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거리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동지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를 사양하며 쓴글

同黎 2013. 3. 12. 00:10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사양한 이동권연대 박경석대표(옮김)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경석입니다.
정말 무겁고 민망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며 이 글을 씁니다.
박인용 동지의 추천 글을 통해 수많은 동지들의 추천을 받고 감당할 수없는 지지에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무게는 88년부터 지금까지
장애운동을 하면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럽고 획기적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동지들의 지지에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민망할
따름입니다. 이 결정이 동지들에게 상처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번을 기회로 동지들과 함께 더욱 현장투쟁을 확장하고 강화시키며
진보적 장애운동의 조직건설에 진정으로 연대하고 싶습니다.


장애아이를 둔 어머니의 추천 글에서 저의 출마가 고통받는 이 땅의
장애인들에게 희망이라 말씀해주시는 것에 더욱 마음이 쓰리고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감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하나의 소중한 희망이듯,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투쟁하는 현장을 강화하고 진보적 장애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나갈 조직건설의 활동가로 남는 것 또한 동등한 무게의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활동가로 남는 그 희망이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는 희망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보적 장애운동은 여전히 척박하고 열악한 상황입니다. 그로 인하여 이 땅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장애민중들은 한낱 부르주아 보수
정치인들의 정치적 치장물로 전락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떡고물에
관변적이고 보수적인 장애인단체는 생물학적인 장애인 당사자를 팔아
정치적으로 야합하였고, 몇 명의 잘난 장애인들은 그 조직을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장애민중이
투쟁으로 조직을 건설하지 않았기에 나타나는 장애운동에 있어 열악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장애인의 문제는 더욱 왜곡되어 왔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정말 저에게는 소중한 김도현 동지를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그 동지는 에바다 투쟁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았습니다. 집행유예기간에 또다시 중증장애인을 철로에 내려주는 투쟁을 감행하였고 그래서 구속이 되어 1심에서 징역8월의 실형을 받았고, 집행유예기간이라 에바다 투쟁으로 받은 1년 6개월을 더하여 살아야 할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동지가 구속되어서 면회 갔을 때 저에게 그가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 '장애운동의 열악함'이라 했습니다. 그는 비장애인입니다. 온전히 저로 인해 구속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지가 저 대신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 동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동지는 저에게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로 나가는 것이 정말로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진보적 장애운동을 건설할 현장에서 형이 더욱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의회로 진출하는 것이 현장과 분리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동지의 말이 틀리고 맞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더 열악하고 낮은 현장에서 장애대중을 조직하고 투쟁해야 할 절실함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저를 더욱 필요로 하는 곳은 그곳이라 생각합니다.

'내 모습 지옥같은 세상에 갇혀버린 내 모습 큰 모순 자유 평등 지키지도 않는 거짓 약속 흥! 닥치라고 그래, 언제나 우린 소외 받아왔고 방구석에 폐기물로 살아있고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차별의 시선 위선 속에 동정 받는 병신 인줄 아나!'

제가 좋아하는 '젠'동지들의 공간이동이라는 노래의 랩 부분입니다.
그렇게 이 사회에서 장애인은 차별의 한가운데 살아왔습니다. 방구석에 폐기물로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본의 질서에서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계층으로 살아왔지만, 우리의 투쟁은 사랑의 리퀘스트류의 자선공연이거나 오히려 하나의 퍼포먼스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저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하면서 적어도 이 사회에서 장애라는 문제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적 담론으로 형성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의 문제는 하나의 이벤트일지는 몰라도 주류의 담론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장애인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은 하나의 퍼포먼스요 시혜와 동정으로 다가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저와 그리고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에게는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자본의 사회를 변혁시킬 저항이었습니다. 이제 그 저항운동을 선도적이고 힘차게 일상적으로 현장에서 펼쳐낼 진보적 장애운동의 조직체 건설이 제가 느끼는 운동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향해 '지키지도 않는 거짓 약속 흥! 닥치라고 그래' 외치며, 이젠 우리의 힘으로 강제해 나갈 것입니다.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 활동을 11년째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일년 내내 논밭을 갈아서 가을의 수확을 마친 후 그 모든
결실들을 지주에게 다 바치고 텅 빈 가을 들녘을 낮 술에 취해 바라보는한 농부의 눈동자에서 녹아오는 허전함을 매년 느낍니다.
노들장애인야학에 나오는 저희 장애학생들은 20년 30년 방구석에 처박혀 지내다가 학령기를 다 놓친 후 늦은 나이에 야학을 찾아와 공부를 배웁니다. 저는 장애운동을 하면서 그곳을 소중한 현장으로 느낍니다. 왜냐하면 장애운동을 하려면 그래도 소위 '쪽수'가 되어야 하는데
장애인들은 집구석에 처박혀 지내서 눈뜨고 찾아 볼 수 없어 어떻게
장애인을 꼬셔서 운동을 해볼까 하는 고민에서 야학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조직해서 야학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가르치지만 차별에 대한 저항정신을 가르칩니다. 쉽게 말하면 학생들과 교사들을 데모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해서든지 조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허전함을 매년 느끼는 것은 장애민중들의 현실적인 열악함에서 사회적이고 조직적인 역량강화를 위한 현장조직의 상황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한 반증으로 느끼는 마음입니다. 끊임없는 허전함과 미래가 없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1년, 2년 길게는 3년 4년 그렇게 왔다가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굴러온 것이 야학의 활동이었고 그것이 지금 진보적 장애운동 조직을 건설하고자 희망을 가지게 된 물리적인 힘의 원천입니다.

이제 다시 돌이켜 봅니다. 저에게 보내주는 동지들의 지지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선택이 동지들의 생각에
잘못일지는 몰라도 장애운동의 열악함으로 보아주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열악함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장애인이 받아왔던 차별의 무게만큼 더 질기게 혁명적으로 장애인을 소외시키고 자본과 비장애인의 중심으로 계획되고 운영되는 세상을 바꾸어 갈 것입니다. 거리투쟁의 현장에서 진보적 장애운동조직을 건설할 것입니다. 그대 동지들이 투쟁하며 만들어 왔던 민주노동당의 희망을 제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히
민주노동당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진보정당에 대한 믿음으로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 - 



단순히 장애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장애인을 돕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장애해방은 자본의 체제에 대한 저항입니다. 

민주노동당 당원 여러분!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같다면, 그렇다면 함께 투쟁합시다!

다시한번 동지들의 지지에 감사드립니다^^
거리투쟁의 현장에서 동지들의 지지를 가슴에 안고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2004. 3. 1.

박경석 드림.