마루라고 해서 별도의 성곽을 쌓았으니 난공불락



미나미아리마 소학교 방향이 그나마 빠르게 혼마루로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이다.


주차장도 조성 중


세계유산이 되면서 급하게 이곳 저곳 손을 보고 있다.


멀리 보이는 운젠산


거대하다


여기저기 발굴중인데


말라버린 해자도 있다.


석단을 지나


해자를 건너


혼마루로 들어간다


해안을 따라 나 있는 도로


멀리 아마쿠사도 보인다.


관광안내도


하라성(原城)은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乱)의 격전지로 유명한 곳이다. 본래 이곳은 키리시탄

다이묘인 아리마씨의 성이었다. 아리마씨의 주성은 히노에성이고 하라성은 방어용 지성이었다.

그런데 아리마씨가 다른 곳으로 전봉당하고 마츠쿠라 시게마사가 새롭게 이곳에 오면서

히노에성과 하라성은 폐성되고 새롭게 시마바라성을 쌓았으며 이로써 시마바라번이 성립된다.

이 때 폐성된 성은 이후 봉기군에 의해 접수되어 일부 수리 후 재사용되게 된다.

시마바라에 들어온 마츠쿠라 시게마사와 그 아들 카츠이에는 가증스러운 인물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별로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과거 고니시, 아리마 등의 수하였던 키리시탄을 탄압하였고,

4만 석의 영지를 가지고 있는 주제에 10만석 규모에 어울리는 시마바라성을 쌓으면서 가혹한

착취를 일삼았다. 이후 에도성 개축에 자원하면서 비용을 염출하고, 막부에 키리시탄의 근거지인

루손을 정벌하겠다고 하여 돈을 뜯어내었다. 키리시탄들 탄압은 운젠지옥이라고 하여 운젠의

뜨거운 원천에 사람을 생으로 담구는 고문도 행하였다. 연공을 줄여달라는 촌장의 요청에 오히려 촌장의 임신한 아내를 잡아다가 차가운 물에 담궈 유산시키고, 농민들에게 도롱이를 입히고 불을

질러 화형시키는 일을 저질렀다. 이러한 마츠쿠라가의 잔혹성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으나 당시

막부의 기록과 네덜란드 상관장의 일기에도 그 기록이 있어 사실로 봐야 한다. 결국 농민들의

분노와 옛 키리시탄 무사들이 결합하여 조직된 반란이 일어났으며 아리마 지역의 다이칸을

살해하는 것으로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났다.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라는 17세의 소년을 봉기군 대장으로 삼았는데 그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옛 아리마가의 키리시탄 무사의 후손인 것은 맞지만 고니시의 자식이라는 설부터 심지어

히데요리의 숨겨둔 아들 설, 비실존설까지 있다. 여튼 시마바라에 이어 바다 건너 아마쿠사에까지

봉기군이 확대되어 시마바라 반도 전체를 장악하게 된다. 군대는 여러 성이 있으며 가장 많은

기록은 여성 등 비전투인원까지 3만 7천 명이었다고 한다. 놀란 막부는 가신 이타쿠라 시게마사를

파견에 규슈의 여러 번의 군사를 모아 봉기군을 공격했는데 봉기군은 하라성을 정비하여 맞서

토벌군을 퇴각시키고 이타쿠라 시게마사를 전사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놀란 막부는 카와고에번주

마츠다이라 노부츠나를 총대장으로 삼아 12만명에 이르는 군대를 동원하고 네덜란드 선박을 시켜

바다에서 대포를 쏘게 하여 2차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식량난 등에 시달린 봉기군은 막부 측

간자 1명을 제외하고 3만 7천 전체가 전사하여 시마바라의 난은 종결된다.

막부는 아마쿠사 시로를 잡아 처형해 나가사키에 매달았고 키리시탄을 더욱 탄압한다. 한편

반란의 단초를 제공한 시마바라번을 폐지하고 번주 마츠쿠라 카츠이에는 다이묘에게 좀처럼

행하지 않는 참수를 해버린다. 이후 마츠쿠라가는 완전히 몰락한다. 아마쿠라번의 테라자와

가문 역시 가이에키 당하고 폐가된다. 이후 시마바라와 아마쿠사는 막부의 직할령이 되어

연공의 부당함 등이 조사되고 남은 농민들은 관대하게 처분된다. 도쿠가와 이에미츠

치하의 안정되어 가던 막부 체제에 거대한 돌을 던진 것이 시마바라의 난이다.

 

혼마루 안내도

입구가 정말 조그맣다.


석단


혼마루 안으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 표시가 있다.


아리마 시대의 유구와 반란기의 유구가 겹쳐져 있다.


호네카미 지장이라는 지장보살상


반란 이후 스님이 인근 유골을 수습한 후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안내문


석단


무덤


석단 위에 서 있는 도조신


혼마루의 토라구치


입구이자 방어용 도구인데 아리마 시대의 유구이다.


안내판


멀리 보이는 성의 전경


우즈미몬 터


전쟁 당시 무너진 석단 등이 출토되었다고


바다로 통하는 길

옆으로 석단의 흔적이 있다.


전경


이제 혼마루로 올라간다.


정비된 석단


혼마루 위로 올라간다.


문터를 알리는 안내문


석단만 남은 문터


문이 좁다


내부로 들어가면 넓은 혼마루가 나온다.


안내판


봉기군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곳


지도

뒤편으로는 해안 절벽이다.


멀리 보이는 산


운젠산이다


아마쿠사 시로의 집터라고 여겨지는 곳


과거 건물터에는 나무만 무성하다.


하라성터라는 표석


한쪽에 동상이 있다.


봉기군 총대장 아마쿠라 시로 토키사다


마지막 순간 부활한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카쿠레 키리시탄들은 그 말을 기억하고 있기도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십자가


나가사키 대교구에서 세운 것


과거 문터


한쪽에 비석이 있는데


바로 아마쿠사 시로의 비석이라고 한다.


참수 당시 어머니가 목을 확인했다고

이 비석은 마을 담장에 있었던 것을 발견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작은 비석


너머로는 아마쿠사를 바라보며


시로와 그 어머니, 그리고 선교사의 석상이 서 있다.


참 마음을 묘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멀리 보이는 아마쿠사


기분이 묘하다


인간은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도 푸릅니다.


엔도 슈샤쿠의 침묵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나는 광경


옆에 있는 묘비

돗토리번 이케다가의 가신으로 반란에 합류한 사부리 큐노죠 삼부자의 묘비


안내문


기록에 따르면 토벌군이 들어와 죽기 전 스스로 묘비를 새겼다고 한다.


그 옆에 있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무덤


불교식 무덤도 보인다.


바다의 모습


해안절벽이 보인다


뒤로 보이는 석단

끝이 없다


중간에 보이는 섬

저기서 모여 반란을 모의했다고 한다.


아마쿠사와의 사이 바다


세계 삼대 백주라고 하는데 뭐 모르겠다.


아마쿠사 시로의 동상



혼마루 전경


이곳이 천수대 터


반란 당시 세운 천수각이 있던 곳이라고


천수대에서 보이는 전경


바다


아래로 보이는 모습


뭐 그 이외에는


넓은 빈터이다


이제 내려가는 길


옛 해자 터


이제 다시 택시를 타고


자료관으로 간다


생각보다 묘한 느낌이 드는 장소이다.


꼭 한 번 와봐야 할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