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8차 九州

남국유랑기 - 4일 사가2 (사가성佐賀城·사가성 혼마루역사관佐賀城本丸歴史館)

同黎 2020. 7. 21. 04:19



버스를 타고 사가성으로 이동

정류정 건너편에 근대 건물이 보이는데, 메이지시대 경찰청 건물로 건설된 것을

현재는 사가 레트로관이라는 이름으로 현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우리의 목적지인 사가성


혼마루의 입구에 세워진 나베시마 나오마사상


뒷모습이다


본래 오래전에 세웠다가 전쟁 당시 공출된 것을 최근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사가번의 10대 번주를 지넨 나베시마 나오마사


막말의 혼란기에 번정개혁에 성공하고 영민의 빚의 80%를 탕감, 난학의 도입에도 적극적이어서

우두법을 보급시킨다. 개국론을 주도했고 은거 이후에도 그의 영향으로 사가번은 신정부군에

가담했으며 무진전쟁에서 대단히 활약했다. 이후 폐번치현에 처음으로 동참했으며

초대 홋카이도 개척장관에 취임하여 사가현민을 이주시키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시마즈 나리아키라에 견주는 명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지극정성일 수밖에


높이가 8.5미터에 달하는 동상으로 2014년 1억 4천만엔을 모금해 지었다고 한다.


동상의 모습


관을 쓴 모습


동상 복원에 관한 기록


샤치노몬이 보인다


동상과 뒤편으로 보이는 NHK


거대한 야구라 터가 보인다.


사가성의 거의 유일한 유구인 샤치노몬(鯱の門)


막말기에 건축된 혼마루의 정문으로 현재 중요문화재이다.


천수대 터


거대한 석단만 남았다.


사적 사가성 표석

사가성(佐賀城, 좌하성)은 에도시대 이후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사가번 나베시마씨의 거성이다.

본래 이곳은 나가사키에서 고쿠라를 거쳐 시모노세키로 이어지는 나가사키가도의 거점으로 전국시대에는 류조지씨의 거성이었다. 류조지 타카노부가 시마즈와 아리마에게 패한 이후 가신이었던

나베시마씨가 실권을 잡게 되면서 이곳에 본격적인 성을 쌓았고 에도막부에게 온전히 사가번의

영유권을 인정받으면서 본래 류조지씨의 거성을 폐성시키고 히젠의 유일한 성이 되었다. 

사가성은 언덕이 없는 완전한 평지성이다. 평지에 석성과 토성으로 성곽을 쌓았는데 폭 80미터의

거대한 해자를 파고 공격을 당하면 성을 막고 해자를 범람시켜 성 밖을 침수시키는 방식으로

방어하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여러 성곽적 도구들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그냥 지속됐다고 한다. 유난히 화재를 많이 겪었는데 혼마루가 타면 니노마루가 번정의 중심이,

니노마루가 타면 혼마루가 기능을 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18세기 이미 천수가 소실되었고

메이지유신 이후 불평사족에 의한 대규모 반란인 사가의 난 당시 샤치노몬 정도를 제외하고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니노마루는 현청, 방송국 등이 들어서면서 복원이 불가능하고

혼마루는 발굴을 통해 혼마루 어전 등을 복원 중이다.


사가성 혼마루는 현재 사가성공원이 되어 있는데

내부에 혼마루어전과 현립박물관, 현립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경내도


안내문


거대한 샤치노몬


고쿠다카 35만석의 위용


사실 도자기까지 팔았으니 훨씬 상회할 것이다.


거대하다


안으로 들어가본다


내부에서 메이지유신 기념전을 하는 듯


성문의 번소


개관시간은 9시 반이니 좀 늦는 편


담장에 붙어있는 사가성 지도

완전히 해자로 둘러쌓여 있다.


대포

나베시마 나오마사가 용광로를 만들어서 일본 최초로 만든 철제 대포이다.


이건 복제품이라고


샤치노몬의 내관


혼마루 어전


현재 현립 역사관으로 사용 중


본래 어전도 다 헐리고 번주가 업무를 보던 고자노마(어좌간) 한 동만

소학교 건물로 쓰이던 것을 이축해와 다시 복원했다.


현재는 조금씩 조금씩 복원 중


현관


특별전 중


밖에 대포가 있어 보니


그 유명한 암스트롱포

페리제독이 쏴댄 것


안내문


측면


신기하군


대완구처럼 생긴 대포


뭔지는 까먹었다


크구나


너무 일찍 와서 20분 정도 기다리다가 입장


안내문


어현관


갑주가 눈에 띈다


화승총들


관내 안내


먼저 긴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북낭하


외서원


접견이 이루어지던 곳


어삼가좌

사가번의 고산케라고 할 수 있는 고위 가문을 위한 장소


복원해놓은 사가성 혼마루어전의 모형


입체로 된 부분이 현재 복원된 부분

반도 안 되는 것이다.


아랫부분

발굴로 드러난 유구 위에 설치


이게 건축 기초 부분 설명도이다.


유일하게 남은 어좌간(고자노마)에 대한 설명


밖으로 보이는 모습

건물 자리에 칸이 쳐져 있다.


내부로 들어가는 중


소서원 부분이 전시실이다.


상설전시물 부분


어성분간회도

에도시대 칸세이 8년(1796)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타이코쿠인사마어연보지취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요시시게공어연보 권6

에도시대 분세이 2년(1819)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권하


시게모치공어연보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우중의 가

에도시대 분카 9년(1812)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上) 시게모치공어연보 권4


(下) 시게모치공어연보 권7


어능어면기외장 / 어능어면기외어도구

에도시대 텐포 14년(1843)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上) 어능차면의상도구장

에도시대 텐포 14년(1843)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下) 어양어면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감지망대당화모양단 카리기누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백수자지화단철선모양 누이하쿠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동박지인초산홍엽모양요체 누이하쿠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홍수자지인화입대린모양요체 스리하쿠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동박지화단산은행모양 누이하쿠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감지명하화릉귀갑정자당송채산모양겹 카리기누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츠나시게공어연보

에도시대 분카 11년(1814)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흑칠도보상화당초마키에상

에도시대 호에이 3년(1706)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오십수 와카 및 아스카이 마사토요 추영

에도시대 호에이 3년(1706)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미츠시게공보고보지취

에도시대 텐포 15년(1844)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구지장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당장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무네시게공어연보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류조지계도·나베시마계도

에도시대 교호 원년(1716)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내부의 모습


천종전편액

에도시대 교호 10년(1725)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무네시게공어연보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번주인장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류조지계도·나베시마계도

에도시대 교호 원년(1716)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요시시게공 소용 문방구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나오마사공보

메이지시대 1878년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사가성 고혼마루 차도

에도시대 텐포 6년(1835)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사가성 고혼마루 차도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양로관앵연도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나오마사공보

메이지시대 1878년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나베시마 나오마사 서간

에도시대 분큐 3년(1863)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히츠히메 소용 어도구

에도시대

나베시마징고관 소장


(上) 흑칠도능문행기


(中) 흑칠도능문식롱


(下) 흑칠도행엽문관·탕통


이제 어좌간으로 간다.


밖으로 보이는 부분


토성 부분이 보인다.


어좌간의 목재


나베시마 나오마사가 건설한 당시의 기둥이라는 안내문


묵서가 있어 건물 부분을 알 수 있었다고


고자노마 전경


나오마사 옆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고자노마 밖으로 보이는 어전


정원 흔적


한 켠에 설명 중인 번교 홍도관에 대한 설명


홍도관 복원 지도


공부하라고 쪼시는 나오마사공


학교 모습을 재현한 부분


나오마사의 동상 모형


에조개척사로 임명하는 칙서


종두법 보급에 관한 그림


나오마사가 만든 제련용광로 모형

남아있으면 이것도 세계유산이었을건데


사가번에서 생산한 것들


나오마사가 사용하던 사진기


이제 밖으로 나온다


거대한 천수대


이제 현립박물관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