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8차 九州

남국유랑기 - 4일 아라오 (미쓰이 미이케탄광 만다갱三井三池炭鉱万田坑)

同黎 2020. 7. 23. 02:18



토스역 도착


역 바로 옆에 스타디움이 있다.

사가현의 최동단으로 인구 8만이 좀 안되는 작은 도시지만 후쿠오카현의 위성도시로

J리그 사간 토스의 연고지이자 사가현 유일의 신칸센역인 신토스역이 위치,

경마장도 있고 해서 지방재정도 빵빵하고 젊은 인구가 많은 유망도시이다.


여기서 하치요 방향 구간쾌속으로 갈아탄다.


차 타고 가는 중 아라키역 통과


아라오 도착


기차 시간표가 환상적이다...


아라오역

구마모토현이지만 바로 위 후쿠오카현의 오무타와 붙어있다.


역을 나가는 길에 만나는 세계유산 안내판


목적지인 미이케탄광 만다갱이다.


또 다른 갱인 미야하라갱


만다갱은 정비가 되어 공개가 되고 있다.


아라오역 밖으로 나왔다.


택시 찾는 중


과거 정차장이 생겼을 때의 기념비


아주 작은 역이다.

한때 탄광으로 인해 인구가 많아 구마모토현 3위 도시였으나 현재는 5만명을 겨우 넘는다.

그나마 인근 오무타의 베드타운이 되면서 다소 안정되는 중

과거 노조의 영향으로 신사회당의 영향력이 비교적 센 것도 특이하다. 시의원이 4명


만다갱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있긴 하지만 시간 맞추기가 힘들고 대부분 택시를 이용한다.

10분 정도 걸린다.


택시를 타고 가니 근래에 세운 만다갱 스테이션이 보인다.


도착

과거 석탄을 실어 나오던 차


만다갱 스테이션 간판


날이 너무 좋아서 안내판이 다 날아갔다.


미이케탄광(三池炭鉱, 삼지탄광)은 미쓰이 재벌에서 운영하던 대표적인 일본의 석탄 탄광이다.

하나의 탄광이 아니라 후쿠오카현 오무타시, 미야마시, 구마모토현의 아라오시에 걸쳐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리아케해 해저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던 대규모 탄광이다.

이곳에서는 이미 무로마치시대 후기 석탄이 발견되었으며 18세기 전기부터 채굴이 시작되었다.

이후 주변의 야나가와라번, 미이케번에 의해 채굴한 듯한 문서가 나오지만 본격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주로 소금을 굽는 용도로 석탄을 채굴한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 중엽에 본격적으로 채굴이 시작되었으며 메이지유신 이후 관영탄광이 되었다가 미쓰이물산에서 인수하였다. 이때는 미츠비시와의 경쟁도 있었고 감옥의 죄수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다고 한다. 이후 미쓰이탄광은 미국의 기술을 들여와 크게 확대되었으며 이곳의 석탄을 나르기 위한 철도와 미이케항, 미스미항이 설치되었고 자연 산출되는 가스를 이용한 발전소도 설치되었다. 패전 이후에도 미쓰이재벌은 일본제철 계열의 일철광업에서 운영하는 아리아케 탄광 개발을 인수해 바다까지 갱도를 확장했고 인근에 선탁을 이용한 제조업 기업인 미쓰이 미이케제작소, 미쓰이 금속광업, 큐슈 미츠이 알류미늄 등이 들어는 등 미쓰이 제조업의 중추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쓰이는 이타이이타이병을 만든 온상으로 사업재해의 왕이라고 할 수 있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낙반, 분진, 폭발 등의 사건이 계속되었는데 수십 명에서 백여 명이 죽는 사고가 나는데도 싼 노동력을 갈아넣는 방식으로만 해결하려 했다. 결국 노조를 중심으로 1953년과 1959년 두차례 거대한 투쟁이 있었다. 53년의 투쟁은 갑작스러운 강제퇴직에 항의한 것으로 113일 동안의 투쟁을 통해 이를 막아내 노조의 승리를 끝났다. 미이케 탄광 노조는 이후 노동운동계의 큰 명성을 얻게 되는데 미이케는 노조 중심의 자치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1959년 겨울 5천 명에 달하는 정리해고가 이루어지자 이에 대항해 다시 한번 노조를 중심으로 총평, 사회당 등 총자본 대 총노동 구도의 거대한 투쟁이 이루어진다. 미쓰이자본은 야쿠자를 동원해 열성 노조원을 살해하고 어용노조를 만들어 회유하며, 신노조를 투입하면서 노조와 자본 측은 선박까지 동원한 일전을 치루었다. 당시의 기시 노부스케 정권의 탄압, 스미토모 등 다른 재벌들의 후원, 노조 내부의 갈등과 상급단위 노조의 연대 이탈 등의 문제로 거의 1년간 이어진 투쟁은 결국 노조 측의 패배로 끝나고 미이케 노조는 와해되었다. 그러나 노조 해체로 인한 자본의 폭주는 결국 63년 미이케 미카와탄광 분진폭발사고로 이어지는데 사망 458명, 일산화탄소 중독 839명이라는 전후 최고의 산업재해가 이루어지게 된다.


60년대부터 시작된 에너지 정책 변화로 인한 석탄수요의 감소, 빈번한 사고, 인건비 문제 등으로 인해 일본 역시 석탄산업이 사장되고 마침내 2001년까지만 석탄 산업을 보호해줄 것이 결정되면서 1997년 미이케탄광은 완전 폐광된다. 폐광 후에 여러 갱 중 만다갱과 미야하라갱의 남은 부분은 근대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하여 98년 바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미이케항과 미스미항도 보존되었다. 그리고 미이케철도의 남은 부분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남은 부분들은

한꺼번에 메이지 산업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중 우리가 보러 온 부분은 1897년부터 조성된 만다갱의 시설들로 6동이 중요문화재, 나머지는 사적으로 지정되어있다. 물론 광부들이 살던 사택, 철도 일부, 아리아케갱 관련 시설 등을 대부분 해체되었다. 


한국어 안내판도 있다.

그런데 이곳도 한국인 징용자가 있었다는 흔적은 없다.


세계유산이 되었다길래 일단 찾긴 했다.


만다갱은 당시 시설물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어 특별히 찾아왔다.


안내소 겸 매표소인 만다갱 스테이션


이곳 말고도 길 건너편에 자료관이 있는데 도저히 시간 때문에 갈 수 없었다.

매표를 하고


전시를 잠시 본다.

과거 이곳에서 일했던 광부들이 노인이 되어 안내를 해주고 있다.

아리아케해 깊숙한 곳까지 뻗은 갱도들


전성기의 만다갱 모습


친절히 설명을 해준다.

참 복잡한 기분이 든 것이 메이지 산업유산은 분명한 일본 우익의 설명에 근거한 것이지만

여기서 일했고 투쟁했던 전후 노동자들의 삶은 또 소중한 것이다.

이 애매한 기분 때문에 묘했다.


광부복


채굴한 석탄


수직갱 크레인의 모습


이제 광산으로 간다.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이라는 안내판


안내문


담장 너머로 보이는 시설물들


과거 철도가 있던 자리


지금은 철거되어 평야이다.


저수지


광업에 같이 따라오는 물


멀리 견갱로가 보인다.


거대한 송전탑이 바로 옆을 지나간다.


침전지

갱도에서 나오는 물을 모아뒀다고


여러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은 출입금지


멀리 보이는 견갱로


과거 문의 흔적


지하로 터널이 있다.


사쿠라마치터널


마을과 통하는 도로였다고



멀리 보이는 빈터


옛날 공장터도 보이고


이제 입구로 간다.


경내 안내도


메인 건물인 제2기계실과 제2견갱로

중요문화재


산신사


역시 중요문화재


제2기계실


여기서 수직으로 갱도와 연결해 광부와 석탄을 올리고 내리는 기계를 조절한다.

 

채굴된 석탄 등등도 이렇게 놓여있다.


안전모를 쓰고 기계실 내부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중


기계의 여러가지 스펙들


거대한 문

일반 출입용은 아닌 듯


레일을 감는 거대한 기계


무려 메이지시대부터라고


더 위로 올라간다


무시무시하다


직접 보면


견갱로와 연결하는 부분


전경


기계실 3층에서 내려다본 모습


들어온 방향


다시 나온다


또 다른 기계


뭐가 많다


냄새도 많이 나고


중요문화재인데 정비가 많이 필요할 듯


정면


순로를 따라 가보는 중


과거 철도와 연결되던 곳


전경


변압기?


조정하던 기계


또 다른 대형 기계들


근대화산업유산이라는 경제산업성의 인정서


뭐 이젠 다 필요없고 세계유산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증기장 터라는 안내석


증기장 터

증기로 기계를 움직이던 시절의 유산


파이프만 남아있다


기계실 외관


철도로 석탄을 보내던 흔적


수레가 보인다


거대한 견갱로


저기 케이블로 수직 직하시키는 것


둘 다 각각 중요문화재


다른 건물


변전소


비교적 근래까지 사용되던 건물

중요문화재는 아니다


무슨 성터 같은 폐허들



펌프실의 흔적


영국산 펌프였다고


성벽같은 벽만 남았다.


제2견갱 입구


제1갱의 시설은 1954년 홋카이도로 이축되었으나 현재는 다 철거되었다고


역시 터만 무성

밑에서 물이 나와 연못이 됐다.


제2갱 전경


철근으로 된 견갱로


지나가는 중


선탄장 터


석탄을 고르던 장소


역시 휑하다


바람이 많이 분다


뒤편으로는 사무소 등의 흔적이 있다.


안내판


나오는 길


약간 황량하기까지 하다.


여기도 정비가 들어간다고 하던데


뒤편으로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


다른 건물이 나온다.


산신을 모신 신사

특이하게 콘크리트조


중요문화재


안내판


이게 사무소였던 것 같다.

중요문화재


창고 겸 펌프실

중요문화재


이래봬도 메이지시대


뒤로 나가는 길


견갱로


안전등실 겸 욕실

중요문화재


광부들이 사용하던 곳


복원공사 중이다

지하도 보이고


내부는 지저분하다


물탱크인가


중요문화재 두 동이 나란히 서 있다.


건물 앞 흔적


뭔지는 모르겠다


터널도 보이고 이것저것 많구만


도구창고 겸 수리장


쇼와시대 초기


다시 온 사무소

중요문화재


내부는 공개 안 한다


나무로 증축한 부분은 거의 쓰러지는 중


창고


터널도 보인다


수리 안내판이 있다

2020년까지 수리구만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역 앞에 뭐가 있어서 보니까


제2견갱로 모형이다


도시의 가장 큰 자랑이니


세계유산 기념으로 세운 것


다시 기차를 타고

구마모토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