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거리

전태일열사의 유서

同黎 2013. 3. 11. 23:59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이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